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룩쥔장 Jun 17. 2020

욕심을 내려놓고 이곳이 좋은 사람이라면

제주살이를 꿈꾸는 당신과 나누고싶은 이야기


제주에 살고 있는 #후룩쥔장 입니다.


서울에서 친구가 내려와 짧지만 알찬 휴가를 다녀왔어요. 

예전에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던 동갑내기 친구인데, 일년에 한번 볼까말까 그렇게 더듬거린 만남에도 연락하면 언제나 그때처럼 여전히 반갑고 정겨운 친구입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싱글이라 이번 친구의 제주방문을 핑게로 저도 모처럼 가족이 아닌 여자 둘만의 여행을 다녀왔네요. 참으로 오랜만에 싱글로 돌아가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마치 일주일이상은 된 듯한 알찬 여행을 했습니다.


제주에 살고 있지만 저에게도 여행인 만큼, 제가 살고 있는 제주 서쪽에서 가장 먼 곳, 동쪽으로 다녀왔어요. 성산항에서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 속의 섬, #우도 에 다녀왔습니다.

같은 제주라 해도 자주 가지 않았던 곳으로 가고 싶었고, 제주라는 공간 안에서 제가 살고 있는 곳과 먼 곳이라 우도가 먼저 떠올랐어요. 그동안 우도는 두번 정도 갔었는데 두 번 다 1박을 했었고, 그 기억들이 너무 좋아 이번에도 미리 숙소를 예약하고 출발했습니다.


우도의 첫 여행때부터 1박을 했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당일로 급하게 왔다 급하게 가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마지막 배가 떠난 이후의 우도야말로 진정한 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지요. 


분주하게 오가던 전기차의 행렬이 사라지고, 관광객을 싣고 좁은 길을 달리던 버스도 멈추고 , 카페마저 문을 닫는 저녁이 되면 우도는 적막 그 자체가 됩니다. 그 적막감을 달래주는 건 파도소리, 붉게 달아오른 일몰, 맑은 새들소리뿐이지요.


누구나 한번쯤 꿈꾸지 않나요? 

사람들로 북적이는 해변이 아닌, 너와 나 단둘이만 있는 해변과 일몰의 그림자, 그리고 모래위에 수놓아지는 추억의 바닷가를.

마지막 배가 떠난 우도 해변에서

한겨울 아무도 찾지 않는 동해바다나 서해바다에서도 물론 가능하겠지만, 해변에 있어도 전혀 썰렁하지 않는 이 계절에 그 그림이 가능한 곳은 아마도 우도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배가 끊어진 이후의 우도는 정말 아름답고 남겨진 사람들은 진정한 쉼을 체험하게 되지요. 제가 우도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이번 숙박은 미리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하고 갔었는데요. 바닷가 바로 앞 숙소도 매력적이었지만 오랜만에 함께하는 친구와 좀더 집중하고 싶어 바닷가에서 조금은 떨어진 작은 독채를 빌렸어요. 럭셔리한 자재가 매력적인 정말 탐나는 신축 독채펜션도 있었지만 가격이 제겐 너무 버거워 그 보다 부담없는 곳으로 예약을 했지요.

숙소에 도착하니 모자를 눌러쓰고 정원을 돌보던 사모님이 반갑게 맞아주셨어요. 첫눈에도 정말 고운 분이구나 싶은 분이셨는데 말씀은 또 얼마나 우아하게 하시는지 한 우아하는 친구와 저도 홀딱 반했답니다. 무엇보다 낙엽 하나, 먼지 하나 떨어지지 않은 정갈한 정원에 온 마음을 빼앗겼네요.

