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삶의 현실에서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벽..
외국생활을 안해본 건 아니다.
어학연수도 가봤고, 살아보겠다고 이민 비쓰끄름한 것도 가봤다.
배낭여행도 가봤고 단체여행도 가봤다.
이민을 목표로 미국에서 일년 동안 살때는 '대한민국인'이라는 주권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고,
고만고만한 집단에서 각자 떠나온 시대의 추억을 안고 사는 꽉 막힌 교민사회에 염증도 느꼈다.
학생비자든, 이민비자든, 관광비자든 그 나라의 국민이 되고자 함에는 엄청난 난관이 있으며
그 난관을 어찌어찌 참고 넘어봐도 완전한 그들로 동화될순 없는 이방인임은 부딪치며 감내해 내지 않아도 충분히 예견됐다.
그 어느 나라든
다수를 지배하는 소수가 있으며,
그들만의 리그가 있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잘난척과 답답한 룰이 존재하며,
자본과 권력의 음모와 술수가 존재한다는 걸
불혹의 나이인 지금은 잘 알고 있다.
동남아는 동남아대로 눈높이를 충족시키기가 어렵고,
유럽이나 미국의 이른바 선진국이란 곳은 허드렛일부터 시작하고도 앞이 보이지 않는 한참을 지내야 하며,
내 태어난 나라에서 자유롭게 지껄이던 한국말을 못하고 그노므 현지언어가 안돼 받는 설움은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으로 사는 불편함보다도 더하다는 걸
이 아짐, 결코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왜 나는 요즘 '이민'에 꽂혀있는 걸까?
젊은 세대가 말하는 '헬조선'이란 단어를 처음 언론에서 접했을때
그 기사내용과 그 뜻이 의미하는 바를 굳이 찾아 읽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비록 IMF를 겪었지만
IT 산업의 급성장과 그 버블을 경험했고,
주식시장의 활황과 그로 인한 여의도의 환락의 밤들을 목격했고,
삐삐를 거쳐 휴대폰, 스마트폰의 발달사를 지켜봤던 90년대 학번으로서
지금의 이 경제불황과 희망의 부재는 그 출구가 없어보인다.
정치는 정치대로 후퇴하고 있고,
법과 질서를 만들고 지켜줘야 할 높은 자리에 앉아계신 분들은 서로 니줄이 굵니, 내줄이 굵니하며 줄잡기에만 급급하시다.
가진돈 탈탈 털어 골목에서 작은 가게 오픈해서 온 정성 기울여놓으면
바로 옆에 대기업 자본과 인력으로 무장한 체인점이 들이민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에서 가르치는 건 질문과 대답이 오가지 않는 일방적인 강의와 침묵뿐이고
순수와 열정의 학문 따위는 폐강되며 오로지 취업과 스펙을 위한 기술학원으로 전락한다.
낯짝 두꺼운 교수들은 자기 엉덩이 밀려날까 전전긍긍하며 제자 키울 생각은 없이 부려먹을 궁리나 하고 있고
학생들은 뼈빠지게 벌어다주는 부모의 돈으로 비싼 커피를 마시며 술마시기 바쁘다.
신문을 유료로 사보는 사람을 보기는 힘든데, 스마트폰만 열면 연예인으로 도배된 자극적인 기사들이 한가득하고 사회적으로 이럴수가 있나 싶은 일이 일어나도 검색어 상단에 오르는건 언제나 연예인 사고친 얘기다.
자라나는 새싹들은 티비만 켜만 줄줄이 소세지처럼 엮어 나오는 배우인지, 가수인지, 정치인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이들의 천편일률적인 예능을 보거나
그도 아니면 물싸다구나 출생의 비밀이 반드시 들어간 막장드라마에 길들여진채
유치원 졸업식부터 장래희망이 '연예인'이 된다.
누가봐도 뻔한 얘기의 진위를 가린다며 정치와 언론이 막장드라마를 찍어대고
네이년 뉴스에 왠지 모를 한통속인 듯한 기사내용들로 쉴새없이 도배되면
그 뻔히 보이던 일들도 '뻔하지 않았던 일들'로 인식이 전환된다.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불평등과 불합리함,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차별에 대해
그 모든 것이 해소될 수 있는 곳은 없다는 걸,
유토피아는 없고 환상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 나라의 작금의 현실에 대해 두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의 우려는 깊다.
산다는 건 어디나 힘들고
버티는 건 그보다 더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내가 자꾸 이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의 이민을 꿈꾸는 건,
적어도 지금은 힘들더라도 앞으로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
그 희망을 찾고 싶어서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