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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May 25. 2016

발효의 시간_다시 두번째

후룩쥔장의 창업 그 두번째 이야기 2

육지에서 상권의 중요성을 깨닫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는 경기도에서도 아파트 값이 가장 쌀 정도로 정말 크지 않는 다분히 시골스러운 곳이다.  이곳의 중심상권이란 한 두곳 정도로 갑작스럽게 증가한 아파트 인구가 서울로의 광역버스 노선과 맞물리면서 형성된지 얼마 안된곳이라 생각보다 세가 너무 쎘다. 가게를 한다는 것이 입지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겠지만, 당시 나로서는 제주에서의 첫 가게의 성공(?) 이후 이곳의 환경에 적응이 안되어 있는 상태이기도 했다.


 제주의 경우 어차피 타지였고 큰 욕심을 낸것이 아니었기에 살고 있던 집과 가장 가까운 곳에 가게를 얻었던 것이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제주란 곳이 섬이고 차로 1시간이면 대략 둘러볼 수 있는 곳이 많아 맛을 찾는 소비자라면 장소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런걸 당시 첫 성공에 고무되어 있던 나로서는 역시 음식점은 맛이 있으면 장소가 어디든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어 있다는 강한 신념에 흔들림이 없었으니 이후 겪게 될 행보에 적지 않은 타격의 전초전이었달까?


 무엇보다 중심상권에 가게를 얻지 못했던 건 예산의 부족 때문이었다. 언제나 우리의 발목을 잡는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국은 '돈'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중심상권에서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진 다음 블럭 길가에 있는 가게를 임대하게 되었던 것이다. 중심상권보다 세 차이가 2.5배는 되는 상황에서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다행히도 길 건너 대기업 슈퍼체인이 있어 장보러 나오는 소비자들을 흡수할 수 있고 주차장을 활용할 수 있으리라는 나만의 기대를 안고서..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여 중심상권에서 5분이라 해도 버스가 지나가지 않는 길이라 길가에 사람이 없었고 주로 차를 타고 지나가는 길이라 가게가 제대로 눈에 띄지도 않았다. 길 건너 대형슈퍼는 허구헌날 세일을 하는 것 같음에도 고만고만한 소비자들만이 드나들었으며 그나마도 장을 보고나면 주차한 차를 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상권의 중요성...

여긴 제주도가 아니었다. 1시간 거리를 차를 타고 찾아다니는 손님들도 없었고, 주차할 걱정이 없는 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바쁜 도시인들은 항상 다니는 길로만 다녔고, 왠만한 약속들은 직장과 가까운 서울에서 해결하기 일쑤였으며, 아이들 간식을 책임질 주부들이 몰려있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도 없었다. 한 골목만 들어가도 유동인구가 눈에 띄게 줄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형 프렌차이즈 음식점들의 자극적 입맛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렇게 오픈 세달째가 되니 매출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때마침 봄을 지나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 같아도 어디 시원한 곳에 들어가 에어컨 바람을 쐬며 차가운 냉커피를 마시고 싶지 뜨거운 튀김을 포장한채  달궈진 도로를 지나 집까지 걸어가고 싶진 않았다.


 오픈 이후 소비자들의 반응을 봤기 때문에 남편과 나는 맛에 의문을 갖진 않았다. 분명히 느껴지는 반응이었고 이 좁은 동네에서도 그 정도면 뜨거운 반응이었다. 다만 소비할 수 있는 인구의 한계, 무엇보다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가게입지, 피할수 없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변수였다. 좁은 가게에서 휑하게 비어있는 거리를 보며 남편과 나는 한숨이 늘었다. 무언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서로가 폭발할 것만 같은 위태로운 경계심이 날카롭게 느껴졌다.



 성공의 기쁨을 누리다.


 남편이 칼을 빼들었다. 이 아이템을 들고 서울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서울 몇 곳의 요지를 찍고 상가 부동산 가격을 대략적으로 서치한 후, 발품을 판 며칠 후, 기가막힌 곳을 찾았다며 흥분한 남편이 더위로 벌겋게 상기되어 돌아왔다. 강남 상가를 보고 인터넷 매물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좌절한후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탄 버스안에서 무심코 바라보던 바깥 풍경속으로 8차선 대로변 아파트 상가1층에 붙어있는 작은 종이가 보이더란다.

