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실수

다시, 사랑_4

by 후룩쥔장

교대역에서 법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법원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평생 법원이란 곳에는 발 디딜 일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봄, 그녀는 또 다시 법원을 향하고 있었다.



#2001년 봄_강남경찰서


이미 한 차례 그녀는 법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아홉수였다고 생각하는 지난 봄, 그녀의 아주버님댁에서 함께 살던 그들에게 예기치 않던 일이 찾아왔다.

그즈음 새로 취업한 직장에서 돌아와 조카들과 그녀의 아이를 씻기고 빨래를 개키며 그녀가 아이들을 재울 때였다. 몇달동안 월급이 나오지 않아 동분서주하던 그녀의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분명 발신자는 남편이었는데 말이 없었다. 몇번이나 "여보세요"를 외치고 난 후, 들려오는 음성.

"왜 이래요? 이거 놔요. 제가 뭘 잘못했다고 이래요? 저 사람이 먼저 그랬다고요."

음성은 점점 커지고 무언가 쿠당탕 부서지는 듯한 소리, 이어지는 약한 비명.

처음에 그녀는 잘못 걸려온 전화인 줄 알았다. 아니면 누군가 극장에서 전화를 걸었나 생각도 했다. 그러나 분명 그 번호는 그녀 남편의 전화번호였다. 전화는 이내 끊어졌고 불길한 예감이 그녀를 엄습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다시 걸려온 전화, 역시 남편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당신이야? 당신 어디야?"

"여보, 나야. 나 지금 죽어. 사람들이 날 붙잡고 때려. 아 왜 이래요? 아, 알았어요. 조용히 할께요. 전화통화 좀 하구요. 제 와이프예요. "

멀리서 들리는 웅성거리는 소리.

"무슨 일이야? 응? 당신 괜찮아?"

누군가 전화기를 바꿔드는 소리가 들렸다.

"아 예. 여기는 강남경찰섭니다. OOO씨 아내분 되시나요? 남편분이 술 드시고 사고를 치셨어요. 지금 강남경찰서로 오셔야겠습니다."

"네? 저희 남편이요? 무슨 사고를요? 많이 다쳤나요?"

"아닙니다. 일단 오세요. 와서 말씀하세요. 끊습니다."


전화를 끊고도 그녀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사고를 냈다는 건지, 사고를 당했다는 건지, 누구와 싸운 건지, 다친 건지 혼돈스럽기만 했다.

"아주버님. 지금 그이 강남경찰서래요. 무슨 일이 난 것 같아요. 저랑 같이 좀 가주셔야 될 것 같아요. 대체 무슨 일인지. 별일 아니겠죠?"

평소에도 과묵한 그녀의 아주버님은 서둘러 옷을 입고 나와 그녀와 함께 강남경찰서로 향했다.

"별일 아닐 거예요. 재수씨. 우리같은 사람들이 무슨 죄를 짓겠습니까? 너무 걱정마세요."

경찰서가 다가올수록 그녀 역시 별일 아닐 거라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들은 그저 너무도 평범한 소시민일 뿐으로 경찰서를 들락거릴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한밤 중의 경찰서는 아수라장이었다. 시장 한복판에 온 듯 사방에 고함소리가 난무했고 사람들이 뒤엉켜 누가 경찰이고 누가 끌려온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도 크나 큰 강남에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서이니만큼 크기도 컸고 사람도 많았다. 그들이 방금 떠나 온 동네는 불을 끄고 모두 잠든 고요함과 정적의 한밤중이었는데 이곳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듯 활기가 넘쳐보이기까지 했다. 오는 내내 곰곰 생각해보던 그녀는 분명 그녀의 남편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일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맞았다면 저자세로 나갈 일이 아니라고도 생각했다. 우선 상황파악부터 제대로 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었다. 그녀는 가방에 담아 온 기자증을 꺼내들었다.


결혼 후 임신과 함께 그만 둔 사회생활로 그녀는 경력이 단절되었고 시간이 흘러 다시 시도한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전공인 경영학과는 다르게 그녀는 글을 쓰고 싶었고 그래서 기자직에 지원했다. 전공과도 관련이 없었던데다 경험도 미약했기에, 게다가 어린 아이까지 딸린 주부였기에 그녀는 매번 입사지원에서 쓴 맛을 봐야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온라인 채용공고를 꼼꼼히 살피고 스크랩한 후, 원하는 스펙을 분석하여 개별적으로 지원회사에 맞춤한 이력서를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따로 입사지원서 양식이 정해진 곳이 없었기에 그녀는 다운로드 받은 양식에서 결혼유무란의 칸을 과감히 없애버렸다. 결혼한 여자라는 이유로 심사받을 기회조차 박탈당한다면 그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그녀의 전략이 유효하여 많지는 않았지만 몇 곳에서 면접을 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면접 말미에 묻는 결혼계획에 그녀는 기혼임을 밝혀야했고 여지없이 합격통보는 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작은 잡지사에서 면접제의가 왔고 그곳에서 기혼이라는 얘기에도 고심했던 취재부장의 결단으로 그녀는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잡지사의 기자였지만 필요할 거라며 기자증을 나눠준 것이 며칠 전이었다. 사건담당 기자가 아니기 때문에 필요할 일은 별로 없겠지만 하다못해 과속으로 걸리더라도 보여주면 유용하게 먹힐거라며 만들어 준 기자증이 오늘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싶어 챙겨 온 것이다.


