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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Jun 10. 2020

농사도 장비싸움입니다.

제주살이를 꿈꾸는 당신과 나누고싶은 이야기

제주에 살고 있는 #후룩쥔장 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제주 서쪽은 요즘 #초당옥수수 로 뜨겁습니다. 서쪽에서도 애월읍 수산리를 중심으로 초당옥수수가 많이 자라는데요. 해마다 이맘때면 수산리에서는 #초당옥수수축제 도 있지요.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축제들이 많이 취소되서 역시나 아쉽게도 열리지는 않는것 같습니다.


사진은 재작년 수산리축제 안내장


차를 타고 가다보면 계절별로 바뀌는 농작물들을 보게 됩니다.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저 같은 육지사람에게 제주밭의 풍경들은 언제나 생경하게 다가옵니다. 농작물이 어느정도 자라 열매가 맺히면 그때는 어떤 작물인지 알수 있지만, 열매가 달리기 전 제 눈에는 그저 모두가 같은 초록초록한 식물로만 보이니까요. 그래서 덤앤더머는 울고 갈 정도의 한심한 대화를 남편과 나누게 됩니다.


"저게 뭐야? 저것도 먹는 건가?"

"열무 아냐? 잎파리가 열매처럼 생겼잖아."

"저 밑으로 무가 자라고 있다고? 아니야. 나 외갓집이 시골이라 초등학교때 방학마다 내려갔었잖아. 열무랑 배추정도는 알아. 아, 맞다. 고추도 안다."

"그럼 저게 뭐지? 못 먹는 거 아냐? 내버려둔 땅에 잡초가 자라는 건가?"

"....."

뭐 이런식의 대화가 오고가는 겁니다.


그런 육지 무지랭이였던 남편과 저도 제주살이 2년이 지나자 이젠 왠만한 작물들은 제법 눈으로만 봐도 아는 정도가 되었어요. 또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농산물유통 이고, 이래저래 농사짓는 분들을 만나다 보니 언제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고 수확을 하게 되는지 정도는 가늠하게 되었습니다. 또 작황에 따라 이번에는 어느 농사가 안된 거 같다, 어떤 건 농사가 너무 잘돼 제값받긴 틀렸다,  누구네 밭은 다 갈아 엎었다더라 하는 이야기들도 들립니다.


이번 초당옥수수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몇년전부터 초당옥수수 바람이 불면서 작년까지만해도 많지 않았던 옥수수밭이 올해 엄청 늘어났어요. 그동안 옥수수를 심지 않았던 분들도 올해는 많이 심으셨거든요. 그렇게 심은 옥수수가 자라 열매를 맺고 출하시기가 다가오자 여기저기서 물어오십니다.

'누구네 밭은 잘됐는지, 얼마에 파는지, 양이 얼마나 나올것 같은지.'

누구보다 서로 잘 알고 지내는 분들인데 직접 물어보면 될 껄 저희한테 물어보는 이유는 아마도 자존심 때문일 거예요.  


농부의 자존심

제가 본 농부의 자존심과 고집은 농사짓는 분들이라면 다들 기본으로 장착하고 계신 것 같아요. 그만큼 저마다의 고집이 있고, 자기가 생산한 작물에 대한 애정이 깊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것을 흔히 농사에 비유하잖아요. '자식농사'.

그런 마음이겠죠. 자녀를 키우는 집이라면 다들 느끼겠지만, 내 자식이 공부를 못하든, 돈을 못벌든, 생긴게 못났든 모든 부모는 내 자식이 최고잖아요. 농부도 똑같은 마음인 것 같습니다. 조금 덜자란 아이들도 애틋하고 좀 못나게 자란 아이들도 사랑스럽고 그런 거겠죠.


저희가 제주에서 #농수산유통 을 하다보면 가끔 그런 생각도 들어요.


나도 한번 농사지어 볼까?


거래하는 농장들이 있지만 한 가지 작물만 할 순 없으니 또 다른 농장을 찾아다닙니다. 그리고 서로 신뢰가 생길 때까지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치게 됩니다.

대형상인이 아닌, 저희같은 영세 판매자들은 물건을 받기가 사실 쉽지 않아요. 옷 같은 경우, 직접 제작이 아닌 사입을 위해 동대문 시장을 찾을때 초보 사장에겐 물건도 잘 내주질 않잖아요. 아무래도 양이 담보가 되어야 하니까요. 파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찔끔찔끔 사가면서 이것저것 해달라는 소규모 업체들은  귀찮기만 한 대상입니다.


농산물도 똑같아요. 연락하고 농장 찾아가서 맛보고 사겠다고 하면 바로 물어봐요.

"그래서, 얼마나 할껀데?"


규모가 큰 곳은 상인이라고 해서 현금들고 다니며 맛보고 즉석에서 밭을 통째로 사는 분들이 계세요. 농부 입장에선 판로를 걱정할 필요가 없고 포장과 배송 신경쓰지 않으면서 한번에 목돈을 쥘수 있으니 이런 상인들을 반기지 않을 수 없지요. 적어도 상인들은 농협의 수매가보다는 좀 더 쳐주니까요.

