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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계획도 없이 프리랜서 시장에 뛰어든 것치고 4년을 버텼다. 큰돈을 번 건 아니지만 배 곯을 때쯤 일이 들어왔다. 운 좋게 책 한 권을 통으로 대필하는 일을 받아 들인 시간 대비 많은 돈을 번 적도 있었다.
평소에도 주변 친구들의 자기소개서를 첨삭해주곤 했으니 작업 가능한 문서의 갈래로 제일 먼저 자기소개서부터 넣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소설을 써왔으니 작업 가능한 글에 소설을 넣었다. 이전에 다니전 회사에서 팀장님이 저지른 일을 대신 수습해주다가 사과문 쓰는 것에 통달했단 생각을 했으니 사과문도 추가했다. 팬픽이 사랑 이야기인 데다 편지 형식의 팬픽도 즐겨 썼다 보니 연애편지도 추가했다.
나는 사람들이 살면서 그렇게 사과할 일이 많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어쩌다 한번 들어오는 의뢰일 줄 알았는데 빈도가 생각보다 잦았다. 의뢰인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유의사항을 안내한 후, 의뢰인의 진심이 잘 드러나도록 사과문을 썼다. 오랜 팬픽 연성 경험으로 이입 하난 자신 있었고, 상담 시간보다 문서 작성 시간이 더 짧았다. 이렇게 쉽게 돈을 벌 수 있구나 싶어 재밌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실수하면서 살았더라면 내가 아직도 프리랜서로 살았을 텐데.(죄송합니다)
자기소개서 일도 비교적 자주 들어왔다. 이력이나 경력 사항을 보고, 성과나 기여도가 잘 드러나도록 에피소드 형식으로 내용을 정리하는 것 또한 크게 어렵지 않았다. 나름 오래 전에 컨설팅을 의뢰한 고객들이 이직할 때 다시 연락을 해오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주 잘못을 저지르면서 살지도, 이직을 밥 먹듯이 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대부분의 일이 건 바이 건이었다. 책에 들어갈 머리말이나 소개글이 들어와 재밌게 작업한 기억도 있지만 책 내는 게 엄청 예삿일도 아니었으니 그 또한 소소한 이벤트에 그쳤다. 받은 만큼만 수고를 들이면 좋겠지만 5만 원짜리 일도 50만 원처럼 일하는 게 고질적인 버릇이라 더욱 소박한 벌이처럼 느껴졌다.
자기 PR 시대라고, 프리랜서들은 특히 여기저기 많이 나대고 다니면 좋다는데 어떻게 나대야 좋을지도 모르겠고, 나대기엔 내 실력이 그렇게까지 좋은지도 모르겠고. 들어오는 일만 하기엔 밥벌이가 안 되니까 항상 구인 사이트에서 프리랜서 작가 모집 글을 찾았다. 면접을 보러 가서 일을 주겠다는 응답까지 들어놓고 연락이 없는 경우도 있었고, 역시나 받는 페이 대비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많았다. 단가도 낮은데 프리랜서 플랫폼에서 떼 가는 수수료는 쓸데없이 비싸 수중으로 들어오는 돈은 더욱 앙증맞았다. 광고를 걸어둬도 고객들이 날 선택하지 않으면 그대로 돈만 날리게 되는 것도, 영 아니다 싶었다. 당시 몇 달 동안 공유오피스의 자유석을 이용했었는데 등받이 없는 의자가 대부분이었고, 등받이가 있는 의자들은 벽에 의자 개념의 블록이 붙어 있는 형태라 의자의 기능을 겨우 수행할 뿐이었다. 그마저도 일이 없으면 갈 일이 없으니 돈을 날리는 것 같아 더 초조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오면서 예정된 일도 취소가 되니까 더 늦기 전에 다시 회사로 들어가야겠다 싶었고, 약 4년여 만에 튕겨나와 다시 프리랜서가 됐다. 회사 대신 지금처럼 돈을 적게 벌어도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면 어땠을까 싶긴 하다. 회사 다니는 4년 동안 프리랜서 일이 거의 끊기다시피 했으니까. 근데 지금이야 다음 스텝을 계획해놨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은 거고, 그땐 내 인생이 흔들리는 듯한 감각까지 느꼈으니 모든 일엔 다 때가 있다는 말을 이럴 때 쓰나 보다 싶다. 프리랜서 시장에 발을 들이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를 배웠으니 그걸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