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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May 05. 2024

어디까지 알아야 할까?

몰랐으면 더 좋았을 일들에 대해


 

사람들은 자꾸만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한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 MBTI에 몰두하고, 저 사람이 맨 가방이 얼마인지 알고 싶고, 저 사람이 탄 차가 얼마인지 알고 싶다.    

  

우리는 또 자신의 몸에 관심이 많다. 건강과 질병에 대한 정보가 감당이 안 될 만큼 흘러넘치는 요즘이다. 건강에 대한 걱정이 과하면 질병불안장애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어떤 질병불안장애 환자는 하루에도 몇 군데의 병원을 찾아다닌다. 반대로 어떤 경우에는 의사를 만나는 것을 기피한다. 의심스러운 병명이 의사의 입에서 확언이 되어 나오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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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고 지나갔어도 되는 일들을 본의 아니게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정신적 타격을 입는다. 뾰족한 진실은 타인에 대한 실망, 나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지기 일쑤이다.      


선물 받은 가방을 나중에 쓰려고 넣어두었다가 가방 안에서 뜻밖의 것을 발견한다. 가방 안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품질보증서에는 선물을 받은 날로부터 여러 해 전의 날짜가 적혀 있다.  

    

깨알같이 적힌 짧은 메모는 대상이 불분명하지만 목표 대상에 닿지 못하고 퉁겨져 나온 메아리 같다.      

 

선물을 재활용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상대에 대한 실망도 하지 않을 것이다. 선물에 대한 보답을 한 과거의 나를 원망하는 마음도 안 들 것이다.      


시험을 보고 시험지를 돌려받으면 틀린 문제를 확인한다. 고민 고민 하다가 맞게 표기했던 답을 틀린 답으로 고쳤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심장이 요동친다. 집채 만 한 후회의 물결이 몰려온다.      


차라리 무슨 문제를 틀렸는지 모르는 채로 점수만 안다면 나의 선택에 대한 원망까지는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딱 그만큼의 가치가 있어서 선물을 재활용했다고 믿으면 기분이 상하니 정신승리가 필요하다. 선물을 준 상대를 이해하려고 해본다. 그 사람은 구두쇠이거나, 선물은 꼭 하고 싶은데 형편이 여의치 않은 사람일 것이라고 포장해본다. 


정말 몰라서 틀린 것보다 알면서 틀렸다는 과거의 나에 대한 원망을 접는다. 피드백 덕분에 문제의 답이 정확히 무엇인지 깊이 각인이 되었다고 위로한다.      


스토아 철학에서는 운명에 의해 사람들에게 발생하는 일들은 선도 악도 아닌 ‘가치중립적인 일’이라고 한다. 이런 것은 참된 행복과는 상관이 없고, 우리 자신이 이 일에 대해 ‘좋다’, ‘나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괴로움을 겪게 된다고 한다.      


불교의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한다. 번뇌는 자신의 집착으로 인해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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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몰라서 괴롭고, 알게 되어서 괴롭다.     

 

너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화를 내는 것은 아무 쓸데없는 짓일 뿐이다. 그 일들은 네게 아무런 감정도 없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 제7권 38>   

 

우리는 매일매일 살면서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 삶이 다 하는 날, 집에 굴러다니는 가방을 누군가에게 선물처럼 준 사건이, 답을 잘못 적은 시험 문제 하나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가져다줄까?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우연히 기억이 난다면 ‘풋’ 하고 김 빠진 웃음만 나오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들을 단정적으로 평가하기가 어렵다. 
너무나 화가 나거나 도저히 참을 수 없거든, 인생은 순간이고, 머지않아 우리 모두가 땅에 묻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라. 
우리를 괴롭게 하고 화나게 하는 것은 우리의 판단이다.    

-명상록에서  


몰랐으면 더 좋았겠지만 알게 된 것에 대한 판단의 몫은 우리 자신이다. 이것을 번뇌로 만드는 것도 결국 우리 자신이다. 





표지그림 :  Silvestro Lega , <The curious woman> (Original Title: La curiosa), 1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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