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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May 27. 2024

등 떠밀려 아이폰을 사다

뜻하지 않게 부모님을 이해하게 된 날


    

아이폰 6을 쓴 지 4년 반이 되었다. 휴대폰계에 신제품이 출시가 되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는 나는 내 휴대폰에 만족하고 살았다.     

 

주변에서 아이폰 유저는 5년, 6년 정도 쓰고 바꾸는 걸 심심치 않게 보았다. 그랬기에 올 겨울 블랙프라이데이에나 바꿀까 말까 생각 중이었다.      


나의 아이폰 6가 아주 멀쩡하다고 하기에는 슬슬 문제가 나타나기는 했다. 오래된 기기는 인터넷도 느려진다고 하는데 확실히 뚝딱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카메라 설정도 내가 원하지 않는 상태로 매번 바뀌어있었다. 유튜브에서 실수로 쇼츠를 누르면 나갈 수가 없었다. 전원을 껐다 켜는 것만이 유일한 쇼츠 탈출 방법이었다.      


이런 나의 아이폰 6에 대해 불만을 갖고 바꾸라고 한 것은 아들이었다. 아들은 요즘 누가 카메라 하나 달린 모바일을 사용하냐며 바꾸길 재촉했다.      


엄마는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니까 카메라 렌즈가 두 개 달린 걸로 찍어야 한다는 좋은 구실도 댔다.      


나는 아직 쓸만한 데 뭐 하러 바꾸냐고 버텼다. 그러다가 문득 나의 부모님 생각이 났다.     


낡고 오래된 것을 바꾸자고 해도 완강하게 버티던 부모님. 아직 쓸 만하다며 고집을 부리던 부모님의 모습이 나의 모습에 겹쳐 떠올랐다.   


///


어느 해의 어버이날이 가까워진 날, 아버지의 낡은 지갑을 보았다. 모서리는 닳고 닳았고, 가죽의 겉면은 반들반들 윤이 났다. 원래는 납작했을 지갑이 뒷주머니에 넣어놓은 탓에 아버지 엉덩이 곡선 그대로 휘어있었다.      


어버이날 선물로 아버지께 지갑을 선물했다. 원래 쓰시던 것과 기능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비슷한 디자인이었다. 말씀은 고맙다고 하셨지만 만날 때마다 헌 지갑을 뒷주머니에서 꺼내셨다.      


나와 엄마가 양 옆에 앉아서 바꾸라고 달달 볶고 나서야 아버지는 마지못해 지갑의 내용물을 이사시키셨다.   


아버지만 완고한가 하면 어머니는 한 술 더 뜨신다. 나는 캐나다로 오기 전에 부모님 집 올수리 진두지휘를 맡았다. 서울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한 지도 어언 20년.      


그동안 부모님이 집에 품을 들이신 건 전등교체와 벽지 교체 정도였다. 그나마도 10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나는 부모님께 내가 있을 때 올수리를 해야 한다며 바득바득 우겼고 결국 올수리 추진을 결정하셨다.     

 

베란다 타일 디자인은 원래 구성이 마음에 들어서 바꾸기 싫다고 하셨다. 다른 아파트와 달리 유럽풍의 고상한 디잔인이었던 베란다 타일은 나도 뜯어내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것만큼은 살려두는 것에 동의했다.


문제는 뒷베란다로 나가는 문이었다. 어머니께서 갑자기 이 문에 집착을 하시며 절대 바꾸지 않겠다고 우겼다. 멀쩡한데 왜 문을 바꾸냐며 강경하게 버틴 것이다.      


돈을 지불하는 소비자가 하지 않겠다고 하니 인테리어 업체 사장님도 강요하지 못했다. "바꾸면 보온이 더 잘 되는데...."라는 여운을 남기며 문은 그대로 두겠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던 나는 문을 바꾸어 달라고 사장님께 따로 요청을 할 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어머니의 두고두고 원망하며 삐지는 모습을 보게 될 거 같았다. 

     

올수리를 마치고 나자, 집은 변기까지 모두 새것이 되었다. 앞베란다의 예쁜 타일과 뒷베란다로 나가는 허름한 문만 남긴 채.      


///


아들이 나의 휴대폰을 바꾸라고 성화를 부리는 와중에 멀쩡한데 왜 바꾸냐고 하는 나를 발견하고 피식 웃음이 났다.      


아, 이런 거였구나.      



낡아서 불편해졌다고 해도 그것에 익숙해지면,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게 불편하다.  

    

새로운 지갑이나 새로운 문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익숙한 불편함을 버리는 것이 두려운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새로운 휴대폰으로 갈아탈 때 로그인이 되니 안 되니 하는 것들이 생길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부러질지 언정 휘지 않겠다는 엄마의 뒷 베란다 문 집착에 두 손 두 발 다 들은 딸(나)의 마음이 생각났다. 


자녀는 부모님이 새로운 걸 편하게 쓰는 모습을 보고 싶고, 부모님은 익숙한 걸 바꾸는 게 싫다.


나는 휴대폰을 바꾸지 않겠다고 더 완강하게 고집부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휘기로 했다. 완강한 벽을 대하는 자식의 마음도 알기에.      


오늘 아침 쇼핑몰 문 여는 시간에 아들과 함께 애플 스토어를 찾았다. 새 휴대폰을 구입해서 나오니 아들이 만족하는 표정을 짓는다. 


아들아, 너의 마음도 알겠다. 

부모님, 당신들의 마음도 알겠습니다. 


이렇게 나는 내 이해의 해변을 한 뼘 늘린 셈이 된 듯하다.



표지그림:  Guido Borelli,  <La Porta Rossa Sulla Salitav>, September 10th,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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