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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May 28. 2024

엄마들이 변하는 시간

밤 9시, 우리 엄마 어디 갔어?


      

세 아이를 키우는 친구가 있다. 아들, 아들 그리고 (남편을 바보로 만들었다는) 딸이 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혼이 쏙 빠진다. 세 아이들은 돌아가며 학원을 가고 오며 친구들을 만나러 들락 거린다.       


엄마인 내 친구에게 자기의 물건을 보았냐, 배가 고프다, 준비물 사게 돈을 달라는 등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한다. 친구는 나와 수다를 떨면서 만두를 굽고, 아이들의 물건을 수색하러 다녔다.     

 

그러던 중 첫째가 거실에서 물을 달라고 요구를 했다. 친구는 벌떡 일어나 정수기 물을 받아 아들에게 갖다 주었다.      


-어머, 얘, 너무 친절한 거 아냐?

내가 말했다. 


친구가 답했다. 

-낮에만 그래. 밤 9시 되는 순간 물 달라고 하면 “네가 떠 마셔!!!!!!” 이렇게 돼.     



친구는 낮은 목소리로 생생한 말투를 전달했다. 그 득음의 순간이 떠올라 둘이 키들대고 웃었다.      


그리고 내가 엄마가 되니 왜 친구가 밤 9시에 변신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밤 9시 넘어 신체예산이 바닥난 내가 도끼눈을 뜨자 아들이 말했다. 


내 엄마 어디 갔어?


밤 9시는 아이들에게 무서운 시간이고 엄마들에게는 후회의 역사를 한 줄 채우는 시간이다.      


낮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치약 튄 거울과 세면대가 밤 9시가 되면 그렇게 거슬릴 수가 없다. 낮에는 온화하게 “닦아야지~”라고 말할 수 있는데 밤 9시에는 말이 곱게 나가질 않는다.      


신체예산이 바닥 났기 때문이다. 


우리 신체의 에너지는 정해진 예산 안에서 운용된다. 밤에 에너지를 잘 저축하면 다음 날 아침 신체 예산의 잔고가 든든하게 채워져 있다. 잠을 제대로 못 잤다면 밤의 위험이 아침에도 남아있을 수 있다.    

  

리사 펠드먼 배럿은 <감정은 어떻게 생기는가?>에서 ‘신체예산’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신체예산은 우리 인체의 근육, 에너지, 호르몬 등의 자원을 분배하고 예측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신체예산이 넉넉하면 예측과 판단을 할 때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 다르게 해석 가능한 데이터가 많다면 상황에 따른 유연하고 효과적인 대처가 가능하다.      


반면 신체예산이 부족하게 되면 몸에서 ‘예측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이 오류로 인해 생기는 불편함으로 감정 조절이 어렵게 된다. 해석의 문이 좁아져 낮과 같은 일이 밤에 발생하면 화를 내게 되는 이유이다.    

  

낮에 에너지를 하얗게 불태워버려서 전소가 되면 밤에는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데카르트는 심신이원론을 주장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몸과 마음이 연결이 되어 있다고 믿는다. 뇌는 우리의 몸이고 감정은 신체 에너지와 깊은 연관이 있다.      


신체내부의 감각은 뇌로 전송되고 뇌는 발생할 상황을 예측한다. 이때 에너지가 부족하면 예측 시뮬레이션이 온전하게 돌아가지 못해서 잘못된 결정을 하게 된다.      


신체 에너지가 부족할 때 사람들은 충동구매를 하거나 말실수를 하게 된다.  

    

그래서 쇼핑을 할 때는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잠시 커피타임을 가져야 한다. 냉정하고 현실적인 판단, 현명한 소비를 하기 위해서이다. 


하루의 일과 중에 휴식 시간을 확보해야 하는 것은 신체예산을 원활하게 운용하기 위해서이다. 휴식 시간에는 머물고 있는 장소를 벗어나 에너지 충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것이다. 밤 9시에 표독스러운 엄마로 변신하지 않기 위해서는 쉬는 시간의 공급이 관건이다.        


쉬는 시간에 감사한 일을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긍정적인 감사의 마음이 몸의 대사를 조절하는 뇌 부분이 활성화되게 하기 때문이다. 달리는 경주마처럼 휘몰아치는 일상에서 잠시 시간을 내어 신체예산을 관리하기는 가정 평화의 지름길이다. 




표지그림 :  Alex Jabore, <Early Morning 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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