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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Apr 18. 2016

진지함의 구속

유머의 힘에 다시금 감탄하며..

예전 만났던 그넘은 그런 말을 했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의 고통과 슬픔의 간극을 메꿔줄 것은 단 하나, '유머'라고..

어려운 말 하길 좋아했던 꽤나 센치한 넘이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비웃기보다는 머리를 한대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당시 내가 처한 곤경과 외로움속에서 그냥 뭔지 모르게 나에게 없는 그것, 가질수 없는 그것을 사귄지 얼마 안된 그넘이 꿰뚫고 있는 것만 같아서...


누구나 그렇듯이 각자의 글쓰기 기법과 색깔이 있다면,내 글쓰기는 그랬다.

'지나치게 진지함..'

가볍게 지나갈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이 두 손을 자판위에 올리고 그 일에 대해 쓰기 시작하면

세상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하고 집요하면서도 결국은 시니컬한 결말을 맞게 되는...

좋게 말하면 감성적이고, 또 솔직한 것이고...

그런데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냉소적이면서 감정이입을 하게 되면 원치않는 오버가 되는 느낌이랄까?


 제주에서 가게를 할때 초기에 정말 손님이 없었다.

전면을 감싼 통창유리로 저녁해가 질때쯤, 특히 또르륵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날이면 테이블에 초를 밝혀두고 블로그에 글을 썼었다. 당시에는 나름 돈 안드는 마케팅이랄 수 있는 블로거를 통해 손님을 유치해보자는 이기적인 목적이기도 했는데, 문제는 글을 썼다하면 영업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아니라 소소한 내 일상과 번민들로 얼룩진 푸념투성이가 되었다는 것. 내 딴에는 '블로깅 한숨'이라는 이름으로 아예 폴더까지 만들었더라는...

가게를 처음 하는 사람으로서의 어려움, 제주라는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외로움,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등에 대해 주절이 주절이 쓰곤 했는데, 사실 나는 내 글을 그리 많은 사람이 볼 거라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이웃공개로 전환한 것도 아니면서 그냥 어쩌다 쓰는 내 글들을 누가 눈여겨 보겠는가? 그럼에도 누군가는 봐줬으면 하는 이율배반적인 마음이었달까?

 가게를 한지 한달이 조금 넘었던 겨울 어느날이었나보다. 남녀 커플이 가게를 와서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부부였던 그 둘은 이후로도 자주 오는 단골이 되어 오면 반갑게 근황을 묻곤 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어느날은 남편이 아닌 다른 여인네와 왔길래 와이프에게 어쩐 일인지 묻게 되었다.

자신들도 제주태생이 아닌 직장때문에 제주로 살러 온 케이스라며 일이 있어 육지로 갔기 때문에  며칠동안 집에 못 온다는 것, 친한 친구와 한번 오고 싶었던 곳이라 오늘 함께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러면서 그전부터 나를 어디선가 봤던것 같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우리는 서로 웃으면서 길지도 짧지도 않을 지난 날의 그 어느날을 짐작하듯 과거를 향해 서로의 이력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뭐 결국은 그 어느 지점에서도 둘이 교차하는 곳은 없었던 관계로 아마도 제주 이주민들 까페의 어느 오프모임에서 만난적이 있지 않았겠나로 대충 정리가 되었는데...

주저하듯 그녀가 조심스레 꺼낸 마지막 이야기가 내 머리를 때렸다.

"사실 여기 오기 전에 남편이 먼저 알고 무척 오고 싶어했어요. 아는 분의 블로그를 통해 사장님 블로그를 보게 됐나봐요. 글이 너무 안스러워서 가까우면 가서 도와주고 위로해주고 싶었다고 하더라구요."

순간 나는 얼어붙듯 표정이 굳었던 듯하다.

그당시 그때의 감정은 그랬다. 굉장히 치욕스러운 느낌...