'상가임대'.

지나가던 곳은 신천역과 잠실역 사이로 그곳은 남편이 대학 때 통학했던 형님, 즉 지금의 내 아주버님의 집이 있던 곳이었으며 당시 불타는 연애를 했던 우리의  상습데이트코스였고 한밤의 산책과 운동, 술자리를 책임졌던 장소로 나에게도 익숙한 곳이었다. 다만 그때와 다른 것은 5층의 낮은 저층 아파트단지 대신 하늘을 찌를듯한 고층 아파트의 빽빽한 숲의 차이?

 행운이었는지 상가임대는 상가주인이 직거래를 위해 붙여놓은 사인으로 부동산을 끼지 않았고, 또한 그즈음 붙기 시작한 권리금 없이 공실상태로 바로 입주가 가능했다. 세는 참 비싸기도 비쌌다. 서울, 그것도 노른자위 동네라 비쌀줄은 알았지만 운영하고 있던 마석가게의 4배까지일줄은 몰랐다. 자리는 욕심이 났지만 끌어들일 돈은 없었다.


 다시금 남편의 능력이 발휘됐다. 그닥 사업수완이 좋은 사람도 아니고 주변에 지인이 많거나 인맥관리가 잘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아마도 그때는 우리부부를 위한 '때'였던 것 같다. 사업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기로 합의가 되었다. 투자자로서 남편의 친구는 먼 곳에서 달려와 고로케 맛을 봤고 사업에 대한 성공을 확신했다. 둘은 본격적으로 법인을 설립하고 신천매장을 안테나샵 삼아 이후 매장을 늘려간다는 계획하에 서둘러 가게를 계약하고 집기를 들였으며 오픈을 했다. 마석가게를 책임져야 했던 나없이 남편은 모든 서류를 챙겼고 집기를 매입했으며 홍보포스터를 제작하고 식자재를 수소문했다. 뜨거운 여름해가 절정을 이루던 8월, 그렇게 신천점은 오픈을 했다.


그리고 오픈과 함께 대박!

가게 앞에 늘어선 손님들의 줄을 보는 순간 우리는 믿을수가 없었다. 아파트 상가의 특성상 여러 매장들이 촘촘하게 입점해 있어 내부통로가 비좁았는데 그 비좁은 통로로 사람들은 줄을 섰고 대로변 쪽 문앞에도 줄을 섰다. 수제고로케는 만들어 튀기기 무섭게 팔려나갔고 미처 작업을 따라갈 수가 없어 문을 연지 1시간도 안돼 재료준비로 인해 다시 문을 닫아야 했다. 기다리던 손님들의 원성과 원망,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시스템에 손님들은 분통을 터트렸고 죽어라 안에서 고로케만 만들던 나로서는 그 원망을 다 들어야만 했다. 모든게 예측하지 못한 주인들의 탓이었으니까..

그렇게 부랴부랴 다시 반죽을 하고 성형을 하고 튀김기에 넣고 준비가 되면 다시 문을 열고 또 팔리면 다음 시간을 기약하며 문을 닫고 또다시 문을 열고...

일주일은 그야말로 전쟁통이 따로 없었다. 정비되지 않은 시스템, 예측되지 못한 수량, 채워넣지 못한 인력들.. 


그러면서도 하루하루 내부는 정리가 되어갔다. 

하루 3번으로 고로케 나오는 시간을 정해 알렸고, 예약을 우선하여 장부에 순서대로 주문을 받았으며, 분업체제를 도입했고, 고로케를 배워보겠다며 찾아온 분들에게 월급여를 지불하고 함께 일하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엄청난 양의 재료준비를 위해 비좁은 신천매장 대신 마석매장을 임식 공장체제로 전환하여 신천매장문을 닫고 난 야밤에 마석에서 엄청난 양의 양파를 까고 다지며 이중의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몸은 너무도 고되어 눈이 빠질것만 같고 어깨는 팔도 들기 힘들 정도로 아팠으며 밥먹을 시간도 없어 살은 쭉쭉 빠졌지만 밀려드는 손님을 맞으며 피곤함은 또다른 뿌듯함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우리의 그해 여름은 불타는 태양만큼이나 뜨겁고 또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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