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하와이에 너무 많은 걸 주셨다'는 말이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 그 아름다움을 만끽하기 위해 연간 수만 명의 관광객들이 하와이를 찾는다.
'하와이' 하면 생각나는 영화 '친구'의 명대사 '니가 가라 하와이'는 준석이가 동수에게 잠시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해 있으라고 하자 동수가 가지 않겠다고 한 말이었다.
하와이는 아름다워서 가고, 안전해서 간다.
아들이 4살이었던 2015년 5월 하와이에 놀러 갔다. 나의 가족(나, 남편, 아들) 그리고 동생네 가족 그리고 부모님.
일전에 3대 가족 여행 보이콧을 외치는 글을 썼던 나지만 당시만 해도 화목한 가족의 표상이라고 한다면 가족여행이 으뜸이라고 여겼더랬다.
당시 하와이 여행에서는 이렇다 하게 나쁜 기억은 없다. 부모님은 오전 일정을 마치면 쉬고 싶어 하셨고 저녁에나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동생과 올케는 나와 달리 돌아다니거나 특별 이벤트에 적극 참여하는 성격이 아닌지라 소소하게 호텔 주변을 탐방하길 원했다.
그렇게 따로 또 같이 일정을 보낸 것도 하와이 가족 여행을 무난한 여행으로 만들어 주었다. 무엇보다도 내 기준으로는 동생과 부딪힐 일이 없었던 것이 좋은 기억이라면 좋은 기억이었다.
만났다 하면 제 성질 못 참아서 정신없이 선을 넘나들고는 '가족'이니까 넘어가라고 운운하던 동생도 매형 앞에서는 '나이스 가이'로 페르소나를 장착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하와이에 가서도 각종 민원(?)을 처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무튼 중타 이상 쳤던 좋은 추억 때문인지, 나의 원가족들은 툭하면 '하와이에서 집합!!'을 외쳤다. 하와이라는 공간이 주는 휴양지로서의 아름다움과 즐거움도 있었지만 위치의 절묘함이 신의 한 수였다.
태평양 한 복판의 하와이라는 섬은 미국에 사는 동생과 한국에 사시는 부모님이 중간 거점으로 만나기에 누구에게나 공평한 거리였기 때문이다.
2023년 1월. 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엄마가 내 의견을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동생이 여름에 하와이에서 모이자는데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거절의 이유를 소상하게 공개된 장소에 줄줄이 늘어놓기는 어렵지만 굵직한 이유는 원가족과 경계를 긋기 위해서였다. 여태껏 원가족과의 여행에서 행동대장은 늘 나였다. 시작은 나의 잦은 여행 때문이었다.
뭔가 써먹을거리가 생겼다고 여기신 건지 아빠는 나에게 가족 여행 계획을 짜게 시키셨고 나는 또 그걸 잘 해냈다.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예약하고, 호텔을 검색해서 예약하고, 여행지의 루트를 짜고, 차를 빌리거나 기차를 예약하는 등 여느 여행사 못지않게 '고객님'들을 모셨다. 어느새 모두 응당 마땅하다는 듯이 나에게 가족 여행의 기획을 일임했다.
2015년 하와이를 갈 때 내 안구를 불태워가며 호텔을 검색하고 여행 정보를 그러모아 관광 루트를 짠 건 거의 나 혼자였다.
다시 여행을 간다면 아마도 또 같은 일이 반복될 확률이 높았다. 네드라 글로버 타와브라는 미국의 심리상담사의 책 <나는 내가 먼저입니다>를 읽지 않았다면 나는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억지로 작년에 하와이에 갔을 수 있고 어쩌면 울며 겨자 먹기로 지금도 하와이에 있을 수 있다.
그렇다. 내 동생의 하와이에서 원가족 집결에 대한 꿈이 2023년 나로 인해 파기되고 올해 부모님을 푸시해서 지금 하와이에서 상봉 ing에 있다.
나는? 캐나다 내 집의 내 책상 앞에 앉아서 얼음 동동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하와이?
하와이 좋지. 그런데 나는 하와이가 그렇게 구미에 당기지 않는 걸 어쩌나? 경계선을 긋기 위한 다음의 이유는 '내가 하와이에 가고 싶지 않음'이다.
가족 여행이라는 이유로 내가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곳을 '가족신화'를 지키기 위해 꾹꾹 참아가며 억지로 가는 것은 나 스스로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행동이다.
나의 에너지를 보호하고, 나에게 큰 기쁨을 주지 않는 사람을 멀리하고, 나를 위해 확고한 결정을 하는 것은 내가 소중하기 때문이다.
내 바운더리는 내가 지킨다. 그래서 나 빼고 갔다. 하와이.
표지사진 : 2015년 5월 하와이 호텔에서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