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 Jun 20. 2024

아들이 캐나다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Hope you continue to shine.

두어달 전부터 아들이 차에 타면 꼭 트는 노래가 있었다. 


바로 BTS의 '졸업'이다. 


왜 이 노래를 자꾸 트나 탐색을 해 보니 아들이 올해 엘레멘터리 스쿨을 졸업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캐나다의 학제는 두 종류가 있다. 초등과정에 해당하는 엘레멘터리를 7년 간 다니고 중고등 과정을 합친 세컨더리를 5년을 다닌 뒤 대학 진학을 하거나 취업을 한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학제와 똑같은데 엘레멘터리 5년, 한국의 중학교에 해당하는 미들 스쿨 3년, 그리고 하이스쿨 4년이다. 거주하는 지역에서 채택한 학제를 따르게 되지만 어쨌든 12년 동안 학교를 다니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


말레이시아에서 첫 교육기관에 발을 들인 아들은 인생 첫 졸업식인 유치원 졸업도 말레이시아에서 맞이했다. 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영문도 모른 채 엄마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곳이었다. 울며불며 적응한 작은 국제 학교의 Nursery(pre-kinder)에서 이어진 유치부 졸업도 하게 되었다. 


인생 첫 졸업인데 아빠도 참석해야 한다며 남편을 말레이시아로 불러들였다. 어차피 아들은 학교에서 주는 가운을 입을터이니 편한 옷을 입혔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아들의 졸업식이라고 준비한 짙은 초록색 실크 원피스를 입고 풀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도 정성껏 다림질을 했다. 전혀 오버가 아니었다. 다른 엄마들도 '오늘이 아니면 언제?' 냐는 기세로 있는 대로 힘을 주고 와서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는 것도 졸업식의 재미 요소였다. 


유치원 졸업식의 또 다른 기억은 냄새와 눈물이었다. 다양한 나라의 체취가 뒤섞인 좁고 무더운 열대의 음악실에서 거행된 졸업식에서 나는 아들이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졸업장을 건네 받을 때 울컥하고 말았다. 


무슨 유치원 졸업식이 대수라고 울고 그러냐고 할 지 모르겠지만 저 어린 존재가 어떤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는 그 환희, 기쁨, 뿌듯함은 말로 다 표현못한다. 게다가 한국도 아닌 이국의 땅에서 어리둥절하게 졸업을 하고 있는 아들을 보니 묘하게 미안한 마음도 든 건 사실이다. 


///



그리고 오늘 드디어 엘레멘터리 졸업식이 있었다. 아들에게 소감을 물어보았는데 새로운 학교에 간다는 설레임도 있고 더 큰 사람이 된다는 느낌이 좋다고 한다. 


일생에 한 번 뿐인 초등 졸업식인데 늘 입고 다니던 추리닝 바람으로 학교에 보내기는 무엇하니 세미정장이라도 입히고 싶었다. 하얀 반팔 셔츠와 회색 바지, 검은 자켓을 사와서 풀세트로 입히니 어디 근사한 사립학교에 다니는 학생 같았다. 


내가 멋지다고 사진 찍자고 달려들자 아들은 이렇게까지 입고 갈 필요가 없다며 한사코 자켓과 넥타이를 거부했다. 


그럼 꽃다발을 준비하겠다고 하니 그런것도 필요가 없단다. 그래서 나보다 앞서 이곳의 엘레멘터리 졸업식을 경험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친구의 경험담에 의하면 꽃다발을 가져오는 사람이 거의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엄마는 뭐 입고 가야 하냐고 물었다. (있지도 않은)샤넬 클러치 백 같은 거 겨드랑이에 끼고 가야 하냐고 물으니 친구가 웃으면서 다들 그냥 대충 하고 온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졸업식인데.....하며 검은색 롱 원피스를 입고 오랜만에 화장도 열심히 해 주었다. 목걸이를 걸었더니 너무 화려해 보여서 빼 버렸다. (목걸이를 빼고도 오늘 참석한 부모들 중에 꾸밈 상위권에 속했다)



졸업식이 진행될 예정인 농구 코트로 들어가니 중앙에 빨간 카페트가 깔려 있고 시상식장을 그린 간이 벽이 하나 서 있었다. 


금새 식이 시작되었고 아이들이 줄지어 입장해 농구 코트의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만국 공통 졸업식의 시작을 알리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가 '짧게' 끝났다. 


학생들은 교장선생님의 호명에 따라 한 명 씩 레드 카펫을 밟고 입장을 했다. 처음 입어보는 듯한 칵테일 드레스에 완벽한 믹스 매치의 조던 농구화, 또는 버켄스탁을 신은 여학생들이 쭈뼛쭈볏 어색한 워킹으로 걸어간다. 남학생들의 민망해 죽겠다는 표정이 어정쩡한 걸음걸이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부모들을 웃음짓게 했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이력과 특이사항, 좋아하는 것, 잘 하는 것, 집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지 등에 대한 나레이션을 읽는 교장 선생님을 보며 목이 아프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학업'이나 '성적'에 대한 언급이 한 마디도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저 아이들의 '있는 그대로의 꿈'을 지지하고, 세컨더리에 가서도 좋은 친구들 사귀라는 응원만 할 뿐이었다. 말레이시아의 국제학교에서도 그러했다. 


모든 아이들은 다르다. 모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앞서 교장선생님의 훈화 시간에 구구절절 좋은 말씀을 하시던 중, 내 귀에 꽂힌 말이 있다. 



We hope you continue to shine.



쉬워서 꽂히기도 했겠지만 'shine'이라니.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는 가장 유연한 10대가 아닐까 싶다. 교장 선생님의 '계속 빛나라'는 그 말씀에 아이들에게서 광채가 나는 마법같은 신기루가 느껴졌다. 


한 곳을 향해 초지일관 맹렬하게 달려가는 한국의 교육환경과 이곳이 얼마나 다른 지 새삼 느끼게 해주는 졸업식이었다. 


이렇게 아들은 말레이시아에서 유치원을, 캐나다에서 초등을 졸업했다. 과연 고등과 대학은 어디에서 졸업을 하게 될지 그의 앞으로의 인생이 자못 궁금하다. 





표지사진 : 아들 학교





매거진의 이전글 흔한 기러기, 흔치 않은 10년 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