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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Oct 12. 2023

40분짜리 욕심

맑은 물 유지하기 

브런치를 시작하고 글을 공장처럼 생산했다. 정신없이 토해냈다. 그러는 중에 사이버 대학교에 지원하기 위해 자기소개서와 학업계획서를 작성했다. 한정 없이 길게 쓰는 게 아니라 정해진 몇백 자 안에 나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내가 왜 공부를 하려는지 어필을 해야 했다. 


그리고 단주 커뮤니티에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중독으로부터의 탈출과 관련된 글을 올렸다. 가볍게 글을 올릴 때도 있지만 여러 책을 읽고 요약해서 통합하는 글을 쓸 때도 있다. 책 한 권을 통째로 요약하거나 책 후기를 쓰기도 한다. 가끔 하다 보면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사이버 대학교에서 수업을 시작하고 신나게 수업을 듣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나의 집중력이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강의를 듣는 중에 일순간 전구의 필라멘트가 끊어지듯 집중력이 해체되는 순간이 온다. 시간을 보면 40분 밖에 수업을 안 들었다. 아직도 40분을 더 들어야 한다. 일시정지가 가능하기는 하지만 40분은 성인의 집중력치고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어서 집중을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괜한 나이 탓을 하게 되었다.


술을 끊기 전에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덤벙거리는 실수였다. 휴가를 보내기 위해 호텔을 예약할 때 날짜를 잘못 본다거나, 나라 간 이동 버스를 예약하는데 출발일을 잘못 예약한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때만 해도 이 모든 문제는 '술'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제 술을 끊은 지 1년 하고 2개월이 되어가고 있다. 그럼 나는 과연 덤벙대지 않을까? 전혀 그렇지 않고 여전히 덤벙거리고 있다. 9월에 있는 부모님의 생신을 깜빡하고 지나갔다. 서점에 가서 전시된 생일카드를 보다가 불현듯 생각이 났고 부랴부랴 선물을 사서 한국으로 보냈다.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니 어머니는 웃으시는데 아버지는 토라지셨다. 나이가 들면 그런 거에 서운해지는 법이라는 말과 함께. 


시험이 끝난 주말에 아이와 보러 갈 공연 티켓을 예약하는 것에서도 한바탕 소동을 피웠다. 한국과의 시차 계산을 잘못해서였다. 이쯤 되니 술을 먹어서 생긴 해프닝이 아니라 내가 부주의한 성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이렇게 나를 산만하게 만들까 고민을 해봤다. 이 모든 게 과도한 욕심과 더 바라는 욕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주 커뮤니티에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고 싶은 욕심

구독자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욕망

브런치에 새로 던진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글감을 찾는 욕심


보다 더 즐거운 경험을 하고 싶은 욕망

가진 것보다 더 좋은 것을 갖고 싶은 욕심

넓어진 무지의 해변을 가득 채우려는 욕망


노년을 대비한 종신보험, 근육을 만들려는 욕망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며 완벽하게 알려는 욕심

피아노 연습의 일정 시간은 확보하려는 욕심


등등등


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너무 많은 곳에 문어처럼 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독 멀티플레이가 잘 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이유는 상황별 ON/OFF가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김경일 교수가 말했다. 나는 내가 멀티플레이가 잘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스위치는 모두 ON 상태이고 집중의 지속 시간은 40분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뒤통수로는 피아노를 치고 있고, 피아노를 치면서 건반 위에 글을 쓰고 있다. 


나의 삶엔 늘어남이 있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더하기만 있었을까.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나의 삶은 질적으로 늘어나고 있을까, 아니면 단순히 더하기만 하고 있는 것일까. 






위에 까지 글을 쓰고 잠을 잤다. 오늘 아침에도 REM수면 상태에서 깬 덕분에 꿈을 기억할 수 있었다. 


어느 동네 어귀에 있는 횟집에서, 영업 마감시간이다. 까만색 미끈한 플라스틱 앞치마를 맨 사장님이 수조에서 물고기를 꺼내어 자른다. 내가 물었다. 


"손님도 없는데 왜 물고기를 자르세요?"


사장님이 대답했다. 


"수조의 크기는 정해져 있는데 물고기가 남아돌면 물이 탁해져요. 5마리 정도는 잡아줘야 물이 깨끗하게 유지돼요."

 





경솔하게 물고기를 잡지도 말 것이며, 과도하게 물고기를 키우지도 말 것이다. 내 수조의 크기는 정해져 있다. 


욕망은 삶의 원동력이다. 사람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움직인다.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는 그의 책 <나는 왜 나를 함부로 대할까>에서 말한다. 




우리는 욕망을 제거하기보다
욕망의 위계를 정하고
욕망을 조율하는 일이 필요하다.





모든 문제의 원흉은 욕망과 욕심이다. 오늘도 나의 지나친 통제욕구를 조율하고, 다 잡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필요한 것에 스위치를 올릴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갖게 되어 맑은 물을 유지할 수 있기를......






표지그림 : 알브레히트 뒤러 <기도하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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