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같은 육지인들 상당수가 갖고 있는 제주살이의 로망 중 하나가 아마도 농가주택을 개조해서 사는 걸꺼예요.
제주의 리모델링한 농가주택_구글이미지 참조
회색빛 도시생활에 염증 느끼고, 닭장 같은 아파트에 질려 제주로 이주오신 많은 분들에겐 제주의 돌창고, 돌주택, 시멘트라고 해도 안거리와 밖거리가 함께 있는 지붕 낮은 제주 가옥이 무척이나 정겹게 느껴집니다.
크진 않더라도 작은 마당과 텃밭이 있길 바라고요.
리모델링 진행중인 곽지리의 농가주택
막상 오래된 돌창고나 제주 옛집에 들어가보면 뭐 솔직히 한숨은 납니다. 겉으로 볼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 때문이지요.
담쟁이가 기어오르고 얼기설기 돌들이 불규칙한 배열을 이루는 외벽의 운치와는 달리, 전혀 손보지 않은 오래된 농가주택은 화장실도 없고, 불때는 아궁이에 천장은 기울어진채 얇은 외벽에 의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야말로 쓰러지기 일보직전인데 그러고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단하다 여겨집니다.
최근 10여년간 제주의 부동산이 엄청나게 오르면서 그런 쓰러져가는 집들조차 없어서 못파는 귀한 매물이 되었지요. 저와 같은 육지인들의 로망을 위해 헐값으로도 못 팔던 빈집들조차 비싼 가격으로 팔려나갔으니까요.
지금도 이곳은 한여름에도 해가 지면 서늘하고 안개가 끼면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만큼 짙게 자주 끼는 곳입니다. 지금의 평화로가 생기기 전, 예전에는 해안가 마을에서 이 높은 곳까지 올라오기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갈곳 없는 화전민들이 일군 척박한 땅으로 만들어진 동네가 바로 이 동네라고 하네요.
유수암리 마을운동장
어찌보면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니었을텐데 그때라도 내려와 이곳에 터를 잡았더라면 지금쯤 땅값은 엄청 올랐겠구나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합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현세에 부를 갖는 것도 좋겠지만 지금 시작하면 자손이 그 부를 누릴수 있는 건 맞는것 같아요. 그만큼 부로 가는 길은 시간이 필요하단 거겠죠.
10년전 제가 제주에 첫 입도를 했을때 저희는 제주시내에 살았었습니다.
집들이 지어지기 시작한 택지지구로 시내 한볶판이었는데 집들 사이로 새로 짓는 공사 소리와 텅빈 공터가 듬성한 곳이었죠. 불과 3~4년후엔 믿을수 없을만큼 빼곡하게 다세대와 빌라들이 들어찼고 더불어 주차도 빡빡해서 이제는 선뜻 동네로 들어가기도 주춤거리게 되는 곳이 되었네요.
제주시 이도지구_연합뉴스 제공
그때 새로 분양되는 저층 아파트와 빌라의 가격보면서 '와, 미쳤다' 했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라도 샀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또 듭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여유자금은 없으니 그냥 생각뿐이긴 하지만요.
어쨌든 재입도하여 시내를 벗어난 곳에 살면서 우연찮은 기회에 농가주택을 개조하게 되었어요.
첫번째는 현재 저희가 살고 있는 집의 창고인데요.
처음 왔을때 창고 내부
아주 오래된 집은 아니고, 한 20년쯤 된 주택에 딸린 시멘트로 지어진 창고인데 물류창고 용도로 임대한 곳이예요. #제주농산물 의 라인업이 귤이 시작되는 가을부터 #제주야채 가 풍성한 봄을 지나고 한여름엔 비수기라 할수 있거든요. 이때 그냥 놀리기 아까워 #원테이블레스토랑 을 해볼까 하고 저희가 직접 인테리어를 하게 되었어요.
거창한 개조까진 아니고 셀프인테리어에 가깝다고나 할까요. 처음 이사왔을때 흙바닥이었던 곳을 메꾸고 하나하나 남편의 아이디어와 땀이 들어간 멋진 곳으로 변신했답니다.
인테리어중인 창고
원테이블 레스토랑으로 개조된 창고내부
아쉽게도 이렇게 공들여 공사한 이곳은 오픈도 해보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어요.
저희 집이 아니다보니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겨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거든요. 많이 속상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또 다른 기회는 있는 거니까요. 좋은 경험으로 남기기로 했어요.
두번째 개조는 현재진행중이예요.
일몰이 아름다운 곽지 해수욕장에 있는 아주 오래된 제주주택인데요.
현재도 제주토박이인 할아버지가 살고 계세요.
집이 안거리 두채, 밖거리 한채, 창고까지 총 4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방들은 모두 작아요.
전형적인 제주옛집이라 화장실도 내부에 없고 아궁이로 된 오래된 부엌이 있고, 기울어진 천장과 어렸을때 시골 외할머니댁에서 봤던 벽장이 있는 집이예요. 기와와 벽의 도색도 다 벗겨졌고 내부도 사실 많이 낡았어요.
곽지의 오래된 농가주택 개조전
아늑하고 정취는 있긴한데 좀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까지 가야할 길은 너무도 먼 그런 집이예요.
우연한 기회에 소개를 받고 수리해서 사는 조건으로 임대를 하긴 했는데 언제 공사가 끝날진 모르겠어요.
그동안 #제주농가주택개조나 리모델링, 인테리어등을 하신 분들의 글들을 봐도 보통일이 아니라는 걸 알겠고,
제 주변에도 얼마전 겨우 리모델링을 마치고 카페를 오픈하신 분도 계셔서 알지만 모두들 입을 모아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차라리 빈 땅에 집을 새로 짓는게 낫다!
말이 리모델링이지 그야말로 뼈대만 남기고 다 들어낸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들이셨어요.
그 뼈대를 유지하면서 채워넣는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는 거구요. 생각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든다는 것, 그것도 솜씨 좋은 사람 아니면 해놔도 티도 안난다는 것이 공통의 의견들이셨죠.
일단, 저희는 돈도 없고 집을 지어본 적도 없고 시간도 많지 않았어요.
이것때문에 사실 엄청 고민을 했어요.
우리가 손댈수 있는 물건이 아닌 것 같아서요.
어쨌든 결론적으론 지금 공사를 하고 있네요.
그것도 최소의 비용으로, 최소의 인원으로요.
아무래도 많은 시간이 걸리겠죠. 시간까진 어쩔수 없을 것 같아요.
기다려야겠죠.
현재는 창고 먼저 공사를 진행중이예요.
이 창고를 개조해서 먼저 테이크아웃 음식점을 낼 예정이예요.
해수욕장이 가깝고 분위기도 있고, 또 그동안 저희가 해왔던 음식아이템들이 있기 때문에
기존 농수산물유통에서 좀더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일을 병행해볼 생각이랍니다.
공사 진행중인 곽지 농가주택
10년전 첫입도때도 느꼈고, 재입도인 지금에도 느끼고 있지만 제주살이 에 한가지 잡만으론 안되는 것 같아요.
아주 충분한 자금을 투자해서 규모가 큰 사업을 할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저희처럼 가진것 없고 연고도 없이 온 이주민들은 두세가지 잡을 할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