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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Oct 04. 2023

마음 해킹

구루를 통해 배운 것

자기 직전 아이가 거실로 나가서 한참을 머문다. 얼른 가서 자라고 아이를 침대로 보냈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가 중요한 일이 있다며 컴퓨터를 켠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니 ‘마인 크래프트’ 계정이 해킹을 당했다는 것이다.      


Guru*라는 닉네임의 유저가 디스코드에서 나의 아이에게 [You beamed!!!]라는 채팅을 보낸 것을 보여주었다. 어이가 없었다. 나도 바로 유튜브와 네이버로 ‘마크 해킹’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로비에서 파티를 구했을 때 보내준 링크를 열면 해킹당한다는 글을 발견했다.

-> 너 링크받은 거 있어? 그거 열었어?

-> 아니      

-> 그럼 너 어카운트를 셰어 한 거야?

-> 아니!!!!!!     


문득, 내가 왜 아이를 취조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는 아이인데, 아이로부터 원인을 파악하고자 했다. 원인을 알아야 다시 안 당한다는 것이 나의 의도였지만 돌아가는 형국은 어째 취조실이다. 어디에선가 익숙한 목소리와 대사가 들려온다.


"그러니까 그런 쓰잘데기 없는 걸 왜 해서 일을 만들어?"


나는 고개를 흔들어 낡고 병든 말을 털어버리며 탈룰라급의 태세전환을 했다.     


“이 구루라는 놈이 나쁜 놈이네. 너는 피해자야. 이런 피해는 어른도 당할 수 있는 거야. 엄마가 뭘 도와줄까?”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일이 생각났다. 나는 나이가 지긋한 일본인 부장님의 비서 겸 통역 일을 했다. 그분의 수행만 한 것은 아니다. 나도 직원이다 보니 회사 일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사무실의 다른 직원들과 한 잔 하러 가기도 했다.      


그런데 그 부장님이 툭하면 전화를 걸어서 내가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묻는 것이었다. 주 내용은 사무실 직원들이랑 함께 있냐는 추궁이었다. 어느 날은 회사가 끝나고 집에 걸어가는데 전화가 왔다. 어디냐고 묻길래 집에 가고 있다고 했더니 거짓말하지 말라고 ‘그들’과 같이 있지 않냐고 의심을 했다. 하도 기가 차서 지금 뭐 하시는 거냐고 이런 행동은 월권이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일이 있고 난 주말 저녁이었다. 부모님과 앉아서 밥을 먹다가 나에게 벌어진 일을 얘기했더니 아버지가 눈을 부릅뜨고 말씀하셨다.      


“네가 처신을 어떻게 하고 다녔길래 그런 전화를 거냐?!”   

  

너무 억울했고 분했고 서운해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빠 맞아?’ 이 생각만 들었다. 그 시절만 해도 2차 가해라는 말조차 없었다.      


사실 그 부장님은 한국과 회사에 대해 못마땅한 점, 불만 등을 나에게 수시로 툴툴거렸다. 물론 사무실에서 그 말을 온전히 다 알아들은 사람은 나 하나였다. 나는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도 했다. 친구는 아빠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부장이 내가 자기의 ‘부정’을 다 말하고 다닐까 봐 불안했나 보다고 했다. 나는 내가 모시는 상사가 한 말을 다른 직원들한테 옮기고 다닐 만큼 가벼운 사람은 아니다.     

      

부모는 너무 쉽게 자녀의 마음을 해킹한다. 

피해자로서 자녀가 받았을 상처 보다 문제의 원인 제공에 대한 지적에 초점을 맞춘다. 자녀가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인정해주지 못하고 느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감정으로 교정하려 한다.   

   

우리는 너무 쉽게 타인의 마음을 해킹한다. 

내가 요즘 살이 쪄서 우울하다고 하면 “뭐 그런 일로 우울해하고 그래.” 하며 나의 감정을 부정한다. 성추행성 발언을 듣고 불쾌하다고 하니 “아빠 같은 사람이 농담으로 한 말인데 뭘 기분 나빠하고 그래.”하며 불쾌한 감정을 되려 이상 감정으로 치부한다.      


사람들은 내면에 차곡차곡 쌓인 경험과 판단으로 타인의 감정에 '판결'을 내린다. 피해를 입은 사람의 감정을 부정하고 원인 제공자로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정서적 경험을 무시당하면 그 슬픔과 서운함은 자기 개념을 형성할 때 자신을 못 믿는 것으로 자리 잡게 된다고 인간중심적 상담의 창시자 로저스*는 말한다.      


자기 개념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것은 자신을 대하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이다. 어린 시절에는 그것이 주양육자, 특히 부모님이다. 긍정적 존중에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게 되면 아이는 자라서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어릴 때는 부모의 가치와 기준을 내면화하며 자란다.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을 긍정적인 존재로 여기려면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사랑, 수용, 존중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타인으로부터 받는 긍정적인 평가가 없으면 자신을 긍정적인 사람으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나를 존중하는 사람을 통해 긍정적인 자기 개념을 새로이 형성하게 되면 타인의 인정 없이도 자기 스스로 자기 존중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근간이 된다. 어릴 때 사랑, 수용, 존중의 말을 듣고 자라지 못했다면 외국어를 학습하든 공부하면 된다. 또 사회적인 노력을 통해 새로운 말을 배울 수 있게 된다.


설령 내가 감정의 지지를 부족하게 받고 자랐더라도 그것은 과거의 일이다. 현재의 나는 스스로 그것을 충족하며 삶을 발전시킬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아이를 다르게 키울 수 있는 선택권과 실행할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결국 해킹당한 마크 계정은 장물이 되었다. $25에 팔리기 위해 디스코드에 올라가 있다. 이 계정으로 말할 거 같으면, 지난 6월 현질을 통해 수백 달러의 아이템을 보유한 바로 그 계정이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아이가 $25에 다시 사달라고 했다. 순간 수백 달러 어치의 아이템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 결론은 단순했다. "범죄에 동참할 수 없다."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있는 것이다.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니 흔쾌히 포기하겠다고 한다.


비록 게임에 들인 큰돈은 날아갔다.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없는 아이의 마음을 지키는 일이 나에게는 더 가치 있는 일이다. 오히려 이번 사건을 통해 지난날 나의 과오를 갚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여긴다.


나는 자주 말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나의 스승이다." 해커 구루를 통해서 이렇게나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역시 그놈의 이름이 괜히 구루가 아닌 것 같다. 자나 깨나 해킹 조심!!








표지그림 : Guru Jambheshwar from wikipedia

*Guru : 힌두교, 불교, 시크교 및 기타 종교에서 일컫는 스승으로 자아를 터득한 신성한 교육자를 지칭한다.

*로저스의 인간중심적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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