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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Aug 15. 2023

빨간 손톱 미들 핑거

인종 차별의 색깔

 며칠 전 뉴욕 지하철에서 아시아계 가족과 흑인 소녀들과의 충돌이 있었다. 흑인 소녀들이 아시아계 가족(이름:영)들을 향해 공격적인 언사를 퍼부었고, 이 장면을 녹화하던 사람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이 와중에 물리적인 힘이 오고 가며 아시아계 엄마의 안경이 부러지기까지 했다.


 뉴욕은 나의 눈에 달콤 살벌한 도시로 비친다. 가서 탐색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이런 뉴스를 접하면 몸을 사리게 된다.


 북미는 내 인생계획에 없던 곳이었다. 이유가 너무 심플한데 인종차별을 당하기 싫어서였다. 말레이시아에서 만난 한국 여성분은, 노골적으로 인종차별 당하면서 뭐 하러 미국에서 사냐고까지 했다.


 이방인의 신분으로 살아온 시간이 어언 10년이 되어가는 나에게 인종차별 이슈가 강 건너 불구경만은 아니다.


 내가 캐나다에 온 것은 2019년 12월이고, 2020년부터 세상은 '코로나'에 점령당하게 되었다. 뉴스에는 연일  '동양인 차별'에 대한 소식이 전해졌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으로부터 많은 아시안들이 'Go back to your country'를 당했다거나, 노상에서 갑자기 폭행을 당했다는 사건들이 보도되었다. 


 2020년 봄 무렵이었다. 한 상가 단지에 방문을 하고 차를 몰아 주차장을 나오고 있었다. 주차장과 길이 맞물리는 곳에서 도로의 차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한바탕 차들이 내 앞을 지나가고 어느 정도 한적해질 때쯤 저쪽에서 하늘색의 작은 차가 뽈뽈거리며 서행을 했다.


 점점 더 속도를 줄이던 차는 내 앞에 우뚝 멈췄다. 차 안에는 깡마르고, 백발에 가까운 금발의 할머니가 멋진 보라색 재킷을 입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그 할매는 갑자기 나를 향해 손을 들어 올리더니 '미들 핑거'를 추켜세웠다.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녀의 창백하게 마른 손 끝에 박혀있는 새빨간 긴 손톱을.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었고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미들 핑거를 당당하게 세운 뒤 그 할매는 다시 차를 움직였다. 황당하기도 했지만 당연히 기분이 나빴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


 무엇보다 뒷자리에 탄 아이가 그것을 목격했을까 봐 신경이 쓰였다. 아이에게 앞에 차 봤냐고 물어보니 다행히 못 보았다고 했다.


 당장 할매 차를 쫓아가 창문을 열고 F*** **u!!!!!라고 외쳐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당연히 참았다. 똑같은 인간이 되면 안되니까. (혼자 있었다면...... 장담 못하겠다)그 일이 있고, 며칠 내내 미들 핑거의 잔상이 맴도는 시궁창 속에서 헤엄쳐야 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그 어떤 감정보다 서러움이 컸다. 


 이 나라 저 나라 외국에서 산 햇수가 10년이 되고 해외 여행을 많이 다닌 나는 다양한 인종차별을 경험했다.


일본에 여행 갔을 때는 대놓고 너네가 놀러 오는 게 싫다는 극우파를 만난 적도 있다. 말레이시아에 살 때는 서양인 우선 서비스 제공에 나의 사회적 위치가 강등 당하는 경험도 해 보았다.


 캐나다에서는 미들 핑거 화살을 맞았고, 휘슬러에 가서는 빈 테이블이 버젓이 보이는데 지금 자리가 없다는 말도 들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니 다른 직원이 손님을 테이블로 안내한다. 아, 그 여자는 나에게 테이블을 주기 싫었구나.


 식당 차별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많이 들었다. 1)식당이 텅텅 비어있는데 자리를 배정해 준 곳이 화장실 바로 앞자리였다. 2)밖에 보이는 곳은 서양인만 앉아있고 식당 구석 자리들은 둘러보니 모두 동양인이었다. 3)내가 당한 것처럼 자리가 있는데 없다고 한다. 이런 식의 차별은 항의를 하면 '예약이 되어 있다' 또는 '그럼 다른 자리 줄게'처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넘어간다.


 외국에 살거나 방문을 하면  사소한 일에도 '이거 인종 차별 아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차별을 하는 사람보다는 친절하고 멀쩡한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모르는 백인에 대한 역차별도 존재한다. (역차별이라는 말조차 차별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 백인은.....'과 같은 생각도 위험하다. 프랑스인 친구 샬럿은 전형적인 코캐시언의 외모를 하고 있다. 그녀는 단지 자신이 백인이기 때문에 거만하고, 도도하고, 동양인을 차별하는 사람일 거라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고 했다. 이것은 또 다른 '차별'이라고 말했다.


 뉴욕의 명문 고등학교에서 도입한 인종 쿼터제가 큰 공분을 산 적이 있고, 할리우드에서는 백인 남성과 비백인 여성의 베드신은 있지만 비백인 남성과 백인 여성의 베드신은 없다는 말도 있다. 유색인종에 대한 경멸의 집단 KKK, 유대인 말살정책의 근간인 우생학은 파시즘적 사회이데올로기 인종차별이다.


 나는 앞으로도 10년 가까운 시간을 이곳에서 보낼 계획이다. 아마 오해인 듯, 오해 아닌, 오해 같은 인종차별을 당할 수도 있고, 거꾸로 내가 누군가를 차별 할 수도 있다.


 이번에 뉴욕 지하철 인종차별 사건의 피해자인 영 가족 중 어머니의 인터뷰를 보았다. 어머니는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이지도 않고 아주 침착했다. 가해 소녀들을 그저 철없는 어린 소녀들로 바라보았다. 인종 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질풍노도 사춘기 소녀들의 일탈 정도로 여기는 듯했다.


 영은 소녀들의 처벌보다도 우리가 사회 공동체로서 모두에게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나아가 폭력을 휘두른 가해 소녀들과 흑인 커뮤니티를 상대로 한 분노가 커지고 있는 데 대해 우려스럽다는 입장도 전했다.*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그 소녀들에게 좋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길 바라요.
뭔가 긍정적인 걸 원합니다.
-영



 영의 인터뷰를 보는데 참 성숙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커의 인상으로 남은 빨간 손톱 미들핑거 할매도 누군가의 엄마이고 할머니일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동양 사람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들어 올린 그 손가락. 


 그 할매의 딸은 자신의 어머니가 그런 행동을 한 것에 대해 '엄마 굿 잡'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미성숙한 할매와 그녀의 자손들이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노예제 반대론자인 프레드릭 더글러스*가 한 말로 매듭을 짓겠다.


그들은 나에게 모욕을 줄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내 안에 있는 영혼에 모욕을 줄 수 없어요. 나는 이런 대우를 받는다고 해서 모욕을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무례를 가한 사람은 그 행위 그 자체로 모욕을 받겠지요.








표지그림: Lego Joker from Lego Website


*Frederick Douglass, (1818년 2월 14일 ~ 1895년 2월 20일)는 미국의 노예제 폐지론자, 신문 발행인, 강연자, 정치가이자 개혁가였다.


*참고 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230808162051072?input=1195m


https://imnews.imbc.com/replay/2023/nwtoday/article/6512402_362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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