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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Feb 05. 2024

마음 둘 곳

접촉


무슨 꿈을 꾸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침에 희미한 알람 소리에 비몽사몽 상태에서 어떤 특별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 집에 어른은 나 한 명이구나.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전적으로 내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꽤나 묵직한 느낌이었다. 왜 갑자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 집의 유일한 어른이 ‘나’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그건 아마 자기 전에 읽었던 책 속의 ‘마음 둘 곳이 없었던 그는’이라는 구절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가족의 구성은 대가족의 덩어리가 핵가족이라는 덩어리로 잘게 부수어졌다. 핵가족마저도 크다는 듯, 더 작게 쪼개어져 ‘개인 가족’, ‘일인 가족’의 시대가 되었다.      


가족의 단위가 작게 나뉘어 가면서 외로움이 새로운 사회위험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은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고 자살 충동을 더 많이 느낀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2021년 국민의 42.3%가 외로움을 느낀다고 조사되었다. 이에 독일 정부는 사회적 교류 강화를 위한 100여 가지의 대책을 제시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차관을 두고 ‘사회 연결망 구축’ 5년 계획을 세웠다.      


영국과 독일 두 나라에서는 외로움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적 책임으로 바라보았다. 사회적 연계를 통해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려는 외로움 대응 전략을 구축하고 있다.      


세대를 초월해 모든 연령이 참여할 수 있는 만남의 장소를 제공하며 스포츠 활동, 심리치료 서비스로의 연계 등을 도모한다.      


일본의 경우 2020년, 65세 이상 노인 죄수중에 재범자가 70%에 달한다고 한다. 죄명은 대부분 '가벼운 절도'로 십대보다 무려 3.5배나 더 저지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오늘날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들은 교도소에 수감되기 위해 의도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는 비참한 현실을 보여준다. 

  

교도소에서는 의식주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며 공동생활을 하기 때문에 혼자 적적하게 지내지 않아도 된다. 노리나 허츠는 <고립의 시대>에서 공동체 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외로움은 신체의 면역계를 파괴시켜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 허츠는 말한다. 외로움은 실제로 만성염증의 원인이 되고 이는 동맥경화, 심장질환, 뇌졸중, 알츠하이머 등 수많은 질병과 관련이 있다.      


외로움을 느끼는 건 노년층 뿐만이 아니다. 2023년 세계사회연결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외로움을 가장 많이 느끼는 연령대는 20대라고 한다. 이 조사는 세계 143개국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데 한국의 '매우 외로움+상당히 외로움' 지수는 세계평균보다 3배는 높다고 한다.   

  

사람을 만나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외로움을 택하겠다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 외로움은 창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시간과 시간 사이의 빼꼼히 열린 적적한 시간에 기다렸다는 듯이 잠입해 들어온다.  

    

현대인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결국 자발적 외로움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다. 현실에서는 사람을 만나기가 싫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각종 ‘라이브 방송’(이하 라방)이라는 생각이 든다.      


라방을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식사시간의 적적한 외로움을 라방으로 해결한다. 참여자들은 ‘좋아요’를 누르고 돈으로 구입한 ‘별풍선’ 같은 대가를 지불하기도 한다.      

 

노리나 허츠는 거래기반의 관계는 정서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적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을 더 선호하게 된다고 했다. 스크린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상호작용 면에서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보다는 낫다. 하지만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다.    

      

라방이 어떤 분위기인지 궁금해서 몇 번 들어가 구경을 해 본 적이 있다. 라방에 참여하는 시간, 그리고 라방이 종료되었을 때 나는 사람들이 왜 라방을 선호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라방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연결감’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는 부담스럽고 불편하지만 어딘가에 연결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요즘 사람들의 외로움을 대변하는 듯하다. 바로 ‘마음 둘 곳’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아침에 잠에서 깼을 때 내 안에서 튀어나온 ‘이 집에 어른은 나 한 명이구나.’하는 생각은 어쩌면 ‘나도 마음 둘 곳’이 필요하다는 무의식의 외침은 아니었을까 싶다.      


외로움은 궁극적으로 개인에게 발생하는 자가발전식의 마음이다. 아무리 사람들을 만나도 완전하게 외로움에서 벗어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이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마음이 아님도 분명하다.     

 

초연결시대에 외로움이 문제로 대두되는 것은 ‘진짜 연결’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립’은 다양한 부작용을 생성한다. 우리 사회는 어떻게 개인이 고립되지 않도록 도울 수 있을까. 






표지그림 : , Edward Hopper, <Automat>,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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