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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Aug 30. 2022

내 젊음에도 반짝거림이 있었다.

중년단상

"야. 우리 다시 뭉쳐야지."

"그래. 다같이 본지 넘 오래됐다. 나이 오십 기념으로 다같이 한번 보자구."

"그래. 까짓거. 만나서 와인 마시고 뻗어버리자. 그때처럼."

"우리 그때 무제한 와인 마시고 취했던 사진 내 싸이월드에 있었는데."

"싸이월드 복구된거야?"

"일년전쯤 봤었는데 지금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

"..."

"..."


"찾았다. 내 싸이에 사진 그대로 있어. 야. 진짜 신기하다. 이거봐."

"야. 이거 뭐야. 진짜 얹그제 같은데 우리 이때 넘 젊었네."



모두들 한동안 침묵했다.

자신의 싸월에 접속해 사진첩과 손발 오글거리는 다이어리를 찾아 분주한 가운데

이름모를 먹먹함과 추억에 젖어 한동안 그렇게 우리는 말이 없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싸이월드 속의 젊은 나와 마주했다.

70년대 출생, 90년대 학번.

소위 'X세대'로 불리던 우리들.

그때 당시 잘나가던 압구정 오렌지족도 아니었지만, 화려한 외모와 꿀릴것 없는 재력도 없었지만

어쨌든 꿈만은 순수하고 맑았던 동시대를 살았던 우리는 같은 세대였다.


사실, 흔히 말하는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이십대로 돌아갈꺼냐 하면 할말이 없다. 

참으로 작고 초라했던 그때의 나였기에..

방황과 고민투성이, 

여자인 내겐 결혼과 출산, 육아까지 감당하기 힘들었던 문제들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한꺼번에 몰려들어 

매순간 순간 전투하듯 힘겹게 싸워야 했던 때였기 때문이다. 


나의 싸월을 수놓고 있는 기록들은 그 이후, 30대 초반의 것들이다.


이혼 후 홀로서기를 위해 떠났던 영국행과 돌아온 이후 직장생활, 

재즈와 와인, 미술과 사진, 미식을 탐닉했던 가장 온전한 나의 세계를 유영했던 때였다.

이혼 직후 어둡던 얼굴은 영국에서의 1년을 겪으며 밝고 당당하며 자신감있는 얼굴로 몰라보게 달라졌고

이후 돌아온 한국에서도 지인들과 어울리며 참으로 해맑았다. 

남편과 다시 재결합해 둘째를 낳기까지의 그 시간은 아마 내 일생에서 가장 빛나는 나다운 시간이었을 거다.



친구들과의 대화 중 문득 찾아본 싸이월드.

그 안에 온전히 간직된 사진과 기록들..

그때의 감성, 느낌, 우정, 사랑, 고민, 방황..


가장 빛났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지난밤은 무척이나 갈증이 났다.


'그래, 그때 이 머리가 어울렸어. 내일 당장 앞머리를 잘라보자.

이 옷, 기억난다. 내가 이런 취향이었지. 잊고 있었네. 

그때는 공연도 많이 봤었는데. 참 다방면으로 관심도 많았었구나.

그래. 이게 나였지.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자.'


.......


달뜬 몇 시간이 지나고 난 후, 난 깨달았다.


'아니, 돌아갈수 없어.

반짝거리던 그때는 지났고 지금은 중년이 되었어. 

같은 머리, 같은 옷을 입어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과 같은 술을 마셔도

우린 저때만큼 예쁘게 웃을수 없고 저때만큼 빛나지도 않아.

우린 시간의 터널을 지나왔고 지금은...

그래.. 그 시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두는 거야.

다시 돌아갈수 없다해도 우리에게도 반짝거리던 젊음이 있었다는 걸.

이렇게 반추할 수 있는 기록들이 있다는 걸 긍지삼아 멋진 중년을 살아야 해.'



그때의 우리는

참으로

아름답게 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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