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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Feb 20. 2024

반추는 소도하고 나도 하고

소화되지 않은 감정 1

     

반추, rumination, 反芻

소나 양이 한 번 삼킨 음식물을 위에서 구강으로 역류시켜 다시 씹는 과정이다. 주로 소화되기 어려운 풀을 먹는 반추류 동물에서 볼 수 있다.     


동물은 소화를 하기 위해 반추를 한다. 인간도 반추를 한다. 동물의 반추가 물리적으로 음식을 다시 씹는 과정이라면 인간의 반추는 지나간 일에 대해 생각을 곱씹는 것이다.      


반추는 우울증 환자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지나간 상황에서 타인이 한 말, 눈빛, 표정, 행동들을 두고두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컵 속의 침전물을 휘저어 주는 것과 같다. 

     

나 역시 반추를 참 많이 했었다. 지나간 과거의 어떤 상황이나 무례하다고 느낀 워딩이 나의 마음을 지근지근 밟아댔다.      


수년 전, 만날 수밖에 없는 관계였지만 정말 만나기 싫은 사람이 있었다. 그녀와 나는 자란 환경에서부터 차이가 컸다. 그녀는 4남매의 늦둥이 막내이고 나는 첫째이다.     


사촌들 통틀어서도 맏이 라인이었던 나와 달리 막내 라인의 그녀는 가족의 예쁨을 독차지하고 자랐다. 그런 그녀와는 좀처럼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      


삶의 양식이나 육아관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기에 우리는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었다. 특정한 상황에 대처하는 자세 또한 너무 큰 차이가 있다 보니, 그녀는 나의 태도를, 나는 그녀의 태도를 ‘공격’이라고 여겼다.     

 

소가 소화되지 않은 풀을 끌어올려 씹듯이 그녀와의 미해결 된 감정들을 씹고, 씹고 또 씹었다. 그녀와의 에피소드들을 3년 정도 반추 한 것 같다. 아무리 다시 꺼내어 짓이겨질 때까지 씹어도 소화가 되지 않았다.     

  

설거지를 할 때에도, 막히는 도로 위에서도 갑자기 그녀가 떠오르면 명치 부근에서 뭉근하게 뜨거워진 무거운 쇳덩어리가 지긋이 나를 누르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 받아쳤어야 했는데, 그때 좀 더 확실하게 말했어야 했는데, 그때, 그때, 그때.......   

  

3년이 지나고 그녀에 대한 반추의 횟수가 줄어들다가 거의 사라졌다. 재미있는 사실은 소화가 완전히 끝나서 그녀에 대한 반추가 멈춘 것이 아니었다. 반추의 대상이 옮겨갔을 뿐이었다. 반추 환승이었다.      


내가 살아있고 사람들을 만나는 한, 반추의 대상은 무궁무진했다. 오전에는 이 사람과의 에피소드, 오후에는 저 사람과의 에피소드. 메뉴도 다양한 뷔페처럼 골라 씹는 맛이 있었다.      


정말로 반추가 재미있어서 한 것은 아니다. 소화가 안 되어 저절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기억의 단상이 울컥 역류하면 반사적으로 질겅질겅 씹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을 씹어서 삼키려면 상당량의 술이 필요했다. 알코올로 뇌가 어느 정도 마취 되고 나면 기억들은 뇌의 뒤편으로 숨어버렸다. 반추는 일시정지 되었다.     

 

잦은 구토는 역류성 식도염을 일으키고 반복적인 반추는 나의 심리적 에너지를 고갈시켰다. 흰 곰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흰 곰만 생각나듯 억누른 불쾌한 기억들은 자꾸만 둥실 떠올랐다.      


그러던 중 나를 쉬지 않고 반추의 트랙에서 뛰게 했던 이유를 찾았다. 


그건 내 감정을 타인에게 맡겼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감정의 주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김주환 교수의 감정 컨트롤에 대한 강의를 보고 유레카를 외쳤다. 김주환 교수는 타인의 말에 휘둘리는 것은, 개 목줄을 내 목에 걸고 타인의 손에 쥐어주는 것과 같다고 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보는 대로, 자기가 아는 만큼만 말한다. 일전에 브런치에도 한 귀로 흘려버리면 그만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얼마 전에 자꾸만 자기의 감정을 강요하는 사람을 만났다. 떡을 먹다가 얹힌 느낌이 들었다. 소화가 안 된 감정을 집에 돌아와 반추하며 정리했다.      


그 사람의 자라 온 가정환경을 떠올리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결론이 났다. 그리고 두 번 접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내 감정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내 감정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의 목줄을 남에게 맡기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어떤 행동 양식을 갖고 사는지 다음 편에 이어서 작성하겠다.




표지그림 : 이중섭, <흰 소>,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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