정신없는 경찰서 내부에서 그녀의 남편을 찾아 걸어가는 그녀를 누군가 제지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저, 이거. 기자예요."

그녀가 내민 기자증을 보자 그 사람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녀를 스쳐 지나가버렸다.

저 안쪽으로 그녀의 남편이 보였다. 형사인 듯한 사람 맞은편 의자에 앉아 두 손은 뒤로 묶여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전화상과는 달리 고분고분 묻는 말에 무어라 대답을 하고 있었다.

"저, 이분은 왜 여기 잡혀오신거죠?"

담당형사인 듯한 사람에게 다가가 묻자 그는 의아한 얼굴로 쳐다봤다.

"누구신데요?"

"저, 기잔데요."

"아, 별거 아니예요. 단순 공무집행 방해. 젊은 사람이 술먹고 택시기사한테 행패를 부렸나 봐. 자기 아버지뻘은 되겠던데 욕하고 뒷자리에서 발로 차고. 인사불성이 되서 파출소 끌려와서도 소리지르고 가만있질 않으니까 파출소에서 여기로 보내진 거지."

창백해진 낯빛과 함께 그녀의 남편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여보"

"누구? 당신 이 사람 가족이야? 아씨. 첨부터 왜 와이프라고 말을 안해요? 에이 씨."

담당 형사는 몹시 불쾌하다는 듯이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당신 어떻게 된거야? 이게 무슨 소리야?"

"몰라. 나도 기억이 안나. 술 먹고 역삼역에서 택시타고 집으로 가자고 했거든. 그리고 잠들었는데 운전사 양반이 압구정 파출소로 나를 끌고 가잖아. 그러더니 경찰새끼들이 나한테 욕하고 수갑을 채웠어. 이거 봐. 손목 다 까진거."

그녀에게 내민 남편의 손목은 수갑이 채워진 부분에 빨갛게 살갗이 벗겨져 있었다.

"알았어. 좀 기다려봐. 내가 기자증 가지고 왔어. 일단 무슨 일인지부터 좀 알아봐야 할것 같아. 공권력 남용에 가혹행위 아닌가? 형사분 좀 만나볼께."

담당형사를 찾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몇 분을 기다려봤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형사들에게 물어보니 현장에 나갔다 했다. 오늘밤 안으로는 만나기 힘들 것 같으니 내일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 사건은 담당형사가 아니면 어떤 말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은 오늘밤은 구치소에 수감될 것이라 했다.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그녀 앞에서 수갑이 채워진 채 구치소로 향하는 남편을 복잡한 마음으로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여 그녀는 국장실을 찾았다. 말하기 부끄러운 가정사지만 지금으로선 회사에서 제일 끝발 있어 보이는 국장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평소에도 주변 정재계 인맥들을 자랑하며 본인의 무용담을 알리기 바쁜 국장이라면 이번 일 정도는 전화 한두통으로 쉽게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뭐 너무 걱정하지마. 남자들은 술 마시면 한두번씩 그런 곤조가 나와. 어디? 강남경찰서? 음.. 내가 손을 써줄 수도 있지만 내가 알던 사람이 현직에서 물러났어. 뭐 그리 큰일도 아닌데 그 사람한테까지 연락할 필요가 있겠어? 내가 연락하면야 손을 써주긴 하겠지만, 그 사람도 여러 경로를 거쳐야 하니까 좀 번거롭겠지. 힘들겠지만 좀 버텨봐. 그런 건 금방 나와."

국장실을 나와 취재부장에게도 도움을 요청해봤다.

"그런건 담당형사한테 잘 보여야 해. 남편이 가해자라며? 그럼 일단 피해자하고 합의를 해야할 거야. 기자증이 유용했어? 그치? 경찰서에선 기자증이 최고라니깐. 걔네들 쯩만 보면 다 통과해주지? 그래도 담당형사 찾아갈땐 음료수라도 한 박스 사들고 가는거야."


그녀는 부장이 알려준대로 음료수 한 박스를 사 들고 간밤에 보았던 담당형사를 찾아갔다.

