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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an 26. 2024

아빠가 건넨 사과 한 알

그것은 씨앗이었다


발행한 글 중 하나를 지웠다. 



지운 이유는 글이 지나치게 감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 보면 감정이 고양될 때가 있다. 뜻하지 않게 숨어있던 미해결 된 감정들이 물 밖으로 뛰어오르는 물고기처럼 솟구친다.      


그 글이 그랬다. 그리고 며칠 지나 글을 지웠다. 


처음에 브런치를 시작할 때에는 원가족의 이야기도 많이 풀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원가족 글을 쓰는 족족 갈치처럼 잔가시들이 바글거리는 문장이 컴퓨터 화면에서 헤엄을 쳤다.      


탓하거나 원망하는 마음 없이 담백하게 사실만을 글에 담는 일이 쉽지 않았다. 45도로 돌려서 읽고 180도로 뒤집어 읽어도 감정의 앙금이 드러났다. 글들은 발행되지 못했다.      



내 인생 가장 큰 숙제는 아빠와의 화해였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훈육이라는 이름의 폭력성에 대해서이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처럼 아빠를 심판대 위에 올리고 죄를 묻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빠가 왜 그런 삶의 태도를 가지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오래 지난 일이지만 나는 그때 많이 아팠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오은영 박사는 <화해>에서 ‘부모에게서 사과받을 것을 기대하지 말라.’ 고 말한다. 꼭 사과를 받아야 상처가 치유되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모의 사과에 매달리면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사과를 받는 것보다 ‘내 마음을 부모에게 털어놓는 시도 자체가 중요’ 하다고 오 박사는 덧붙였다.   



나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호랑이 아빠의 발톱과 이빨이 모조리 빠져버렸을 때가 가장 안전하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했다.     

 

기회는 한 번에 오지 않고 점진적으로 찾아왔다. 아빠는 매일 ‘노자’, ‘공자’, ‘불교’ 관련 글을 찾아서 당신의 생각을 덧붙여 이메일로 보내셨다. 그 내용 중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반론을 제기하듯 답메일을 보냈다. 그때마다 아빠는 [잘 읽었다]라는 답장을 보내셨다.   


그리고 2주 전 아빠가 보내신 메일은 화해의 티핑포인트가 되었다. ‘어느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긴 글이었다.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부모도 부모가 처음인지라 잘못이 많았고 참회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빠도 후회의 마음을 전하고 싶으신 것 같았다.      


나는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생각했다. 답메일로 내가 상담을 받게 된 이유와 상담을 통해 무엇을 얻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그 옛날 아빠가 휘둘렀던 호랑이 같은 행동들을 몇 가지 적었다. 편안하지만 장난같지는 않게 써야 했다. 

 

거, 좀 너무한 거 아니십니까 ^^;;     


상담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역가해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아빠에게 사과를 바라는 건 아니라고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답장이 오지 않았다. 나에게 한국의 기상 상황을 전해주시던 카톡도 멈췄다.      


아...... 못 받아들이셨나 보다.


그렇다면 그런대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관할을 벗어난 구역이었다.   


그리고 오늘 친구를 만나고 돌아와 이메일을 확인했더니 아빠의 답장이 들어있었다.     

 

과거의 기억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미안하다고 말하련다.     



뜨거운 김이 기도에서 울컥 넘어왔다. 


나는 아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이제 아빠가 나에게 안전한 사람'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좋은 신호라고 메일에 적었다. 


이제 아빠와 나의 관계는 새로 쓰여질 것이다. 아빠가 건넨 한 알의 사과가 씨앗이 되어, 보다 우호적이고 안전한 나무로 자라기를......

   



표지그림 : 사과그림 전문 화가 윤병락, <사과>


*안전한 부모란?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부모는 ‘안전한 부모’이다. 아이가 느낀 부정적인 감정을 부담없이 전달하고, 집이 편안한 휴식처가 되기 위해서 부모는 아이에게 '안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부모가 무서워지면 아이들은 안전한 곳을 찾아 전전하게 된다. 그 중 하나가 무언가의 '중독'이다. '안전한 부모'가 되기 위해서 부모는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내가 배워온 대로 휩쓸려 가지 않게 멈추고 깨우자.
<화해> 오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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