하룻밤을 묶었던 우도의 펜션

저도 마당딸린 주택에 살지만 이 정도까지 가꾸는 일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동과 정성이 드는 일인지를 알기에, 또 그 모든 시간과 정성이 있다 해도 사실 재능과 안목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임을 알기에 둘러보는 내내 존경의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알던 우도와는 또다른 모습이었어요. 섬속에 작은 섬, 그 가운데 또 하나의 섬에 와있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텃밭의 고추까지 자로 잰듯 일정한 간격에 상한 잎 하나 없이 참으로 단정하게 심어져 있었습니다. 계단을 올라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 또한 장관이었지요. 우도섬 전체가 내려다보였고 바다가 내려다보였어요. 아주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펜션의 정원과 옥상에서 바라본 하늘모습


저녁에는 마당에서 친구와 흑돼지를 구워 간단히 술을 마셨어요. 

그 넓은 정원을 전세낸 듯 잔잔히 울리는 조용한 음악을 BGM으로 삼아 오랜만에 여유를 즐겼습니다. 동네 분들과의 저녁모임에서 돌아온 곱디 고운 사모님께서는 감사하게도 군산에서 직접 선물 받으신 박대를 내어주셨어요. 좋은 풍경과 함께하는 약주를 자주 즐기신다는 사모님과 저희는 함께 소주도 마셨답니다.

평생 험한 일은 한번도 안해보셨을것 같은 곱고 우아한 분이 우도에서 살게 된 이야기, 방이 많지 않아 많은 손님을 받을 수도 받을 생각도 없다는 이야기, 육지인으로 마을에서 적응하며 사는 이야기,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면 그때는 오지를 찾아 더 깊이 들어가 살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그야말로 반전의 캐릭터셨어요.




제주에서 일하며 살고 있는 저는 우도의 생활과 일도 참 궁금했어요.

저의 첫번째 우도여행은 10년 전이었는데요. 첫 입도때로 식당이 어느정도 입소문을 타고 바빠지고 난 한여름이었네요. 비 한방울 내리지 않던 몇 십년만의 폭염과 가뭄이 지속되던 해로 더위와 피로에 지쳐 남들 다가는 휴가 하루만이라도 갔다오자해서 부랴부랴 숙소를 예약하고 가족과 함께 왔었더랬죠.


그때 우도는 본섬 못지 않게 육지인들의 이주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있었어요. 주로 물질하며 살던 섬주민들 틈으로 젊은 사람들이 우도까지 들어와 느낌있는 인테리어를 하고 바닷가 앞에 까페와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우도가 주는 적막하면서도 아기자기한 특유의 느낌을 잘 살린 그 갬성에 전 흠뻑 빠졌고 다음엔 우도에서 살아보는 것도 좋겠다 생각까지 했었더랬죠.

해녀였던 어머니와 섬이라는 고립감이 싫어 육지로 떠났던 해녀의 아들은 어른이 되서 다시 우도로 돌아왔고 바닷가 앞 작은 까페를 운영했었습니다. 그곳의 정취와 이야기가 인상적이어서 제주를 떠난 이후에도 우도를 떠올릴때면 제겐 언제나 함께 자동으로 생각나는 곳이었지요. 저는 이번 여행에서도 기억을 더듬어 그곳을 찾았습니다.


제 기억으론 분명 그때 그곳이 맞는데 너무도 변한 주변 모습에 많이 놀랐어요. 작년 캠핑때도 번화해진 우도에 놀라긴 했지만 그땐 캠핑만 하고 바로 돌아가서 섬 전체를 제대로 둘러볼 기회가 없었거든요. 이번에 차로 찬찬히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제가 알던 10년전 우도의 모습을 재연하긴 어렵겠단 결론을 내려야 했습니다.


일단 까페와 식당이 정말 많아졌어요


제 기억속의 그 까페는 이미 이름을 바꿔 다른 이가 운영하고 있었고, 양옆으로도 건물과 까페, 식당과 펜션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그곳뿐만 아니라 해안도로를 따라 빠짐없이 까페나 식당이 보였고, 간판만 내걸린 채 문닫은 곳도 많이 보였습니다. 새 건물에 임대를 구하는 곳도 있었고, 제가 정말 좋아하던 백사해변 앞은 예전의 활기를 잃은지 오래였습니다.

