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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Aug 09. 2023

마지막 바이올린 수업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고 싶으세요?

 1년 반쯤 전, 아이의 바이올린 마지막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언제든 다시 레슨을 시작하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선생님을 보내드렸다.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덮어버렸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눈물이 난 사람은 아이가 아니고 엄마인 나였다.   


  아이가 4살이 되었을 무렵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는 말을 꺼냈고, 나의 에고는 이미 음악 유학 수속을 마치고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고 있었다.


 당시에는 클래식 음악을 지금처럼 즐겨듣지도 않았기에 아이가 어디에서 바이올린을 알게 되었는지 신통했고 모차르트의 환생인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 근거 없는 의심은 아이가 바이올린을 시작하고 6개월쯤 되었을 무렵, 대한민국에서 환생한 모차르트는 고소현 양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현실과 마주 보게 되었다.


 비록 빈으로 가는 내 마음속 티켓은 취소되었지만 아이는 바이올린을 좋아했다. 걸음의 속도가 라르고여도 어쨌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기에 언제고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날이 올 거라고 믿었다. 환상에 집착하는 나의 에고가 기적을 꿈꾸게 하는 부채를 쉬지 않고 팔랑거렸다.


 말레이시아를 떠나 캐나다로 옮겨오고 나서도 바이올린 레슨은 이어졌고, 레슨 선생님으로부터 지역 유스 오케스트라에 한 번 지원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를 받았다. 아이의 실력이 혼자 듣기 아까워서라기보다는 동기가 주어지면 조금 더 연습을 하지 않겠느냐는 연습 강화의 목적이  컸다.


 나는 유스 오케스트라 입단 시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최신상 아이폰을 선물하겠다는 최고의 포상을 걸고 아이의 연습을 도모했다. 하지만 아이는 아이폰도 필요 없다며 최소한의 연습으로 레슨을 연명해 나갔다. 그런 떼우기 식 연습은 금방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때가 왔다. 이제 바이올린을 놓아주어야 할 때 말이다.


 아이는 바이올린이 좋고 잘하고 싶지만 연습은 하기 싫다는 이율배반적인 혼란의 함정에 빠져버렸다. 달력에 연습 스티커도 붙여서 포상도 해 보았고, 연습할 때 부담을 느끼지 말라고 나는 방에 숨어있기도 해 봤지만 올라가는 난이도만큼 바이올린 연습에서 벗어나고 싶은 아이의 욕구도 올라갔다.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체르니 40-20 칠 때 4페이지 중에 마지막 한쪽은 누가 좀 대신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레슨 종료 2주 전 선생님께 레슨을 그만해야 할 거 같다고 어렵게 말씀을 전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하신 선생님은 그저 아이가 보고 싶어질 거 같다는 말씀만 하셨다. 마지막 레슨을 마치고 선생님이 떠난 문 앞에 서서 울던 나는 생각했다.



나는 바이올린을 좋아하고 음악을 즐기는 아들을 원했던 걸까?



아니면 바이올린을 잘해서 오케스트라 단원이 된 아들을 원했던 걸까?



 성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처구니없게도 내가 원했던 건 근사한 턱시도를 입고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오케스트라 단원 아들을 '뽐내는 나'였다. 오케스트라 단원 아들은 조연이고 뽐내는 내가 주연인 것이다.


  바이올린 사태가 한참 지난 뒤 읽게 된  <깨어있는 부모>에서, ‘아이가 많은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탁월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 부모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하는 구절을 읽었다.


이것은 아이가 진정한 자기 모습을 찾도록 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부모로서 대리만족을 느끼기 위해서인가?


 지난날, 오케스트라 단원이 된 아들을 '자랑하는 것'이 좌절된 내가 생각났다. 부모가 아이에게 기대해야 할 것은 세 가지이다. 자기 자신, 다른 사람, 그리고 안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어떤 부모 강의에서 강사가 엄마들한테 말한다. 말투와 내용이 사뭇 공격적이긴 하지만 엄마들의 민망한 웃음을 자아내기엔 충분히 타격감이 좋았다.


"엄마들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어요? 못했죠? 근데 왜 아이들한테 의대 가라고 그래요? 의대 가고 싶으면 엄마들이 공부해서 가시든가요."



나는 나에게 말한다.


그렇게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고 싶으면
엄마 네가 들어가든가.






표지 그림 : Andre Brazilier, Musique à Menton, 2018, 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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