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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주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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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Sep 28. 2019

그와 닮아간다

남편의 부재는 또다른 분신을 낳았다.

그가 잠시 집을 비웠다.

제주에 산 이후로 그 또는 내가 가끔 집을 비우는 경우가 아예 없진 않았다. 

하지만 이미 우린 육지생활에 몹시나 지쳐있었고 염증나 있었던 사람들.

웬만해선 육지행을 자제해왔다. 


부부가 하루에 대다수의 시간을 함께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때론 커다란 의지가 되었다가도 또 때론 서로가 몹시도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존재가 되었다.

서로의 부딪침은 이미 그전에도 있어왔기에 이미 어느정도는 익숙한 사람들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적응 안되는 시간들이기도 했다.


요즘 부쩍 그의 존재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에 변화가 오는 갱년기.

그와 나 모두 어느새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남녀를 떠나 사춘기보다 더한 몸와 마음의 변화가 찾아왔다.

더불어 서로의 존재가 예고없이 불쑥 거슬리는 순간들 또한 뜬금없이 찾아들었다.


요즘 그의 밥달란 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 나이에 꼬박꼬박 밥 차려내야 하는 늦둥이 엄마라는 책임아래 밥차려내는 여자라는 꼬리표가 심히도 짜증나게 거슬리고 있었다.

아이보다 더한 존재감의 밥을 차려내면서 몹시도 구시렁거렸다.

갱년기 아저씨의 불쑥불쑥 찾아오는 원인모를 토라짐 또한 감당하기 버거운 일이었다.


그런 그가 육지로 떠났다.

5일 정도의 부재였지만 난 마냥 신이 났다.

더이상 지긋지긋한 삼시세끼 차려낼 필요도 없고,

그의 비뚜룸이 앉아 보는 영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다. 

저녁식사때마다 반주로 마시는 막걸리나 소주를 보지 않아도 되었고

화창한 날 외출에도 그의 밥걱정이나 존재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내 세상일줄 알았다.


그런 그가 없는 생활이 이제 나흘째가 되었다.

딸아이와 함께하는 생활은 무질서가 되었다.

때마다 챙겨야 하는 밥은 라면이나 편의점 군것질, 외식과 배달음식으로 채웠다.

마냥 밀가루 음식만 먹을수 없어 대충 만든 요리 역시 극단적 귀차니즘의 조리법으로 맛 따위는 무시되었다. 

그저 식사는 한끼 '때우면' 되었다.


모처럼 파아란 하늘에 그렇게 가고자 맘 먹었던 곳을 갈수도 있었다. 

평소 기름값 아깝다며 먼거리를 거부했던 그의 의견없이 

동쪽 바다도, 유료 갤러리도, 바닷가 맛집도 갈수 있었다. 

그가 있을때 다투고 나면 어떻게든 기를 쓰고 나갈 구실을 만들어 쏘다니던 나였다.

하지만 그가 없으니 어디든 나가는 게 귀찮아졌다.

굳이 나갈 필요없이 이곳은 내 세상이니 집에 그냥 널부러졌다.  


끊임없이 쇼파에 앉거나 누워 아이패드를 껴안고 드라마와 영화 다시보기를 시청했다.

저녁식사나 밤이면 간단히 혼자 맥주병을 깠다.

이 영화, 저 드라마, 지난주 예능과 시사 프로까지 보고나니 볼게 없어 몇년전 드라마와 영화까지 뒤졌다.

평소 보지 않던 시사프로까지 보고 있노라니 이 모습 어디선가 낯이 익더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남편의 부재는 또다른 분신을 이 제주에 낳아놓고 간 것이었다.

맥주병을 끼고 앉아 영화와 드라마를 찾고있는 내 모습에 잠시 아연해졌다.

며칠동안 부실했던 식단과 방치돼있던 아이가 보였다.


씁쓸했다.

나 혼자도 아이 잘 키우며 재미나게 잘 살줄 알았다. 

때마다 배고프다며 자길 보아주지 않는다며 표현하고 토라지고 진상부리는 그가 없어 이제 마냥 편할줄 알았다.

그만 없으면 내 인생 훨씬 펴질줄 알았는데

그가 없는 이 생활은 너무도 무질서하고 무절제하며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만 없으면 될줄 알았는데

그가 없으니 되는게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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