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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May 06. 2024

합석, 그 불편한 온기

       

부킹

나이트클럽에 가면 ‘돼지엄마’가 여성 손님들의 손을 잡고 남성 손님들만 있는 테이블에 합석을 시킨다. 지금은 ‘즉석만남’이라고 하는 부킹이다.      


술집에서 남자끼리, 여자끼리 온 테이블의 합석도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고전이다. 요즘은 ‘헌팅포차’라는 타이틀을 달고 목적이 ‘합석’인 곳도 있다.  


합석의 불편함은 술이 돌며 어느새 훈훈한 온기를 가득 머금는다. 

  

택시

비행기나 버스, 지하철은 많은 사람을 한 번에 수송할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수긍하고 이용한다. 낯선 사람과의 합승이 디폴트이다.     


택시는 다르다. 돈을 더 내고 개인 운송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택시에도 합승은 존재한다.      


어느 늦은 밤, 까마득히 먼 곳에서 지하철 막차를 놓쳤다. 택시비로 큰 돈이 들 것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보다도 택시를 못 잡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차올랐다.     


지하철 역 주변에는 ‘막차 끊김’ 특수를 노린 택시 기사 아저씨들이 목적지를 목청껏 외치며 호객행위를 했다. 대부분 장거리 행이었다.      


마침 우리 동네 이름을 외치는 아저씨가 있기에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아저씨는 크게 인심이라도 쓰듯 나를 택시에 태웠다.      


택시 안에는 이미 세 명의 내 또래 남녀가 어색한 공기 속에 착석하고 있었다. 야밤의 미아가 될 뻔 한 내가 차 문을 닫자, 택시는 밤거리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더 고생하지 않고 무사히 집에 갈 수 있는 온기와 함께 택시는 적막이 가득한 불편함을 안고 달렸다.      


신혼여행

단체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고 싶은 곳이 가이드를 대동한 그룹이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인 경우는 제외이다.     

 

13년 전, 남편이 자기만 믿으라고 신혼여행을 예약을 했는데 개인 여행이 아니었다. 


발리 공항에서 리조트는 다르지만 같은 셔틀버스를 탄 커플과 여러 번 마주쳐야 했다. 전통 공연을 보러 간 날은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 네 명을 위한 합석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었다.  

    

둘러보니 다른 커플 들도 여행사 별로 합석이었다. 선택의 여지없이 나와 합석한 커플과 식사를 해야 했다. 성격이 활달한 내 남편은 어떻게든 분위기를 띄워보려고 맥주도 시켰다.      


하지만 남편은 상대 남자에게 맥주를 한 잔 따라주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그 커플과의 대화는 좀처럼 탄력을 받지 못했다.      


마치 바람이 빠진 농구공을 남편 혼자 열심히 바닥에 내려치는 느낌이었다.      



날씨는 덥고 합석은 불편했다. 



그다음 날은 신혼여행의 하이라이트 코스였던 해변가 레스토랑을 찾았다. 이번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 커플과 어제의 커플과 합석 세팅이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너무 짜증이 났다.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나의 이 로맨틱한 허니문 저녁을 불편하게 또 합석을 해야 하나 싶었다.      


결국 나는 따로 테이블을 줄 것을 요구했고, 여행사 직원은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는 태도로 준비를 해줬다.

      

남편은 나한테 까칠하다고 하면서 다른 커플들이 합석하여 화기애애하게 노는 모습을 부러워했다.     

 

/     


푸드코트

이름난 맛집이나 사무실 밀집지역의 점심시간은 밥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합석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다. 


며칠 전 아이와 그랜빌 아일랜드 푸드 코트에서 밥을 먹었다. 사람이 어찌나 많았는지 테이블 잡기 경쟁이 치열했다.  

    

가방도 아니고 키가 나 만한 아들을 던지다시피 해서 테이블을 잡았다. 내가 잠시 테이블을 비웠다가 돌아오니 왠 낯선 중국인 아주머니가 열심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들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 아주머니가 와서 몇 명이냐고 묻기에 2명이라고 했더니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류애를 생각했다. 내가 밥을 들고 자리를 못 잡을 때 누군가가 선뜻 합석을 하게 해 주면 너무나 감사할 것 같았다. 


그런데 아이 혼자 있는 것을 보고 '앉아도 되냐' 묻지 않고 앉으라고 하지 않았다 앉아버린 아주머니와의 합석이 묘하게 불편했다.  



불편한 온기였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합석을 경험하는지 알 수 없다. 공연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돈을 내고 합석을 한다. 날고 달리는 교통수단에서 합석을 하고, 식당에서 합석을 하고, 사랑을 찾아 합석을 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는 지금 지구 위에서 다 같이 합석을 하고 있는 중이다.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감사한 온기를 느끼면서 말이다. 





표지그림 : Edward Hopper, <People In The Sun>,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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