우도의 상권으로 자리잡은 검멀레

좁은 우도지만 그 안에서도 상권이 형성된 곳은 있고, 또 그 상권은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최근 10년동안 일어난 변화를 아주 모르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 작은 섬에서 감당하기엔 그 변화의 폭이 너무 큰 것은 아니었을까 혼자 생각해봤습니다. 마침 우도에 정착한지 7년 되셨다는 사모님께 물어보았지요.


"제가 좋아하던 까페가 없어졌더라구요. 새로 생긴 곳도 많고, 변한 곳도 많구요. 젊은 이주민들이 요즘도 많이 들어오나요?"


"없어진 곳이 정말 많아요. 누가 가게한다고 들어와 공사하는 걸 보면 여기 사람들은 이제 그래요. 또 누가 망해서 나갈라고 들어왔나 해요. 안타깝지만 사실이 그러니까요. 여긴 돈 벌려고 들어오면 안돼요. 저나 남편같은 사람이야 퇴직하고 조용히 살고 싶어 온 거고 소일꺼리삼아 숙박업을 하고 있지만 사실 돈 벌려고 하는 건 아니거든요. 여긴 제주랑은 또 달라요. 배가 뜨지 못하면 고립되는 곳이예요. 여긴 그냥 정말 여기가 좋아서 살러와야 하는 곳이예요. 돈 욕심 내면 다 망해서 나가요."


예상했던 얘기였어요. 

가끔 남편과 싸우고 나서 육지로 다시 돌아가긴 싫고,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살까, 그럴때마다 우도 부동산을 보곤 했어요. 생각보다 높은 땅값과 임대료에 놀라고 그 안에 들어가서 인테리어하기까지 실어날라야할 자재와 소품들을 생각하면 아연해지곤 했죠. 배 끊어진 이후 적막함은 영업이 끝났다는 의미예요. 다음날 아침 첫배가 들어올때까진 섬에서 지낸 숙박객들만을 대상으로 해야 한단건데 무엇보다 한겨울 우도의 모습은 보지 않아도 알것 같지 않나요? 바람부는 애월의 한겨울 해안도로에도 사람이 없는데 우도는 오죽할까요.


정말 우도를 사랑하고 이곳에 살고 싶어 정착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모든 일을 견녀내기엔 힘들 꺼예요.


한껏 꾸며진 정원을 전세낸 양 맘껏 즐기던 친구가 그래요.

"너도 성공해서 이런 펜션 하나 운영해."


제가 살고 있는 애월 집 바로 옆엔 작은 민박집이 있어요. 작고 조용한 마을안, 크지 않은 펜션이지요. 2층엔 화장실이 딸린 원룸 구조의 방 세개와 별도의 독채 펜션이 있고 1층엔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어요. 가끔 차도 마시고 어쩌다 술도 한잔하는 그 집 안주인은 볼때마다 남편과 함께 언제나 청소를 하고 있어요. 청결이 생명인 숙박업에서 따로 청소인력을 쓰기엔 부담스러운 거예요. 부부 둘이 청소하고 빨래하고 정원도 가꾸죠. 물론 예약도 받구요. 잘되냐는 제 물음에 그녀는 항상 그래요.


"그냥 먹고만 살아요.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취업하기도 힘들고, 그래도 여긴 우리 집이니까 맘은 편하잖아요. 더 시설투자도 힘들고 우린 청결로 승부하는 거죠. "

"부부가 같이 일하려면 힘들지 않아? 우린 맨날 싸우는데."

"가끔은 누구 한명은 다른 일을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할 때도 있는데 이 일이 혼자서는 절대 못하는 일이예요. 사람을 쓰자니 남는게 없으니 미우나 고우나 둘이 하는 거죠. 손님 없거나 날씨 좋을땐 오름도 가고 오일장도 가고. 그냥 맘 편히 살려고 온 거니까 욕심 내려놓고 살아요."


육지에서 내려와 제주 동쪽에서 농가주택을 개조해 게스트하우스와 공방을 하는 어느 분의 책을 읽은 기억이 나요.

