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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Dec 18. 2023

북쪽 방으로 그를 보내고

분리, 독립의 시작


인간은 새가 아니라서

오목눈이나 뱁새는 알에서 부화하고 3주가 되면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며 이소離巢를 시작한다. 사람에게 아기를 물어다 주는(?) 황새의 새끼 이소 시기는 부화 후 약 9주가 지나서이다. 인간의 분리 수면에는? 정답이 없다.      


서양에서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따로 방을 만들어주고 분리 수면을 시작한다. 오래전에 시카고행 비행기에서 만난, 손자가 있다는 여성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딸이 미국인과 결혼했다. 아기를 낳아서 산후조리를 도와주러 미국에 갔다. 신생아를 다른 방에서 재우고 카메라를 설치했다. 딸이 안방에서 잠도 안 자고 아기를 비추는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더라. 그럴 거면 그냥 데리고 자면 될 것을 왜 그러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      


분리 수면에 대해서는 의론이 분분하다. 한국에서는 통상적으로 분리 수면의 시기가 서양보다 늦은 편이다. 요즘은 돌 무렵부터 분리수면을 시도하는 엄마들도 늘고 있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역으로 동양의 모자 공동수면이 아이의 정서에 좋다고 해서 이를 따르는 추세라는 기사를 본 적도 있다.   

   

인간의 분리 수면은 야생의 새들처럼 이소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 아이의 기질이나 환경도 분리수면의 시기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만 강제적으로 시행할 수는 없고 점진적으로 분리해 나가야 한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떠나라 5학년     

아들이 5학년이 되더니 갑자기 “엄마, 나 따로 잘래요.”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른 방으로 가 버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믿었다. 그날 밤 그 엄마는 왠지 서운해서 눈물을 지으며 잠이 들었다고 했다.      


나의 아들이 5학년이 되었다. 소식이 없다. 아이들마다 차이가 있으니 기다렸다. 사계절이 두 번이나 스치듯 지나가고 6학년도 끝나버렸다. 7학년이 된 아들은 그저께까지 나와 같은 방에서 잠을 잤다. 한 침대에서 잔 것은 아니고, 싱글 침대 두 개를 도미토리처럼 한 방에 놓고 지냈다. 

     

여러 번 권유, 회유, 꼬드김 전략을 사용하며 방을 독립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강제로 분리시킬 생각은 없었다. 전설의 이야기처럼 아들이 먼저 독립을 선언하고 방을 떠나길 기다렸다. 아들에게 언제쯤 방을 따로 쓸 생각이냐고 물으니 50년만 기다려 달란다.      


침실 취식 금지

나는 약간 깔끔을 떠는 편이다. 예전에는 위생에 있어서 상당히 까탈을 부렸지만 지금은 많이 내려놓았다.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침실에서 먹는 행위이다. 나와 반대로 아이는 침대 위에서 잘 먹는다.      

나는 "너만의 방에서 먹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나와 같이 쓰는 방에서의 취식은 금지"라고 했다. 하지만 부탁이고 명령이고 간에 무용지물이었다. 최종병기, 세 번의 경고 후 강제 퇴거 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아들은 그에 동의했다.     

 

마지막 경고

1층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침실에서 과자 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잡았다 요놈!!" 을 외치며 2층으로 뛰어올라가 현장을 덮쳤다. 아들은 처음에는 안 먹었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온 방안에 은은하게 풍기는 도리토스의 짭짤한 향. 그리고 침대 옆 벤치에 놓인 콜라 캔. 더 이상의 부인은 불가능했다. 그러자 이제는 퇴거 조치를 한다는 말이 기억이 안 난다며 모르쇠로 버텼다.      


나는 내뱉은 말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아이의 침대 위에 있는 침구를 다 걷어내고 매트리스를 잡아끌었다. (침대 프레임 없이 매트리스만 사용하기 때문에 이동이 간편하다) 매트리스를 질질 끌고 가 북쪽 방에 밀어 넣었다. 침구를 옮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는 현실감이 좀 떨어졌던 거 같다. 까짓 거 다시 안방으로 넘어와서 자면 된다는 자세를 취했다.   

   

비록 새는 아니지만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스스로 방을 독립하겠다고 말해주길 기다렸다는 말, 언제고 독립은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 네가 미워서 쫓아낸 게 아니라는 말, 약속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말, 결정적으로 나도 너를 이런 식으로 보내서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했다.      


그제야 아들은 이 엄마가 지금 쇼를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걸 직감했다. 박스티슈를 들고 북쪽 방으로 들어가서 방문을 닫는다. 우는구나 싶었다. 철회의 욕구가 끓어올랐다.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뜨거운 철회 욕구의 기포를 하나하나 터뜨렸다. 새의 이소 과정에서 땅에 떨어진 새가 불쌍하다고 주워서는 안 된다.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적응은 시간문제

잠시 뒤 아이가 기존의 둥지였던 남쪽 방으로 넘어와 책을 한 무더기 들고 북쪽 방으로 휘청거리며 날아간다. 몇 분 뒤 이번에는 내가 북쪽 방으로 날아갔다. 왠지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고 있을 것 같았다. 역시나 램프는 멀리서 고독하고 묵묵하게 엉뚱한 곳을 비추고 있었다. 내가 램프의 위치를 조절하자 아이가 말한다. 

     

“엄마, 방 구조를 좀 바꾸면 좋겠어요.”   

   

받아들이기로 했구나! 그래 도와줄게! 어떻게 하고 싶어? 


아이와 함께 매트리스와 책상을 이리저리 움직여 봤다. 아이가 콧노래를 부른다. 피할 수 없으니 즐기기로 한 모양이다. 아주 현명한 자세다. 드디어 자리를 잡고 나머지 잔잔한 건 스스로 하라고 하고 남쪽 방으로 넘어왔다.  

    

정리를 마친 아이는 자연스럽게 남쪽 방으로 날아오더니 방바닥 매트 위에서 뭉그적거리며 떠나지를 않는다. 북쪽 방에서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덜거리는 아이의 책에 테이프를 붙이는 동안 아이는 그놈의 마인 크래프트 포스터를 들고 와 벽에 붙인다.      


모두에게 어색한 밤

잘 시간이 되었다. 잠이 들 때까지 옆에 있어주겠다고 했다. 어두운 방에서 아이가 키득거린다. 자기 혼자 방에서 잔다고 생각하니 너무 이상하단다. 나는 "우리 아들 많이 컸네."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끊어야 할 일은 언제고 누군가는 끊어줘야 한다. 아이도 북쪽 방으로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진작 했어야 하는 큰 숙제를 끝낸 밤, 혼자 자야 하는 어색함은 나에게도 숙제이다. 12년을 함께 한 룸메이트가 북쪽 방으로 떠난 밤, 반쪽이 뚝 잘려 나간 텅 빈 공간이 자꾸만 나를 깨웠다. 오히려 잠을 잘 못 잔 것은 내 쪽이었다. 적응은 시간문제다. 





표지그림 : 이중섭, <벚꽃 위의 새>,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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