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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Jun 12. 2020

제주살이와 해외살이의 공통점

제주살이를 꿈꾸는 당신과 나누고싶은 이야기

제주에 살고 있는 #후룩쥔장 입니다.


꽃들이 만발하는 지난 오월부터 수국이 한창인 유월의 지금, 제주는 일년중 가장 예쁘고 화려한 계절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산책길에서 만나는 꽃들뿐만 아니라 제가 살고 있는 애월과는 조금 떨어진 곳의 꽃들까지도 인스타를 통해 맛집구경하듯 그렇게 감상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동네 꽃들

육지에 살았다면 돈을 주고라도 들어가거나, 몇시간씩 밀리는 차들의 행렬을 감내하며 외곽을 벗어나야만 볼수 있는 꽃들의 향연을 이곳, 제주에서는 돈 한푼 없이도 맘껏 볼 수 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내가 이런 사치를 누릴 자격이 있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황송할 지경입니다. 


아름다운 제주를 카메라에 솜씨좋게 담아내는 인친의 댓글을 보다 어느 분이 그런 글을 쓰신 걸 봤어요.

'제주살이 처음에는 제주가 참 외국같다 생각했는데, 몇년 지나고 보니 외국이 제주같은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맞아요. 제주가 외국같던, 외국이 제주같던 어쨌든 제주는 원래 이 모습 그대로였을 거예요. 우리가 익숙하게 알아왔던 육지생활이 한국의 전부는 아니었을 거예요. 미처 몰랐을 뿐이겠죠. 

공항에서 내려 마주하게 되는 야자수서부터 외국냄새가 물씬입니다. 이 다음엔 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대다수의 여행객들은 공항에서부터 흥분한 표정이 됩니다. 이후로 펼쳐지는 해안도로 옆 파아란 하늘과 바다의 수평선, 해수욕장의 코발트빛 바다와 장엄한 한라산 정상을 보면 그 이국적인 느낌에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그래서일까요?
제주에는 해외에서 살다 오신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저만 해도 이민까진 아니더라도 이런 저런 나라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고, 짧지만 강렬했던 그 경험들로 한국의 육지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도 있으니까요. 저보다 더 오래 미국이나 유럽,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이민자로 살다 오신 분들이 선택한 곳이 제주이기도 합니다. 

제주에 살다보면 그런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나게 되는데요. 아마도 제주의 자연뿐 아니라, 생활방식과 기후, 문화도 외국과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인 것 같아요. 


대학때 갔던 유럽배낭여행 이후 여행을 좋아하게 된 저는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 힘들 때마다 여행지의 하늘이 떠오르곤 했었어요. 일부러 떠올리고자 해서 떠오른 게 아니라, 지금 발딛고 있는 이 현실이 힘들면 그냥 자연적으로 이국의 하늘이 떠오르는 거예요.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아마도 그런 식으로 표현된 것 같아요. 


저의 첫번째 제주생활 이후 다시 육지로 돌아갔을땐, 일상이 힘들때마다 외국의 하늘이 아닌 제주의 하늘이 떠올랐어요. 사실 첫번째 입도때 제주생활은 처음 해보는 식당운영이 힘들어 울기도 많이 울고 술마신 밤이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혼자 밤하늘에 높이 뜬 달에 대고 욕을 하기도 했었는데 말이죠. 


그 자리에 있을땐 잘 모르죠. 잠시 떠났을 때 생각나는 곳, 그곳이 마음의 고향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다시 시작한 제주생활, 시내가 아닌 조금은 벗어난 외곽지역.

그야말로 한가한 전원생활을 하며 문득문득 이곳이 해외인가 착각할 때가 많아요. 


걸어선 갈 수 없는 아이의 학교를 차로 데려다주고 데려오며, 저와 같이 아이가 끝난 시간에 맞춰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엄마들을 보면 '이곳이 미국이구나' 싶어요. 미국에서 잠시 살때 아이를 학교까지 라이딩해주고 픽업하는 일이 처음에는 참 낯설었거든요. 한국의 육지처럼 혼자 알아서 버스를 타고 오거나 걸어오면 좋겠건만 워낙 집과 학교 거리가 멀다보니 당연히 부모가 해주는 일로 되어 있어 맞벌이 가정에는 커다란 부담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곳 제주에서는 매번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 제주의 시골학교는 미국학교처럼 건물이 낮아요. 잘해야 2층 정도로 건물보단 초록의 잔디밭이 넓게 펼쳐진 운동장이 있지요. 보기만해도 예뻐서 엄마 미소가 솟아올라요.


아이가 다니는 작고 예쁜 시골학교


맑은 날, 바람쐬러 간 해수욕장의 선명한 코발트빛 물색깔을 보면 또 그런 생각이 듭니다. 

'여기가 동남아구나.'

태국에서 본 바다색, 필리핀에서 본 바다색이 한국에도 펼쳐져 있습니다. 이 예쁜 바다를 두고 뭐하러 비행기 타고 사람 많고 복잡하며 말도 통하지 않는 그곳까지 갔을까 어이가 없을 지경입니다. 오히려 이곳 제주에는 더 좋은 숙박시설과 맛있는 음식들이 있는데 말이죠.