"너도 이런거나 해봐."
손님들 대화중에 종종 들리는 이 얘길 들을때마다 생각이 많아진다는 저자는 '이런거나'는 생각만큼 쉽고 하찮은 일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구요. 도시생활에 지친 그들의 마음을 그 역시 경험으로 알고 있고, 나쁜 의도로 한말이 아니란 건 알지만, 이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고 마음 다치는 일도 많은 직업이라구요.


'너도 이런 까페나 하나 해봐. 너도 이런 민박이나 하나 해봐.'

우린 흔히 말하죠. 호텔이나 리조트에 비하면 적은 자본으로 할수 있는 일임에는 틀림없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모든걸 내 손으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지요. 영업따로, 음식따로, 청소 따로, 회계 따로 분업화 할수도 없습니다. 멀티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 일, 내 노동이 생각보다 많이 투자되어야 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그 투자에 비해 내 손에 쥐어지는건 참으로 적은 일입니다.


도시생활에 지치고 인간관계에 지쳐 자연이 주는 위안에 취하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는 생각이죠.

'나도 이런거나 하나 할까?'

하지만 그 이런거는 생각보다 자본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 많이 힘들고 많이 지칠수 있는 일이란 걸 꼭 생각해 보셨으면 해요.


이미 제주의 숙박업은 포화상태죠.

제가 알던 초기 게스트하우스들도 이미 예전에 집을 팔아버리거나, 그만두고 육지로 갔거나, 독채민박으로 전환했거나 한 경우가 많습니다. 오랫동안 잘 운영되고 있는 곳들은 젊은 층을 겨냥해서 파티 위주의 음식과 술을 제공해주는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장님들이 계신 몇몇 곳이죠. 저 같은 사람에겐 시끌벅적한 파티는 상상할수도 없는 일입니다. 처음 게하를 해볼까 했던 제겐 안하기를 잘한 일이죠. 무엇보다 자기 취향을 잘 알아야겠죠.


알바로 잠시 일했던 제주의 호텔들도 실상을 들여다보면 적자상태인 곳이 넘쳐납니다. 제때 직원들 월급주기도 힘들어하는 곳, 이미 매물로 내놓은 곳, 그 많은 객실을 매니저 부부 둘이 운영하며 청소하는 곳도 봤습니다. 게스트하우스나 민박처럼 작은 규모도 시설관리가 필요하지만 호텔이나 리조트처럼 규모가 큰 곳은 그 관리비의 규모 또한 커집니다. 건물도 사람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노화가 되고 고장이 납니다. 회사에서 나보다 더 똘똘하고 재빠르고 상사 비위 잘 맞추는 젊은 신세대 직원들이 들어오는 것처럼, 호텔도 시간이 지나 인테리어가 촌스러워지고 시설이 노화되며 침구가 바래지는 동안 세련된 인테리어와 럭셔리한 건축으로 무장한 모던한 호텔들이 연달아 등장합니다. 그럼 손님들은 당연히 시설이 좀더 새것인 곳, 인테리어가 좀더 세련된 곳, 건물이 좀더 현대적인 곳으로 이동하겠죠. 게다가 숙식과 함께 정성들인 조식까지 함께 준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을거예요.


이래저래 제주에서 숙박업을 한다는 건 역시나 자본의 싸움이 됩니다.


그럼에도 또 변하지 않는건, 내가 좋아 살러 온 곳에서 내가 좋아 방을 꾸미고, 뜰을 가꾸고, 내가 좋아 사람을 맞이한다는 기본 자세가 있다면 버틸수 있다는 사실일 거예요. 이곳에서 이걸로 돈을 벌겠다고 생각하면 숙박객 한명한명이 돈으로만 보이겠죠. 그럼 버티기가 힘들어집니다. 조급해지니까요.


제주는 욕심을 내려놓고 내 집에 반가운 손님을 맞는다는 마음으로 무장할때 숙박업도 가능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에서 라이브커머스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