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의견을 존중해
오늘, 아들이 12살 생일을 맞았다.
브런치를 시작할 때, 술에서의 해방일지만을 기록할 생각은 아니었다. 아들 이야기, 피아노 이야기, 원가족 이야기 등을 기록해 나가려고 생각했다.
이미 브런치에 아들 관련 글을 두 편을 작성했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인 아들한테 허락을 안 받았다는 것에 생각이 닿았다. 한 발 늦은 감이 있지만 아들에게 너의 이야기를 브런치에 써도 되겠냐고 물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아들은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벌써 두 편을 썼다고 하니 어떤 이야기냐고 묻는다.
한 편은 머리카락을 길렀다가 잘라서 기부한 이야기이고 다른 한 편은 게임에 엄마 카드 썼던 이야기라고 알려줬다. 아들은 처음에는 둘 다 지워달라고 했다. 나는 머리 이야기가 무려 10,000 뷰가 넘은 글이고 현질도 5,000 뷰가 넘은 글이라고 말했다. (나의 다른 글들은 긴 머리 글의 1% 정도의 뷰가 전부이다.)
아들은 만 뷰가 넘었다는 소리에 솔깃해하며 긴 머리 이야기는 그냥 두어도 괜찮지만, 현질 이야기는 삭제하길 원했다. 사실 몇 천 뷰가 중요한 게 아니라 현질 글의 정보성 때문에 지우기가 아까웠다.
나는 아들을 설득할 필요를 느꼈다. 아들에게 우리가 현질 사태를 충분히 현명하게 잘 대처했기 때문에 우리의 케이스를 다른 사람들과 나눔으로 인해 생길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 설명했다. 어쩌면 더 큰 금액의 현질을 예방할 수도 있고, 현질을 한 어떤 집안의 아들이 덜 혼나고 책임을 지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아들은 실명공개만 하지 않았다면 그런 선의의 정보성 글은 허락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자신과 관련된 글을 쓰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 아쉽지만 아들의 뜻을 수용해야 하기에 매거진으로까지 만든 <여름에 태어난 아이>의 이야기는 그의 12살 생일을 맞이하여 굵고 짧게 종결하게 되었다.
나의 글에 아들이 출연을 안 할 수는 없겠지만 아들에게 생기는 일련의 일들은 개인 블로그에 일기로만 남겨야 할 듯 하다.
너의 의견을 존중한다, 12살 아들아. 생일 축하해. 건강하게 성장하는 너의 미래를 응원할게.
P.S. 생각해보니 브런치에 네 앞으로 편지도 썼네. 그건 내 편지니까 그냥 둘게.
표지그림 : 수원 영통 어느 교회의 화장실에 붙어있던 캘리그래피를 찍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