바다빛이 정말 예쁜 금능해변


한겨울에도 좀처럼 영하까진 떨어지지 않는 기온. 그럼에도 으슬으슬 떨려오는 뼈 시리는 한기.

육지처럼 뜨끈하게 보일러를 틀 수 없는 난방비의 폭격이 두려워 난로에 의지하는 이곳은 영국의 자취방을 생각나게 합니다. 좀처럼 해를 내어주지 않는 겨울의 흐린 날씨와 수시로 몰려드는 짙은 안개에서도 런던을 추억하곤 하지요. 


한치앞도 볼수 없는 제주 평화로의 안개


북쪽으로 바람이 불거나 비오기 전, 제가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오는 비릿함을 품은 비냄새와 코를 자극하는 축사 냄새에는 악몽과도 같았던 필리핀의 타운이 생각납니다. 커다란 부지 내 듬성듬성 들어선 집들 사이로 황폐하던 공터, 새로 건물을 올리던 회색빛 시멘트 담벼락들, 그 사이를 거닐다 보던 불타는 일몰. 

부동산 사기로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타운 운영자와 분양자들의 분노를 떠올리며 당시에는 후진국의 한심한 현상으로 치부했던 그곳과 이곳의 완공되지 못한채 버려진 타운하우스의 공통점에 그저 사람사는 곳이라면 응당 벌어지는 다툼이었다 씁쓸해집니다. 


한때 중단됐던 서귀포 예례단지_사진 노컷뉴스


슬리퍼만 신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좀만 걸으면 만나게 되는 마트와 편의점 대신 차로 족히 20분은 가야하는 대형마트에서 장을 볼때마다 이국의 감성이 됩니다. 낮은 건물과 넓은 주차장, 주차장으로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착각에 빠지곤 하지요. 

'내가 있는 이곳은 한국인가, 외국인가'


자주 가는 애월 하나로마트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 오랜만에 짜장면이 너무도 먹고 싶었어요. 명절 즈음이라, 쏟아지는 택배물량을 오전 중에 부랴부랴 실어보내고 녹초가 된 몸으로 배달되는 짜장면을 찾아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지만, '제주에서 짜장면은 가서 먹는 것'이라는 동네사람의 대답만 들었습니다. 

그렇게도 좋아하는 곱창과 짜장면, 짬뽕, 해보지도 않던 베이킹까지 인터넷의 반조리 식품을 구입하여 쟁여놓고 생각날때마다 홈메이드로 해먹게 되는 이곳은 제주공화국입니다. 유일한 낙이었던 '카페투어'도 어느 시점부턴 카페까지 가는 거리와 시간, 한잔의 커피값이 아까워 집에서 원두를 볶고 갈아 내려마시게 되는 곳, 제주입니다. 


홈메이드 베이킹과 피크닉

자동차 없이는 한 시간에 두대 될까말까한 버스를 기다렸다 돌아돌아 목적지까지 하염없이 가야하는 장거리 이동지이며,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는 날이면 아이를 태워주고 데릴러 가려는 엄마들의 차가 줄지어 마당으로 들어서는 풍경이 연출되는 곳입니다. 


분명 같은 한국사람으로 같은 한국말을 하고 있는 것일진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같은 말을 쏟아내는 어르신이 있는 곳, 가만 들어보면 불어 같기도 하고 태국어 같기도 한 참으로 이질적인 언어, 제주어가 있는 곳입니다. 


낮은 지붕에 얼기설기 지은 돌담, 내부는 작은데 아기자기한 구조, 작은 마당엔 저마다 꽃들을 가꾸고 까만 구멍뚫린 돌들이 정겨운 곳. 제주의 집이 있는 곳입니다. 


육지에선 만나기 힘든 낯선 바다친구들_ 옥돔, 열기, 꼬지, 자리돔. 밭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보랏빛 채소들_콜라비, 비트, 적채. 모두가 육지생활에선 낯선 풍경들입니다. 


새벽 한림항의 생선들


해외생활을 오래 하고 오신 분들에게 제주는 낯선 한국생활의 이질감을 완화시켜주는 완충지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에서 이민자로 사셨던 분들 또는 해외생활을 꿈꾸던 분들, 한국에서 살기 위해 온 외국인들이 많습니다. 저는 서울에서보다 이곳 제주에서 더 많은 외국인들을 봅니다. 

제가 아는 어느 분은 오래전부터 해외생활을 꿈꿔왔고 캐나다와 호주에서 잠시 생활도 했었던 분인데요. 다시 나가고 싶지 않냐는 제 질문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왜요? 전 여기가 좋은데요.
말 안통하는 외국보다 말 통하는 외국, 제주가 바로 그런 곳이잖아요.
굳이 외국 나갈 필요가 있을까요?
한국말 통하는 외국같은 이 곳, 전 제주에서 죽을때까지 살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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