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 Sep 09. 2024

관계의 화재진압은 화제전환으로


인간관계에서 한 번 깨진 관계를 도자기에 비유한다. 한 번 깨진 도자기는 아무리 잘 이어 붙인다고 해도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한 번 금이 가면 아무리 '화해'와 '용서'의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상처를 준 과거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관계가 가족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족'이라는 미명아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더 큰 생채기를 서로 주고받게 된다. 


20대 후반 모 대학 심리상담센터에서 풀배터리 검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검사 결과를 분석해 주시던 선생님께서 나의 아버지에 대한 양가감정이 아주 강하다고 하셨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양가감정은 좋은데 싫고 싫은데 좋은 오도 가도 못하는 감정이다. 아빠는 예전부터 술이 한 잔 들어가면 접근의 진입장벽이 확 낮아졌고 다음 날 술이 깨시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돌변하셨다. 


대부분 아버지가 술을 많이 마셔서 곤란한 가정의 경우와 정반대였다. 흔히 듣는 이야기는 평소에 멀쩡하던 아버지가 술이 들어가면 어머니한테 손찌검을 한다거나 자고 있는 아이들까지 깨워서 혼을 내거나 하는 식이니까 말이다. 


아무래도 내가 친정 아빠에 대해 양가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당신만의 고유한 정신적 활동이고, 생활패턴이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한평생 교육자로 살아오신 친정 아빠는 오고 가는 대화보다는 강의와 충고, 조언이 익숙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빠와 마주 앉아서 탁구를 치듯이 대화의 랠리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늘 일방적이고 강력한 스매싱이 날아왔고 받아치기 힘든 변화구 일색이었다. 


몇 달 전 친정 아빠와 간소한 화해의 이메일을 주고받은 이후로 이번 여름에 처음으로 아빠를 대면했다. 나는 아빠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과를 했다고
사람 자체가 달라진 건 아니다. 





사람이란 동물은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봤을 때 미안한 마음이 들 수 있고, 지난날의 과오에 대해 후회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사과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과를 했다고 해서 사람이 내면에서부터 달라진 것은 아니다. 아빠의 일방적인 설교와 약점을 노리는 공격적인 말투는 예전과 똑같았다. 


아빠의 태클이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방어적이 되어 나 자신의 행동을 해명하거나 아빠를 설득하려는 행동양식이 나의 몸에 배어 있었다. 구구절절 설명을 하다가 언성이 높아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혹은 내가 퉁명스럽고 강하게 받아치며 역공격을 하면 아빠가 기분이 상해서 자리를 피해버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상담심리와 관련된 한 수업에서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60세가 넘은 분들이 사고방식을 바꾸고 언어습관을 바꾸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내가 아빠에게 갑자기 공감의 대화법을 요구할 수는 없다. 아니, 설령 요구를 하더라도 아빠가 공감 대화를 갑자기 하는 건 정말 하늘의 별을 따는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언어 습관을 고치려고 그렇게 혀를 깨물었던 나도 어떨 때는 예전의 말투가 툭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아빠는 앞으로도 계속하던 대로 말씀을 하실 것이다. 그 말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반응하지 않는 것이라는 걸 이번 한국 여행에서 깨달았다. 일일이 해명하며 반응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하는 것이 관계의 균열을 더 깊어지지 않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불리한 상황이 되면 화제를 급 전환한다. 내가 잘 못하는 것이 화제의 급전환이기도 하다. 


한국을 떠나기 전날 부모님과 함께 한 점심 식사 자리에서 나는 또 아빠의 페이스에 휘말려서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고 말았다. 


그냥 한 마디만 했으면 되는 일이었다. 예를 들면, 


"그나저나 요즘은 탕후루가 유행이 다 끝났다며?" 하는 식으로.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는 말에 대해서 일일이 나 자신을 옹호하며 상대를 납득시킬 이유는 없다. 


관계에서 화재가 날 것 같으면 화제를 전환할 수 있는 센스!! 그것이 나를 지키는 힘이다. 







표지그림 : 동네 피자가게의 두가지 레모네이드 









매거진의 이전글 삐짐이라는 방어기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