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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Aug 17. 2016

달인이 되고 싶었던걸까?

어느 음식업자의 개인적 고백

 얼마 전 아는 분이 지방에서 음식점을 겸한 까페를 열게 되어 컨설팅차 잠시 다녀올 일이 있었다.

사실 음식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도 없고, 알려진 요릿집에 가서 비법을 알려달라 매달려 본적도 없는 개인적 역사를 가지고 있다보니 남편 동창의 어찌어찌한 인맥으로 도와주러 간 나의 이력이 나중에 맥주마시며 이야기하는 중에 소위 '야매'라는 단어로 정의되기까지 했다. 뭐 사실이 그렇다보니 부정할 생각도 없었고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수는 없어서 피식 웃고 인정해버렸다. 당신은 어찌하여 이런 야매에게 레시피를 구걸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가슴속에 묻은채.


어찌하다보니 '음식'이란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또 '업(業)'이 되었다. 한 가지를 끈질기게 하지 못하는 지구력 결핍자이기에 지난 4년여동안 운영했다 그만둔 가게만도 다섯개다. 실로 번개와도 같은 빠른 결정과 실행, 포기라고나 할까? 그렇다보니 가게를 여는 일에 나름 노하우가 생겨 인테리어부터 메뉴선정, 전체적인 컨셉에 대해 컨설팅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모두들 묻는 얘기, '잘되는 가게였다면서 왜 계속 할 생각을 안하셨어요?'라는 질문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각각 나름대로의 명확한 이유는 다 있었다. 아이의 학업을 위한 어려운 결정, 혹은 작은 아이의 육아를 위한 결단, 가게가 생각보다 잘 안돼서,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한 결심 등등.

그러한 여러 이유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솔직히 까놓고 얘기해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건물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주에서의 첫 식당에서부터 마석을 거쳐 잠실에 이르기까지 내가 선택했던 로드샵들은 모두 임대료라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권리금이라는 것도 있었고. 아무리 안 바른다해도 다른 업종으로 전환할 때 들어가는 최소한의 인테리어 비용이라는 것은 가게의 분위기뿐만 아니라 메뉴에 따라 변하는 주방기기와 그릇들, 간판, 테이크아웃 용기, 숟가락과 젓가락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비용이었다.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 외에 다달이 들어가야 하는 임대료와 상권에 따른 권리금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장사가 좀 된다해도 손에 모아지는 돈은 별로 없었다. 그나마도 첫 가게 이후로는 초기비용을 최소화할수 있는 단품아이템으로 선택하여 최소비용을 들였음에도 상권에 따른 임대료는 감당하기 버거운 수준으로 가장 큰 부담감으로 이어졌다. 장사가 되는 곳이면 되는 곳대로, 안되는 곳이면 안되는 곳대로 임대료는 자영업자의 목을 죄었다. 건물주라는 가진자들은 더 가지고자, 지금 쥐고 있는 것을 잃지 않으려 임대료가 밀리면 압박을 넣기 시작했다. 새 건물이면 자신의 건물이 더러워질까 노심초사 안달을 했으며, 낡은 건물은 낡은 건물대로 방치된 채 정해진 임대료에만 목을 맸다. 그런 식으로는 아무리 아이템에 대한 희망이 보여도 버틸 수 있는 여유와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건물주가 아니었다는 이유 외에 또 다른 이유 

경영자가 되고 싶었지 달인이 되고 싶은건 아니었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를 즐겨본다.

요리의 장인들이 많이 나와서이기도 하고, 새로운 요리법들이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해서이다.

프로그램에 나오는 요리의 달인들은 하나같이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수십번의 과정을 밟아가며 요리 한그릇을 위해 온 정성을 기울였다. 어찌보면 저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방법들에도 고집스럽게 원칙을 고수했다. 참 대단하다 감탄하면서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끝까지 하지 못했던 건 그들처럼 원칙에 대한 소신이 없어서였을까? 그렇다면 나는 프로그램에서 말하는 '달인'이 되고 싶었던걸까? 의문은 상념이 되어 꼬리를 물었다.

결론은 '아니다'란 지점에서 끝을 본다. 뭐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르고 각자의 방식이 다른 것이니 이것이 옳다 저것이 그르다 말할수는 없다. 그저 나란 사람과 내 스타일상으로는 혼자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그닥 효율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생각이다. 그들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대략 주방에서 시도해 본 바로는 그런 과정들을 통해 얻어진 결과물이 맛적인 면에서도 영양적인 면에서도 분명 차별화된 좋은 맛임에는 틀림없으나 결과적으로 부작용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달인이 되고자 하는 한 사람에게는 개인적으로 과도한 육체적 고통으로 인해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시스템을 만들거나 여러 사람이 분담하거나, 하다못해 과정을 축소해 줄수 있는 도구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달인의 손목과 체력은 남아나지 않을 것이며 반찬 하나, 육수 하나 뽑는 일에 종일 시간을 투자하다보면 가게의 발전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여 특히 요리를 할때는 항상 시간이 부족한 법이다. 음식이라는 것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이라서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양이 분명 정해져있다. 한 주방을 책임지는 일뿐만 아니라 대부분 자신의 가게를 책임지고 있는 경영자로서 세세하게 챙겨야 할 자잘한 일들 또한 외면할 수 없을 터. 좋은 음식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님을 맞고 가게를 단장하고, 직원을 교육시키고 관리하며 회계를 정리해야 하는 자잘한 일들도 좋은 가게를 꾸려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들이기에 어느것 하나 소홀히 할수 없더라는 것이다. 나혼자 다하겠다고 한다면 달인들의 가게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작은 규모의 가게 하나를 꾸리는 것에 만족하며 평생 주방에서 일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이란 분명 육체적 한계가 있고, 육체가 지치면 더이상의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가 힘들어지는 상관관계가 있어 체력과 시간을 잘 안배해야겠다는 것이 나의 지난 경험을 통한 교훈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달인'이 되고 싶지는 않다.

못 쓸 음식을 거짓으로 속여 판다는 것이 아니라, 좋은 식재료로 과하지 않은 양념(개인적으로 미원이나 다시다를 식당하면서 써본적은 없다.)으로 깔끔하게 담아 제공하되,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자신들의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며 즐겁게 일할수 있도록 나누고 키우며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그러려면 역시나 자본의 힘이 필요하고 시스템과 규모가 있어야 한다. 그런 생각들 때문에 요식업을 잠시 떠나있는 지금은 섣불리 나서고 싶은 마음이 없다. 모르기 때문에 용감했고 그래서 부딪쳤고, 그래서 결론은 다시 원점이 되었다. 내가 해 봤기에 더욱더 절실하게 가진것이 없이 뛰어든다는 것에 위험함을 알고 있다.


오늘 우연히 '택시'를 봤다. 황교익씨가 나와서 맛집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 첫번째 조건이 '자기건물이 있더라'는 것이었다. 옆에 앉은 홍신애씨도 첫번째 조건에 수긍했다. 그리고 한가지 더해 '마케팅력'을 꼽았다. 텔레비젼을 보던 나는 아주 격하게 공감했다. 음식이 아무리 좋아도 그걸 알릴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이란 결국은 자본력이며 마케팅이라는 걸 지난 시간을 통해 충분히 겪었다. 그래서 만약 다시 요식업을 한다면 임대료 비싸고, 인건비 비싸고, 사람 구하기 힘든 이 나라에서는 다시 안하고 싶다. 요즘 우리 부부는 동남아 진출을 알아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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