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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ul 06. 2023

그 얘기 벌써 n번째

아카네 상, 술 드시면 안되겠어요.

 나의 대학 전공은 일본어이다. 사연이 좀 있긴 하지만 동네 친구가 할 일 없으면 일본어나 같이 배우지 않겠냐고 해서 등록한 일본어 학원을 시작으로 꽤 오랜 시간을 일본어와 함께 살게 되었다.


 말레이시아에는 한국인도 많지만 그만큼 일본인도 많이 거주를 한다. 사실 나는 영어보다는 일본어가 훨씬 편했기에 자연스럽게 일본인 엄마들과 교류를 맺게 되었다.


 아카네라는 여성을 만나게 된 것은 한 아이의 생일파티에서였다.


 그곳에서 일본어로 아이들에게 말하는 엄마를 보고 다가가 말을 붙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그녀의 일본어 억양이 조금 독특했다. 내가 일본어의 전국 사투리를 다 아는 것도 아니고 해서 어느 지역 출신인지 물어보았다.


 조금 망설이던 그녀가 뜻밖에도 자기는 중국인이라고 한다. 일본 유학 중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고, 일본으로 귀화를 해서 '아카네'로 개명을 했다는 것이다.


 나의 아이와 생일파티 주인공은 수영 교실에서 알게 된 사이였는데 아카네는 자기 아이들도 그 수영그룹에 참여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마침 한 아이가 그만 둘 예정이었던 터라 자리가 공석이 되니 시간만 맞으면 오케이라고 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매주 2일을 수영장에서 (말레이시아는 수영장에서 역사가 많이 이루어진다) 만나게 되었다. 그녀의 콘도는 내가 사는 곳의 바로 옆에 위치했다. 그녀의 가족 시스템도 우리와 같이 유학 패밀리였다.


 동병상련(?)으로 보다 가까워졌고 밖에서 함께 외식을 하기도 하고 우리 집이나 그녀의 집에서 -역시- 술을 마시기도 했다. 아카네는 나 못지않은 주당이었다. 그녀의 집에서 술을 마시면 남편이 일본에서 가져온 복꼬리 말린 것을 오븐에 구워 히레사케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입심이 좋은 그녀와 술을 마시면 초반전은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그런데 술자리가 길어지는 날,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으로 진입하면 그녀의 머리 위로 검고 묵직한 먹구름이 뭉개뭉개 피어오른다. 벼락같은 큐 사인이 떨어진다.


"유미가 유치원 때....."를 시작으로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녀가 첫째를 일본에서 유치원에 보내던 당시의 서러운 차별 스토리였다. 솔직히 진짜 차별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녀가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지레 오해한 것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방인에게 '차별'은 뭉근하고 음흉한 형태로 접근하는 일이 많은 터라 어떤 이의 뜻 없는 행동에도 차별이 아닌가 의심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유치원에 중국인 엄마는 아카네 혼자였고 동네에는 그 흔한 중국인이 한 명 없었다고 한다. 중국 사람이라서 그렇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일본인 보다 더 일본인스럽게 행동하려고 그녀는 사투에 가깝게 고군분투했다.


 내가 일본에 처음 유학 갈 때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 朝鮮人しょうがない라는 말을 듣지 않게 행동해라"


(조센징 쇼가 나이 - 조선인은 어쩔 수가 없어)

할머니는 나만 보시면 朝鮮人しょうがない를 반복하시며 일본에 가면 행동거지를 바르게 하고 다니라고 신신당부하셨다.


일제강점기를 사셨던 할머니에게 일본은 위압적인 존재였고 스무 살 갓 넘긴 손녀가 홀로 적진(일본)으로 떠난다니 많은 걱정을 하시는 게 당연했다.


 그런 마인드를 일찍이 이해하고 있었기에 아카네의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정확하게는 눈물 없이 말할 수 없는 중국엄마의 일본 유치원 생존기는 처음에 두 번 까지는 딱한 마음으로 경청을 했다.


 아카네는 울었다. 술을 마시고 후반전으로 달려가면 일본에서 받은 설움의 온도가 달아올라 그 뜨거움을 견딜 수 없어했다. 눈과 코가 새빨개지도록 울면서 목소리가 건조하게 갈라지면 술을 마셨다.


 누구에게나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는 일이 있다. 트라우마는 꽁꽁 숨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정체성을 그 트라우마에 일치시켜 버리는 사람도 있다. 즉, 그 사건 자체가 그 사람이 되어버리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한국 남성들이 술만 마시면 군대얘기를 하는 이유가 그들에게 그것이 상처로 남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어쨌든, 수개월에 걸친 걸쭉한 술자리에서 100%의 확률로 후반전에서 똑같은 얘기를 하며 우는 아카네와의 술자리는 이제 '시마이(마무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도망 다니기 시작했다. 나 혼자 속 편하게 술을 마시고 싶었다. 내가 취해서 혼자 울지언정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신파스토리를 안주로 술을 마시기는 싫었다.

 어쩌면 적당히 흘려 들어버리고 내 술에나 충실했으면 되는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매번 같은 얘기를 듣는 건 곤욕스럽다.




술만 마시면 욕을 하는 오래 된 친구를 손절했다.

술만 마시면 개가 되는 남자친구를 갖다 버린 적이 있다.

술만 마시면 우는 아카네를 피해 도망 다녔다.


나는 술 마시고 친구들하고 서먹해진 적이 있다.

나는 술 마시고 헤어진 남자친구한테 전화했다가 서로에게 비수를 꽂아 인격을 살해한 적이 있다.

나와의 술자리 후, 술부림이 심하다는 이유로, 다시는 같이 술 안 먹는다고 누군가 뱉은 소리를 건너 들은 적이 있다.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는 실수, 손절을 부르는 술주정, 분노를 머금은 혼술의 굴레는 중독으로 가는 치명적인 나락의 길을 차곡차곡 밟아가는 것이다.


술은 분명히 인간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정상적으로 마셨을 때의 이야기이다. 두 번, 세 번, 그 이상 거듭해 습관처럼 타인에게 불편함을 준다면 나에게는 술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정확한 질환명이 '알코올 사용 장애'일까. 알코올 사용에 있어서 문제가 있는 사람은 술을 끊어야 하는 게 맞다.  


누군가에게 손절당한 나처럼......그리고 나에게 손절당한 그 누군가들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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