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마멋은 페스트 보.........
초등학교 국민학교 5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어느 주말 오후 친구의 집에서 영화를 한 편 보게 되었다. 제목도 기억 안 나는 B급 SF영화였다. 크리스터라고 불리는 털뭉치 외계인이 등장하는데 토토로에 나오는 먼지괴물 같이 귀여운 모습은 아니었다.
뾰족뾰족한 이빨을 드러낸 표정은 사악하고 털은 거칠기 짝이 없어 보이는 그들은 무리를 지어 이동했다. 소파나 침대 밑에 숨어 있다가 데굴데굴 굴러 나와 걸터앉은 사람의 발뒤꿈치를 물어뜯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본 후로 꽤 오랫동안 소파에 앉을 때 다리를 내리지 못했다. 소파 밑 어둠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인상적이었던 영화를 본 그날은 가족 외식이 있는 날이었다. 아직도 길 위의 전경이 기억난다. 상가와 도로, 보도블록. 내 왼쪽에는 아빠가 걷고 있었고 나는 그날 본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했다.
영화 이야기가 다 끝나자 아빠가 하신 말씀은 이랬다.
그래 그래, 근데, 그런 영화 보는 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공부를 더 해야지.
말투는 드물게 자상했지만 내용은 진부했다. 그때 내 뒤통수 위로 말풍선이 하나 떠올랐다.
아, 이제 아빠한테 이런 얘기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우리 부녀 사이 개울의 폭은 쿠르릉 소리를 내며 한층 넓어졌다.
엄마는 아빠와 동색이었다.
내가 요리한 파스타 사진을 찍어서 엄마에게 보냈을 때, 엄마는 “맛있겠다”라는 말보다는 '두꺼운 면은 칼로리가 더 높아'라고 말씀 하셨다.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딴지를 거는 건 아니지만 분위기를 '바사삭'하고 깨지게 만들었다.
부모님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셨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부모란 존재는 어리고 어설픈 자녀의 행동이나 모습을 보면 고쳐주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때로는 잘 모르는 정보를 알려주고 싶고, 더 괜찮은 행동 양식을 제안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생각나는 말은 하나다.
산통 깬다
원래 산통은 점쟁이들이 점을 칠 때 사용하던 도구였다. 점괘가 적힌 젓가락 같은 것을 연필꽂이 같은 둥근 통에 넣은 것이다. 점쟁이가 실수로 산통을 떨어트리면 점을 볼 수 없게 되어버린다. 점괘를 기다리며 달아올랐던 분위기는 냉랭하게 변할 것이다.
오늘, 나의 아들이 재미있는 영상을 보여준다며 아이패드를 들고 와 내 옆에 앉았다. 영상의 내용은 이랬다. 과자를 먹는 남자 옆으로 마멋(다람쥣과의 포유류 동물)이 다가와 관심을 보이다가 남자의 과자를 뺏어먹었다. 크리에이터는 마멋의 행동에 더빙을 입히고 자막을 넣어 재미있게 상황을 풀어냈다.
순간, 얼마 전에 읽은 책의 내용이 생각났다.
[마멋은 페스트 보균 동물이다.]
하마터면 말할 뻔했다.
그 옛날 아빠에게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길 위에 떨어진 산통이 떠올랐다.
과자를 먹는 마멋이 귀여워서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다가온 아들을 저 멀리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차 버릴 뻔했다.
부모는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마멋이 페스트균을 가지고 있든 콜레라균을 가지고 있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들이 들고 온 것은 아이패드이지 마멋이 아니다.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엄마와 즐거움을 나누고 싶은 아들의 마음이다. 함께 웃으면 그만이다.
표지그림 : Heinrich Hirt (German, 1841–1902), <Boy with Squirr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