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무례하고 싶다.
아니, 편안함의 탈을 쓴 무례한 사람이 되고 싶다.
너를 위함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이고 싶다.
'우리 사이'라는 망치로 경계를 허물고 마구 침범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네 것은 내 것 내 것은 내 것이라는 자세로 상대의 마음을 마구 후비고 들어가고 싶다.
다리가 두꺼운 친구에게 골프 잘 치겠다고 돌려서 놀리고 싶다.
살이 홀쭉하게 빠진 친구에게 살쪘던 사진을 보여주며 "너 이랬잖아~"라고 흑역사를 들이밀고 싶다.
감성적인 글을 쓰는 친구에게 중2병이라도 걸렸냐며 딴지를 걸고 싶다.
갔던 여행지 또 간다는 친구에게 그게 무슨 돈지랄이냐고 야유를 퍼붓고 싶다.
남의 집 아이가 아직 안 먹어본 음식이 있으면 왜 안 먹이냐고, 나중에 커서도 안 먹는다고, 먹이라고 잔소리하고 싶다.
남의 집 아이가 위인전을 안 읽었다고 하면, 그걸 왜 안 읽혔냐고, 위인전은 꼭 읽어야 한다고 참견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지도 않은 일에 감 놔라 대추 놔라 조언을 해대고 싶다.
남의 집 엄마가 자기 아이를 대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하면 '된다, 안 된다' 간섭하고 싶다.
식사하는 자리에서 내 아이가 오늘 아침에 폭풍설사했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싶다.
공부를 하다만 친구에게 그것도 끝까지 못할 거면 뭐 하러 돈 들였냐고 핀잔을 주고 싶다.
카드 한도 초과가 떠서 결제를 못한 친구에게 돈 관리를 어떻게 하고 사냐고 무안을 주고 싶다.
친구가 만나는 남자가 '내'가 보기에 별로라고, 겨우 그런 놈 만나냐고 헤어지라며 으름장을 놓고 싶다.
나 때문에 기분 나빴다고 하면 '우리 사이에 뭐 그런 걸 갖고 그래~'라고 대충 넘어가고 싶다.
다양한 상황에서 쉽게 말을 내뱉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나는 그런 경우에 대부분 침묵이나 어색한 웃음으로 상황을 넘겼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결국 안 보게 된 사람들인데 너무 말을 아끼고, 참고, 삼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받아칠 수는 없었던 걸까.
나는 무엇이 그렇게 조심스러웠을까. 내 뇌에서 입으로 가는 중간에는 이런 필터가 깔려 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저 사람이 기분이 나쁘겠지?
어쩌다 실수로 필터가 걸러내지 못한 말이 튀어나갔을 때에는 상당한 죄책감에 타격을 받았다. 상대의 감정을 내가 책임져 줘야 할 것만 같았다.
나에게 무례한 침을 튀기고 있는 사람에게 하지 말라고 해야 하는데, 입에 풀칠이라도 한 것처럼 안 떨어졌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나는 마음속 손절리스트에 한 줄을 더 그을 뿐이었다.
어디까지 말을 하고 어디까지 삼킬 것인지, 어디까지 들어주고 어디까지 안 들어줄 것인지.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는지, 나도 그냥 생각나는 대로 입에서 마구마구 쏟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거침없이, 저돌적으로 무례하고 싶다.
표지그림 : Peter Vilhelm Ilsted (Danish: 1861-1933), <Sunsh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