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룩쥔장 Jan 29. 2016

20년만의 외출

겨울 일본 후쿠오카 여행기

실로 20년만이다.

1996년이었다. 연애를 시작했던 지금의 남편과 남편의 친구이자 같은과 선배였던 오빠와 그렇게 셋이 떠났던 일본여행이... 그 전해였던가. 당시 내 심장을 끓게 했던 유럽배낭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던 난 유스호스텔 연맹에서 주최했던 여행수기에 2등으로 당선되어 일본 왕복 오픈티켓을 부상으로 받았다. 별로 성의도 없었던 여행수기였기에 기대하지도 않았었는데 그때는 분명 행운의 여신이 내 곁에 가까이 있었던 것이리라.

그렇게 받은 부상으로 우리는 10일간의 일본여행을 떠났다. 도쿄에서부터 오사카, 교토, 나라, 고베, 벳푸까지 주로 JR패스를 중심으로 짜여진 배낭여행이었다. 그리고 그때 함께했던 그와 나는 부부가 되었고, 두 딸을 낳았고,어느새 흰머리가 삐져나오는 중년이 되었다.


 오랜만의 해외여행이었다. 그냥 가까운 나라니까, 작은 아이에게는 첫 해외여행인만큼 리조트에 가서 물놀이만 하다오는 여행보다는 보고 느끼는 여행이 좋겠다 싶어 꾸린 옆나라 일본의 자유여행이었다. 크게 준비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기대가 없지도 않았던, 그 여행의 기록이다.




#1. 20년이 지난 일본의 얼굴


 그때는 아직 풋풋한 청춘이기 때문이었을까? 첫 일본여행이기 때문이었을까?

도쿄, 오사카라는 대도시를 먼저 접했기 때문에 느꼈던 첫인상이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번에 찾은 일본은 후쿠오카라는 지방도시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노쇠해졌다는 느낌이다.

후쿠오카의 중심지라 할수 있는 하카타역 주변에서 족히 이틀은 꼬박 있었는데 평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피스가의 출퇴근족들은 그야말로 '회색'이었다. 겨울날씨라는 계절적 특성과 회사원이라는 신분적 특성이라 해도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블랙 아니면 회색인지 안에 입은 옷이며 코트며 신발, 가방까지 참 무난히도 일관적으로 어두웠다. 무엇보다 그들의 표정도 참으로 '그레이'했다..


 우리나라도 외국인들이 보면 길가는 사람들 모두 화난 사람들 같다고 했다지만 일본은 화난 사람들이 아니라 절망한 사람에 가깝게 보였다. 희망도 즐거움도 기쁨도 없는..

지난 잃어버린 10년이 너무 길었던 걸까? 사람들의 옷차림도 표정도 3박 4일동안의 일본의 하늘도 꾸물한 잿빛이었다.


 우리의 20년전 여행은 '신선함'이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일본을 보는 듯했고 무엇보다 우리보다 앞섰던 최첨단이 그곳에 있었다. 도쿄를 누비는 젊은이들의 파격적인 옷차림, 그들의 다양한 머리색, 삼삼오오 모여 떠들던 활기참..

백화점에 진열된 앞선 기기들, 의류들, 깔끔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소품들..

남편과 나는 일본이 우리나라보다는 10년은 앞서간다에 이견을 달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 여지없이 항상 우리나라는 일본에 10년뒤를 이어달렸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느낀 것은 일본의 '정체성'이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워보였다. 눈에는 무언가에 대한 그늘이 있었다. 지난 경기침체와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유출등의 사건들이 그 모습위로 고스란히 덕지덕지 먼지가 되어 근심으로 앉은것만 같아보였다.

호텔방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일본의 드라마는 촬영기법이 단조로웠고 거리의 대형전광판에서 흘러나오는 뮤직비디오는 전혀 세련된 느낌이 없었다. 첫날 묶은 호텔방에서 바로 건너다보이던 빌딩의 사무실에는 칸막이 없는 책상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고 제일 높은 자리인듯 보이는 창가쪽 책상주인은 이른 아침 제일 먼저 나와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자리를 굳건이 지키고 있었다.


 퇴근길 하카타역은 오가는 사람들로 바빴고 역내 작은 가게마다 한끼의 도시락을 먹기위해, 한잔의 삐루를 먹기 위해, 한잔의 커피와 담배를 피기 위해, 또는 삼삼오오 모여 하루의 고단함을 풀기위해, 마지못해 참석한듯 회식에 끼기 위해 앉아있는 회사원들로 가득했다. 그 좁은 공간에서도 각자는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차를 마시고, 담배를 피고 대화를 했다. 백화점에는 물건이 가득했지만 사람들은 드문드문했고 물건을 사는 사람들도 조용히 쇼핑을 했다. 출퇴근길 편의점의 삼각김밥 코너는 순식간에 동이 났고 역내 맥도날드와 KFC에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하카타역을 바삐 오가는 사람들 중에 울긋불긋 색의 옷을 입고 얼굴에 활기를 띠며 초롱초롱 눈이 빛나는 것은 우리같은 관광객들 뿐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관계의 두려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