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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Apr 29. 2022

나이 오십에 든 어느 중년여자의 일상

중년단상

...


글을 써보고자 몇번이나 시도해본다.

마음을 다잡고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연다.

하얀 빈 여백을 마주하고 이내 침묵.

...


'뭘 써야할까?'

'뭘 쓰려고 했지?'

"

'뭘 쓸 수 있을까?"


고민의 시간이 어느덧 350일이 지났다는 브런치의 친절한 알람글이 도착했다.

기다림과 망설임의 시간이 길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새 1년이 다 됐단다.


그동안 나는 제주 재입도 4년차에 접어들었고, 

귤밭을 세해나 작업했으며, 

바닷가 앞 작은 곳에서 버거집을 두해째 운영하고 있다. 


작기만 했던 막내가 어느덧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했으며, 

큰 아이는 이제 대학졸업을 앞두고 있다.

한두개 나기 시작했던 흰머리는 매달 염색약의 도움 없이는 무성하게 자라나 검은머리를 덮을 지경이고, 

나이앞 숫자 4는 올해 5로 바뀌었다. 


나이 마흔에 회사생활이 아닌, 첫 식당을 오픈하며 요식업에 발을 들였는데 어느덧 헤아려보니 10년이 지났다. 내 인생에서 가장 미친듯이 몰두하며 일했고 치열하게 고민했으며 육체의 한계로 울어도 봤던 참으로 힘들던 분야였으나 지금 남아있는건 글쎄, 

지난 시간들에 대한 후회없는 선택과 경험에 대한 존중뿐 물질적으론 여전히 고전 중이다.


그나마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하고 있는 결혼생활_그마저도 같은 사람이랑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과정을 거쳤다._도 이제는 관성처럼 무던히 지내고 있다. 사실 이렇게 되기까진 이루 말로 다 할수 없을만큼 치열한 싸움과 그로 인한 상처의 과정을 무한반복했다. 처음엔 그 상처가 칼로 찔린 것처럼 그리도 예리하게 아프더니 이제는 하도 여러번 겪어 면역이 생기고 아픔도 무뎌졌다. 


어릴적 막연하게 꿈꿨던 어른이 된 이후의 난 청춘도 화려하지 않았고, 중년도 안정적이지 않았다. 

나이먹은 난, 사회에 불만과 냉소가 가득한 어른이 되었고 그 어떤 화려함에도 동경하지 않으며 그 어떤 성공에도 놀라지 않게 되었다. 

세상을 바꿀수 있다 믿지도 않으며 변화하는 세상에 굳이 따라가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나이든 이들이 걸어온 지난날을 폄훼하거나 무시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대단하거나 존경해줄 마음도 없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젊은이들의 생각 또한 무시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크게 귀기울거나 감탄하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왠만한 일엔 크게 슬퍼하지도 기뻐하지도 분노하지도 추앙하지도 않는 참으로 맹맹한 어른이 되었다. 스스로는 이런 나를 답답하다 자학하기 보단, 쿨한거다 위안하면서.


근 일년여간 글을 쓰지 못한 이유는,,

그렇다.

이런 것이었다.

특별히 억울해서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특별히 분노해서 다른이에게 당부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특별히 가슴이 뛰어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은 기분도 없었고,

특별히 잘하는 기술이 있어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무난하고, 가장 평안하게, 가장 느리면서도 가장 성실하게 지나온 시간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욕심을 내려놓고 대하는 제주생활에서 자연의 변화를 통해 보는 계절의 변화는 경이롭기 그지없지만,

그 또한 혼자 속으로 감탄하고 혼자만의 흐뭇한 미소를 짓고, 혼자 한숨짓고 혼자 중얼중얼 걱정하며 지내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나보다 풍족한 이들에 대해 관조적이 되었으며

나보다 열정적인 이들에 대해 거리두기가 자연스러워졌다. 

사람에 대한 실망을 알기에 기대하지 않으며

사람으로 인한 배신에 경험치가 쌓여 잠시 분노할뿐 오래 쌓아두지 않게 되었다.

자연과 대화하고 자연과 즐기며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이제 나이 오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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