"아. 기자님? 무슨 일로 오셨어요? 사건은 어제 말씀드렸고 그냥 기다리시면 됩니다. 이런 건 제가 할 수 있는게 없어요. 법의 심판을 따르시면 됩니다. 기자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비꼬는 듯한 그의 말에 평생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해본 적이 별로 없었던 자존심 강한 그녀는 더 이상의 어떤 말도 해보지 못한 채 돌아서야 했다. 별일 아닐 것이며 금방 풀려날 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과는 달리 구치소에 있던 다음날 주말이 왔고 모든 관공서가 주말에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만 믿고 월요일 다시 경찰서를 찾은 그녀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이미 남편은 영장이 청구되어 금일 중으로 서울교도소로 이감된다는 거였다. 손을 쓰려면 그 전에 썼어야 했다는 어떤 이에 말을 귓가로 흘려 들으며 그녀 앞에서 남편은 수감번호가 달린 죄수복을 입고 두 손이 밧줄에 묶인 채 철조망으로 창을 가린 이송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경찰서 앞 커피숍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녀는 안쪽 테이블에 앉아 벌써 세개째 담배를 피워 물었다. 대학 2학년 이후로 피우지 않던 담배가 너무도 간절했다. 한 대가 다 타들어가도록 그녀 몸에서 니코틴은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이런 경우 백이면 백, 경찰에게 밉보인 것이 원인일 거라 했다. 초범인데다 도주 우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속영장이 떨어진 것이 이례적이며 그 결정이 너무도 빨랐다고 했다. 그녀가 내보인 기자증도 한몫 했을 거라고 분야는 다르지만 같은 기자로 일하고 있는 그녀의 친구는 지적했다. 보통 경찰들은 기자들과 상극이라고. 감추고 싶어하는 일들도 기자가 개입되면 까발려지니 경찰들은 태생적으로 기자들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고. 초기대응에 문제가 있었다고도 했다. 일단 가해자 가족은 무조건 엎드려한야 한다, 경찰이든 형사든 보자마자 납작 엎드려서 울어야 한다, 없던 애도 뱃속에 있는 걸로 하고 최대한 불쌍하게 보여 동정심을 구걸해야 한다고도 했다. 본인이 잘못하고도 파출소까지 가서 행패를 부린 남편에 대한 괘씸죄와 오만하기 짝이 없는 어설픈 기자 아내의 합작품이라고도 했다. 어쨌든 벌어진 일이었고 해결해야만 할 일이었다. 그리고 결국은 아내인 그녀의 몫이었다.


그녀는 태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고 야무지게 입을 다문 채 일어섰다.

브로커로 인하는 지인을 통해 변호사를 소개받았다. 차마 양쪽 집안 어른들에게는 알릴 수 없어 아주버님에게 돈을 빌려 변호사에게 착수금을 건넸다. 과천에 있는 교도소를 찾아 대기번호대로 배정된 방 안에서 창을 사이에 두고 죄수복을 입은 남편을 면회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사식이란 것도 넣어봤고 잘 될거라는 희망의 메세지를 전하려 노력하며 애써 밝게 웃었지만 뒤돌아 나오는 그녀의 마음은 싸늘하게 굳었다.

남편친구이자 학교선배들을 찾아다니며 사정을 얘기하고 탄원서를 받았다. 피해자인 택시 운전사를 그들이 원하는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 합의를 부탁했다. 그들이 원하는 액수를 사무장에게서 전해듣고 그녀로서는 몇달치에 해당하는 만져 보지도 못한 월급에 버금가는 돈을 마련하여 그들에게 전했다. 재판날짜와 담당검사가 배정됐다는 소식에 교대역 고등법원을 난생 처음 찾아가 담당 검사실을 노크하고 사온 음료수와 탄원서를 건네며 선처를 부탁했다. 그 모든 일들을 처리하면서 그녀의 마음은 더욱 더 차갑게 식어갔다.


억울했다. 스물아홉해를 살아오면서 그녀는 법을 어긴 적이 없었다. 소소한 양심의 가책을 받을 만한 일은 했을지언정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준 적도 없었다. 이 모든 일의 책임에 그녀는 없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살아보려 남편을 믿으며 아파트를 처분해주었고, 시댁식구집에 들어가 방 한칸에 살 때도 불평하지 않았으며, 얼마 되지 않는 돈이었지만 적은 월급이나마 형님에게 생활비로 내어 놓았다. 그녀의 딸아이를 돌봐주는 형님에게 고마워 퇴근 후면 조카들의 저녁식사를 차려주었고 집청소를 하고 빨래를 개키고 모두 잠든 밤이면 조용히 컴퓨터를 켜고 그제야 낮에 못 다한 기사를 작성했다. 그런데 왜 그녀에게 이 모든 짐이 지워지는 건지 그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랑만으로 살기에는 지난 사년의 시간이 너무 길었고, 희망을 보고 살기에도 남편의 실수는 그녀에게 너무 가혹했다.

남편은 한달 후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교도소로 남편을 데릴러 가던 날, 아주버님이 몰던 차 뒷좌석에서 남편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하지만 그녀는 마주잡은 남편의 손에서 그 어떤 온기도 느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