이런 구조 속에서 저희같은 영세 판매자들은 납품가를 저렴하게 받기가 힘듭니다. 양도 많지 않으면서 싸게 달라면 누가 주겠어요. 이래저래 틈새시장을 찾아 열심히 발품파는 수 밖엔 없겠죠.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반복하다 보면, 어디 땅을 빌려서라도 직접 농사를 짓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듭니다. 적어도 내가 생산한 물량에 대해선 최소마진으로 판매할 수 있을꺼고 물량이 없어서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으니까요.


그런데 현실은 가능성이 굉장히 희박한 얘기죠.

제가 봤을때 #제주에서농사 를 짓는다는 건 저희같은 육지인들에겐 정말 어려운 구조거든요.

관련한 글이 있어 링크걸어 봅니다.  저는 이글이 제주농업의 현실을 잘 드러낸 글이라고 보여져요.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78981.html


다른 지역도 초보농삿꾼이 자리잡기 힘든 구조인건 마찬가지겠지만, 제주는 특히 땅값이 급격히 오르면서 농사지을 땅을 구하는 자체가 어려워졌어요. 부모에게 물려받을 땅이 있는 현지인이라면 모를까, 저희처럼 연고 없는 육지사람이 땅을 임대하기엔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땅을 빌려주지도 않을 뿐더러 최근 10여년간 중국인들의 투자, 타운하우스 건설 붐등으로 기존에 밭이었던 곳들도 이런저런 용도로 상당수 팔아버린 상태랍니다.


또 농사를 짓는다는 일 자체가 한 해를 모두 투자해서 수확때 결과를 봐야하는 장기적인 투자다 보니, 결과물이 좋지 않을 경우는 그 피해를 고스란히 농부가 떠안아야 한다는 점도 힘든 일이죠.

여러 경로를 통해 요행히 땅도 임대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농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갖췄다고 해도 막상 해보면 걸리는 문제, 바로 장비의 필요성입니다. 오랫동안 농사지은 분들이 모두들 입모아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농사도 장비싸움입니다.


아무리 작은 땅이라 해도 전업으로 농사짓는 땅을 일일이 사람 손으로 일굴 순 없어요. 특히 요즘처럼 구인난에 인건비도 비싼 경우엔 더더욱 그렇죠. 왠만한 건 장비를 이용해서 할수밖에 없는데 이 장비가격이 엄청나요. 집집마다 갖출 순 없겠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장비는 필요하니까요. 장비를 빌린다 해도 거저 해주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죠. 결국은 또 자본의 싸움이 됩니다.


이런저런 일들을 들여다보다 보면 그런 생각도 들어요.

'육지에서 회사 다니며 따박따박 월급 받을 때가 젤 좋았구나.'

하지만, 그땐 정말 회사 가기가 죽을 만큼 싫었고, 회사의 위계구조가 제겐 너무도 안 맞았고, 열심히 일해도 기대하기 힘든 정체된 월급이 절망적이었죠. 회사밖은 정글이라지만 회사 안도 정글이었죠.

어디든 정글 아닌 곳이 있을까요?


농업도 사실 갈길이 멀죠.

가까이서 보는 농업이나 어업은 농협이나 신협이 절대군주처럼 군림하고 있어요.

또 농어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나라에서 주는 특혜도 분명 많죠. 그런 저리대출 상품은 아마 어디에도 없을 거예요. 이면을 들여다 보면 그 잇점을 이용한 수많은 편법들도 난무하구요. 농사도 하나의 사업인데 어찌보면 자격을 갖추지 못한 농업인들도 많습니다.


물론 대다수는 고된 농사일을 열심히 해내고, 정성으로 가꾸고, 양심적으로 판매하고 계세요. 막상 수확물을  판매하는 금액은 그간 노동의 댓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게  현실이구요. 그래서 농한기에 다른 일을 겸하며 생활비를 버는 분들도 많으시죠. 뙤약볕에서 일하고 나면 온몸이 흠뻑 젖고, 하루 일과가 끝난 저녁이면 막걸리 한병 없인 잠자리에 들수 없는 고된 노동인 것도 맞습니다.


이미 오래전 1차 산업은 붕괴되었고 그 미래가 없다 했지만, 그럼에도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이보그 시대가 오고 비대면 사회가 온다 해도 그래도 사람은 먹어야 하잖아요. 먹거리는 여전히 중요하고 사회가 발달할수록 더욱 믿을 수 있는 생산자는 그 가치를 더할 거라고 봅니다.


다만, 농사를 업으로 하기 위해선 많은 준비시간과 자금과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겠죠. 준비없이 섣불리 발을 들일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하루 이틀 하다 나랑 안맞는다고 집어치울수도 없는 일이잖아요. 긴 안목을 갖고 오래 공들여야 하는 일이지만, 정직한 일이며 매력적인 일임엔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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