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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Aug 24. 2022

제주살이의 시작

제주살이를 꿈꾸는 당신과 나누고싶은 이야기

최근에 작은 가게를 혼자 운영하며 좀처럼 글쓰는 시간을 갖기가 어렵네요. 

지나온 삶의 기록이 때론 무의미한 배설의 흔적처럼 여겨져 부끄럽다가도

살다보니 그 기록마저 없다면 별볼일 없는 이 삶이 더욱 초라해 보이겠다 싶은 자각이 들어 소소하게나마 기록을 남겨봅니다. 


이 글은 자영업자로 동병상련의 위로와 정보를 제공받는 카페 '아프니까 사장이다'에 최근에 썼던 글로

제주살이의 재입도의 시작을 정리한 글이라 이 곳에 살포시 옮겨와봅니다. 

제주에 재입도했던 7월말에서 8월초가 되면 항상 고향을 찾듯 지금도 금능해변을 찾아 그때의 추억과 감회를 되돌아보곤 합니다. 





제 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10년전쯤 남편의 사업을 따라 두 아이를 데리고 경기도에서 이민_제주는 이민이란 표현이 꽤나 적절합니다.^^_을 왔고,

늦둥이 둘째 육아로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며 수산업에 이어 육가공 유통을 했던 남편 일을 1년 정도 돕다 제주 시내에서 20여평의 식당을 차렸습니다. 요식업으로의 입문이었죠.


메뉴는 파스타, 덮밥, 돈까스였구요. 1년정도 운영하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큰 아이의 고집으로 살던 집과 가게를 처분하고 온 가족이 다시 먼저 살던 경기도로 올라갔습니다.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며 로드에서 가게를 열고 닫고, 백화점에 입점했다 팔다를 반복하며 짧은 시간 안에 요식업에서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어찌보면 제 인생에서 마지막 기회가 될것 같아 동남아 진출의 기회가 생겨 가족 모두 필리핀으로 들어갔다 지인에게 사기당하고 쫄딱 망한 후 짐가방만 들고 한겨울 다시 들어왔구요.


가족이 함께 살 집이 없어 아이들은 친척집에 맡기고 남편과 지하철에서 김밥 매장을 운영하며 1년정도 정말 힘들게 버텼습니다. _이제는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땐 정말 하루하루가 끝이 없는 공포영화같았네요.


요식업으론 답이 안나올 것 같아 잠시 기획 부동산에도 들어가 보고 보험에도 발담궈 보고, 십년만에 직장생활도 다시 해보고 그러면서 정말 많이 지쳐버렸던 것 같습니다. 회색빛 도시, 꽉막힌 도로, 닭장같은 아파트, 가면을 쓴 사람들과의 어색한 관계도 다 싫고 그저 제주의 하늘과 바다만 생각났습니다.


남편과도 참 많이 싸우고 끝까지 갈듯 냉전상태로 지내다 '우리에겐 더 잃을 것도 없다' 결론을 내린 어느날, 제주로 떠나자 얘기했습니다. 그렇게 무턱대고 7월 30일, 지금처럼 무덥던 한여름에 낡은 무쏘차에 냄비와 텐트, 간단한 옷가지 등만 쑤셔넣고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를 태우고 달려 목포에서 제주행 배를 탔습니다.


새벽 일출을 배 갑판에서 보고 8월 1일, 제주에 도착했어요.


그냥 모든 곳이 다 아름다웠습니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 거리에 나무와 꽃들, 야트막한 돌담과 찌르르찌르르 울어대던 매미소리, 새소리.

달리는 내내 감탄만 했어요.


이미 7년전 한번 살았던 제주였지만, 그땐 제주시내였기도 했고 지금처럼 절박한 맘으로 온때가 아니어서 미처 몰랐던 아름다움이었지요.


역시 대책없이 온 터라 제주에서도 머물 곳이 없어 무작정 금능해변으로 갔습니다. 금능 캠핑장이 무료라는 정보만 보고 물 맑은 그 곳에서 텐트를 치고 2박 3일동안 노숙자처럼 세 가족이 지냈습니다. 낮에는 물놀이하고 밤에는 텐트에서 불편한 잠을 자고, 공중화장실을 이용하고 식수대에서 쌀을 씻고 양치를 했지요.







그 한달전쯤 남편이 먼저 잠시 와서 둘러본 집이 있었고 계약만 해두고 가긴 했었는데, 잔금이 없어서 못 들어가고 있었거든요. 다행히 가족 중에 보증금을 빌려줘서 3일째에 드뎌 계약했던 집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북적이던 바닷가에서 까맣게 타고 온 몸에 모래가 들러붙어 있던 이틀간의 몸을 '집'이라는 곳에서 씻고 얇은 이불이지만 깔고 누웠을 때 저희는 항상 당연하게 생각했던 그 안락함에 울컥했습니다. 조용한 중산간 그 집에 처음 들어갔던 그 밤, 남편과 저는 너무 행복해서 자는 아이를 두고 마당 한켠에 나와 맥주를 나눠 마시며 하늘의 별빛과 함께 두런두런 참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무작정 제주행'은 시작되었고, 그해 여름은 열살이 된 아이에게뿐 아니라 사십해를 넘게 살아온 저와 남편 모두에게도 최고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집만 있었지 살림살이며 가전제품도 없어 짐가방만 덩그러니 있던 그 곳에서 냉장고 대신 작은 아이스박스에 편의점에서 사온 얼음을 넣고 오일장에서 사온 배추 한포기로 김치를 담궈 보관하고, 수돗가에서 매일 세숫대야에 빨래를 넣고 발로 밟아 빤후 비틀어 짜서 옥상에 널었습니다.


물때 시간을 보고 동쪽 바다로 조개와 보말을 잡으러 갔고, 일몰시간을 체크한 후 서쪽바다로 달려 지는 해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비가 오면 주변에 있는 연꽃을 보고 나섰고, 매일 싱싱한 회와 고기, 나물로 차려지는 밥상은 더없이 만족스러웠습니다.


뜨거운 태양을 피할 파라솔을 펴고 서울 언니가 보내준 수조를 마당에 설치하여 아이들은 아침부터 물놀이를 즐겼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동네 한바퀴를 산책하고 저녁이 되면 옥상에 올라가 밥을 먹고 돗자리를 깔고 누워 하늘의 별을 세었습니다.








최고의 시간을 보냈던 그 해 여름, 그 한달 동안 우리 부부는 깨달았습니다.


'사는데 있어 필요한 건 참 많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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