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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ul 09. 2023

환경을 바꾸어도 기만은 그대로였다

wherever, whenever


일상에 찌든 어느 날,


숨통을 트일 곳이 필요해져 차를 몰거나 비행기를 타고 아주 낯선 곳으로 떠난다.


이름이 ‘기분 전환’인 이 녀석은 방안에 고인 탁한 공기를 내몰고 신선한 산소를 공급해 주는 일종의 스트레스 여과장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이 신선한 기분 그대로 살아갈 것만 같은 충만한 만족감을 느껴본다. 하지만 돌아와 마주 선 현실 앞에 일명 약 빨은 오래가지 못한다.


삐걱대는 주변인들, 염장을 지르는 구성 요소들, 모든 것이 출발 전의 열렬한 스트레스 상황과 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떠나기 전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내부에서 변화하지 않으면 외부를 아무리 뒤엎고 갈고닦아봐야 나는 늘 제자리걸음을 할 뿐이다. 장소를 바꾸면 내가 달라질 있을 거라는 착각은 어쩌면 기만적인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알랭 드 보통은 <슬픔이 주는 기쁨>에서 일상을 벗어난 환경의 전환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다.


현실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환경 덕분에
우리는 한동안 가정의 구속으로부터,
우리 마음의 습관으로부터,
세련된 사람들이 정해놓은
규칙으로부터 벗어나서
대안적인 삶이라는
기만적인 공상을 즐길 수 있다.

<슬픔이 주는 기쁨> 중에서



잠시 기분을 환기시킬 목적으로서의 배경 전환은 환기가 끝나 창을 닫으면 다시 탁한 공기로 오염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환경을 송두리째 바꾸어 환기하지 않고 스스로 공기를 정화하는 여과장치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즉 자신의 내면을 바꾸어야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


목동에서 교육 달리기를 열심히 하던 친구가 말레이시아에 3년 계획을 세우고 넘어왔다. 몇 개월이 지나 타국의 살림살이와 학원 세팅이 얼추 끝나고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을 때 친구가 말을 꺼냈다. 


"여기 와서도 애들은 학원 뺑뺑이 돌고, 이럴 거면 여기까지 왜 왔나 몰라?!"


나는 무심히 대답했다. 


"사람이 그대로인데 나라가 달라진다고 바뀌는 게 있을까?"


그렇게 말하는 나를 한 번 돌아본다. 첫 외국 생활, 일본에서의 어학연수를 준비하며 나는 일본에만 가면 모든 것이 달라질 거라고 굳게 믿었다. 막상 일본에서 지낸 1년 동안 일본어 실력 외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변화가 없음에 대한 실망감이 기대감보다 더 가파른 길을 빠르게 올라갔다. 


 한국에서, 일본에서, 말레이시아에서, 캐나다에서 그저 생활의 무대를 바꿨을 뿐 무대 위에서 벌이는 광란의 음주 공연은 연출도 레퍼토리도 진부하리만큼 같았다. 메인 플롯은 ‘많이 마신다-다음날 술떡이 되어있다’.


단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출연진의 감소였다. 모두 정상의 궤도를 운항하기 위해 떠나고 결국 혼자 탈선된 선로 위에 남았다.


어느 나라를 누구와 가든지 술이 가장 필요한 ‘단일한’ 사람은 나였고 술을 사 오는 ‘단일한’ 사람도 나였다.


일본 어학연수 후 귀국을 했지만 우연한 기회로 다시 일본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는 기대감은 대폭 축소시킨 상태였다. 하지만 술에 대한 애정은 대폭 증가한 상태였다. 


일본 친구들과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을 때, 식탁 위에는 늘 한 잔의 술만 올라와 있었다. 바로 나의 술잔이었다. 일본 대학교에서 일본 학생들과 유학생들과의 교류 여행을 떠났을 때 다다미 숙소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그 술을 사기 위해 일본 친구들은 늦은 밤 편의점까지 동행을 해 주었다. 그때 나를 달아오르게 한 것은 술에 대한 애정뿐만 아니라 홍조를 띤 수치심이었다. 


일본에서 학교를 다닐 때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정수리를 툭 치면 분수처럼 술이 쏟아질 수도 있을 만큼 내 몸 안에 술을 욱여넣었던 그날 밤. 불꽃놀이 축제에 입으려고 새로 산 유카타와 쇼핑백에 같이 넣어둔 2만 엔이 든 지갑이 통째로 까만 밤 골목 어둠에 묻혀버렸다.


다음날 숙취로 눈에 술을 찰랑거리며 경찰서에 찾아가 신고를 했지만 그들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한국에서 술을 마시고 지갑을 잃어버린 사람은 일본에 가서도 술을 마시고 지갑을 잃어버렸다. 어느 나라에나 술이 있는 게 문제라고 술 탓을 할 수 없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술을 찾은 나의 마음이었다.


술뿐만이 아니다. 생활 전반에 걸쳐서 '나'라는 인간이 변하지 않고는 그 무엇도 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라고. 그건 내가 타인을 고칠 수 없다는 말이다. 유일하게 고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시중에 넘쳐나는 '습관'과 관련된 책들의 인기가 식지 않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바꿔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외부 환경을 바꾸면 잠시 기분이 전환될 수는 있다. 집안에 가구 배치를 바꿔본다거나, 그릇을 새로 장만한다거나 하는 일은 분명히 반짝하는 신선함을 제공한다. 하지만 나의 근본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관점의 전환, 인식의 변화, 신념과 가치관의 재형성을 통해 기만적인 공상을 버리는 것만이 나를 뼛속부터 바꿀 수 있는 길이다. 


한국, 일본, 말레이시아, 캐나다...... 어느 나라에서든 회피를 위해 마신 술은 매번 같은 문제 앞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더 이상 술을 찾지 않는 나의 마음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어줄 것이다.


나는 나에게 묻는다. 

왜 꼭 술이어야 하는가.

한 잔 먹고 멈출 수 없다면 왜 시작해야 하는가.


<도마레 - s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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