그녀 입장에서는 친해졌다고 생각했기에 꺼낼수 있었던 이야기였겠지만 나는 그게 아니었다. 나는 블로그 글을 누군가의 동정이나 위로를 받기 위해 쓰지 않았다. 자존심 없인 나를 설명할 수 없는 성격상 그렇게 대외적으로 광고하듯 나의 어려움을 알리고자 함은 절대 아니었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봐주길 원했기에 내가 쓰고 내가 올렸던 글을 보고 느낀 독자의 감상까지 내가 뭐라 할수도 없었다. 그러려면 쓰지 말았어야 했다. 올리지 말았어야 했다. 사생활 침해를 호소하는 연예인들에게 '관심종자들'이라며 비웃는 네티즌 입장에서 보면 나는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는 웃기는 사람일 터였다.

그럼에도 변명을 하자면, 그냥 '내 글이 그랬다'. 그렇게 내가 쓰는 글의 스타일이 그랬다..

난 몹시도 마음이 복잡했고, 괜시리 억울한 느낌이었고, 몹시도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블로그는 다섯도 되지 않는 서로이웃들에게만 공개로 전환됐다.

또한 이후 지나왔던 여러 가게들을 어김없이 열때마다 블로그는 하지 않았다.

그때의 일은 나에게 '상처'가 됐다.


 한동안 쓰지 않던 글을 브런치를 통해서 다시 시작했다. 쓰지 않고는 채워지지 않는 이 마음의 헛헛함을 채울길 없어 다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그리고 이런 나의 솔직함, 때로는 동정, 때로는 슬픔, 때로는 연민, 또 때로는 비판을 불러일으킬만한 나의 글들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분위기를 찾았다.

이 곳에서 나는 글을 쓰기도 하지만 또한 여러 작가들의 독자가 되기도 한다.

각자의 글쓰기 스타일을 보면서 공감할때도 있고 나와 맞지 않아 스킵할때도 있다.

한동안 무척 열심히 쓰던 작가분의 글이 있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에 대해 집요하리만큼 깊게 파고들며 신랄한 비판과 깊은 관찰력, 무엇보다 느낌에 대해 상세히 물고 늘어지는 진지한 글..

그 진지함으로 시작된 그 글의 매력이 어느날부터인가 답답함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너무 집요하게 느껴졌달까? 타인의 생활과 그로인한 타인의 글에서조차 숨막히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아.. 글에서도 이렇게 숨막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구나..

생각해보니 그 분의 글은 나와 많이 닮아 있었다. 한치의 양보도 허용도 없는 듯한 냉정한 문체.

미사여구는 훌륭하고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하며, 주변을 꿰뚫는 심오한 눈을 가졌음에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듯한 숨막힘..


 예전 회사에서 영업을 할때 보면 정말 영업을 잘하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똑똑하고 말 잘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어디가 조금은 비어보이고 허술해 보이는 사람, 내가 무슨 부탁을 하든 무슨 질문을 하든 호쾌하게 달려와줄 것만 같은 사람, 어딘가는 내가 그 사람이 가지지 못한 빈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이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주변에 강요하지 않으며,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으며, 얼마든지 내가 틀릴수도 있다고  말하며, 무엇보다 웃음을 알았고 편안하게 해주는 유머를 알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요즘 나의 글쓰기의 화두는 '유머'다.

내 글이 얼마나 빡빡한지, 내가 읽어봐도 똑 떨어지는 느낌은 있어도 오래도록 남을 진한 향기는 없는..

글자 사이사이 비집고 들어갈 틈새가 없이 자기기만에 빠져있는 것만 같은 그 이유에 대해 내 글엔 '유머가 없기 때문'이라고 내면의 또 다른 내가 답을 내려주었다.

요즘 화제리에 종영한 태양의 후예를 봐도 그렇다. 황당한 설정과 불사조의 유시진, 감정의 극한 상황들에 황당하게 대처하는 강모연에 대해서도 비판보다는 환호가 더 많은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 심각한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센스 넘치는 김은숙 작가의 유머코드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래, 다시 찾아보자. 내 안의 '유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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