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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Apr 24. 2024

내 인생 멘토의 은퇴

진짜 홀로서기의 시작


     

어떤 끝은 어떤 시작이다. 



로랑스 드빌레르는 <모든 삶은 흐른다>에서 바다를 모티브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인간이 바다 앞에서 무력해지는 이유는 그것이 고정불변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다는 끝없이 상승하고 하강하며 때로는 무섭고 때로는 고요하다. 심지어는 고요함 속에서도 같은 물결은 없다. 쉬지 않고 다른 모습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다이다.      


우리가 사는 삶도 매일 같은 날의 반복 같지만 그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원인은 파도의 높낮이의 변화가 아니다. 진짜 문제의 원인은 파도의 크기를 놓고 벌이는 내 마음의 해석이다.      


내가 가진 정서도식의 해석이 나를 완전한 궁지로 몰아붙였을 때, 나는 터지기 직전이었다. 내가 살기 위해 파도를 교정해 줄 사람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나의 상담 선생님과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2020년 여름 어느 날을 시작으로 4년 가까이 되는 내 인생의 약 1/10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많은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      


40년을 살면서 나 자신과의 불화에 종지부를 찍고 익숙했던 많은 것을 버렸다. 기존의 프로그램을 삭제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짜 나아가야 했다. 익숙했던 것은 편안하지도, 안전하지도 않았다.      


늘 반복하는 불만과 감정의 폭주, 원하지 않으면서도 마셔야 했던 술의 문제는 마음 깊은 곳에서 ‘어떻게 좀 해 보라고’ 외쳤다.      


나는 2000년대를 살고 있었지만 내 무의식은 온통 과거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과거에 맞추어 비합리적인 복제와 재생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과 나는 이것을 하나씩 하나씩 끄집어내 비추어보고 다른 틀에 넣어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 내는 일을 해 온 것이다.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의 양식을 송두리째 바꾼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작업이다. 나 혼자였다면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리모델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렇기에 나는 계속 깨어있어야 한다.      


굵은 상담회기를 마칠 때 선생님은 ‘살다가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작년 봄에 세 번 다시 선생님을 찾았고, 올봄 다시 선생님을 찾았다. 그런데 선생님이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한다고 하셨다.      


상담의 최종 정리도 할 겸, 선생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오늘 선생님을 찾았다. 마지막 상담 동안  말로 다 전하지 못한 마음을 편지로 남겨본다. 

 



선생님께     

선생님께서는 선생님 자신은 그저 보조였고 도구였을 뿐이라고, 다 제가 한 거라고 말씀하시지만요.

 그 어떤 주연도 조연이나 촬영을 도와주는 스텝이 없으면 영화를 찍을 수가 없는 것처럼,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제가 이만큼 성장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선생님은 풍랑이 이는 어두운 바다에서 저에게 등대가 되어주셨어요. 

상담을 받으면서 인생의 주요 키워드가 된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 선생님과 나눈 대화를 항상 잊지 않을게요.  

제가 저를 재양육할 수 있도록, 제 마음의 방파제를 쌓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조력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으로부터 듬뿍 받은 사랑이 제 마음에 든든한 밑거름이 되어줄 거예요. 

선생님의 은퇴 소식을 듣고, 고혜경이라는 신화학자의 ‘은퇴 retirement'라는 단어 대신 ’ 재점화 refirement'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선생님의 인생 2막이 재점화되어 아름다움과 행복으로 가득하시길 기도할게요.    

사랑합니다.          





표지그림 : 오귀스트 르누아르, <아스네르의 세느강(더 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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