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룩쥔장 Jun 22. 2016

사피엔스 패러독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가져온 후유증...

빌 게이츠가 추천했다.

읽을거리가 떨어져 무척이나 심심하던 차였다.

연달아 읽어제끼던 추리소설들도 시들해지고 있었다.

감성을 후벼파던 국내여성작가들은 요즘 내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감성이 지나쳐 이성까지 마비시키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 어느때보다 내 이성은 좀 더 생생히 살아 존재감을 의식해주길 외치고 있었다.



책이 도착했다.

부피가 꽤나 컸다. 빽빽한 활자들속에 처음 드는 생각은 '과연 내가 이 책을 완독할수 있을까?'란 의구심.

참고문헌을 빼고도 600페이지 분량이다. 실로 방대하다.


첫장을 넘긴다. 

135억년 전부터 시작하는 ' 1부 인지혁명'부터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억이라는 숫자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135억이라는 숫자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고증과 문헌과 숫자가 사방에서 압박해 들어온다. 저절로 스르르 눈이 감긴다.

아주 깊은 잠을 잤다. 단잠을 자고 나니 오기가 생겨 책을 집어든다. 빌이 읽어보라잖아!

어찌어찌 이해하며 흥미를 가지려는 찰나 또 눈이 감긴다. 불면증 있는 분들에겐 실로 명약이 아닐수 없다.

그렇게 또 깊은 잠에 빠진다.

자고 일어나서 또 오기가 생긴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그놈의 경쟁심리가 발동한다.

다시 또 책을 집어들고 잠들기 전 읽었던 곳을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어 찾아낸다.

읽었던 부분을 또 읽는다. 진도가 나갈수록 먼저 읽었던 곳이 가물거려 다시 되돌아가 시작한다.


 그렇게 긴시간을 거쳐 드디어 '2부 농업혁명'으로 접어든다.

학생때 익숙하게 들었던 '농경사회', '정착'등의 단어가 나오면서 솔깃해진다.

뻔히 아는 얘기가 나왔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는 과격한 표현으로 시작되는 농경사회와 그로 인한 정착생활에 대한 작가의 시선 때문이다. 유목민의 떠돌아다니던 삶에서 농업으로 인한 정착생활은 오히려 영양적 불균형을 가져왔으며 사회적 불평등의 시작이 되었고, 생계를 위한 노동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의 시작이었다는 작가의 주장이 흥미롭다.

작가의 새로운 시선일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그때부터 이어진 정착생활을 고수한 덕분에 지금 가진자와 못 가진자의 격차가 너무 심하다. '그땐 그랬고 지금은 이렇다'가 아니라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때부터 책을 대하는 내 자세에 변화가 일어난다.

수면제가 아닌 호기심과 이어지는 내용들에 실로 오래만에 야밤에 독서를 강행한다.

인류의 기원부터 세계적 역사, 종교와 자본주의, 식량과 과학까지..

작가 '유발 하라리'는 그 방대하고 엄청난 기록들을 들추고 연구하고 사색하여 엄청난 글을 이 한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이스라엘 출신의 작가 '유발 하라리'다.

생긴건 약간 골룸 비슷하기도 하고, 책 표지에 실린 전체샷은 언뜻 유희열을 닮은 듯도 하다.

심드렁한 그의 표정은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저절로 이해되어진다.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중세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의 이력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사피엔스'는 철저한 사이언티스트의 관점에서 씌여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어떤 곳인가?

철저한 유대교를 바탕으로 그들의 역사를 합리화시키고, 현재의 세력에 당위성을 부여하여 부를 축적한 나라가 아니던가? 역사적으로 크나큰 종교전쟁의 중심에 있었던 나라이기도 하며 유대인에게 유대교는 뗄레야뗄 수 없는 등식부호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그런 환경속에서 이렇게 거대한 담론을 이처럼 철저하고 쿨하게 객관적으로 서술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그의 배짱과 신념이 아니고서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인류의 기원을 침팬치의 돌연변이로부터 보는 것부터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에서 심각한 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논의였을텐데 그것이 천지를 창조한 하느님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으로 모세의 예언을 따라 현재의 땅을 점령한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얼마나 치욕적일 수도 있는 주장이었을 것인지 감히 상상이 안 된다. 물론 이스라엘 국민들이라고 해서 모두 하느님의 존재를 믿고 과학을 멀리하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책을 읽을수록 뻔히 알고 있었던 일들임에도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낱알들이 모여 온전한 한 연결고리를 만들어낸다. 학교때 배웠던 지리,세계사,사회,과학의 개별과목들이 '역사'라는 거대한 연결고리가 되어 흘러간다.

따로 떨어져 있는 듯해 나와는 무관해 보였던, 그래서 이 학문을 왜 배워야 하고 왜 암기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반항심 많은 여학생은 다른 종자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사피엔스'의 하나로서 그 거대한 흐름속에 아주 작은 먼지가 되어 흘러흘러가고 있었음을 어른이 된 현재에 이 책을 통해 이해하게 된다.


 반항심 많던, 하지만 크게 사고도 치지 않았던 생각많았던 여고생은 대학생이 되어 경영학과에 입학한다.

'경제학원론', '기업윤리','회계관리',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라는 복잡한 과목들 앞에서 좌절한다.

시험때마다 짓눌러오는 숫자들과 알수 없는 이론들에 나가떨어져 2년만에 휴학을 한다.

'과가 나와는 맞지 않는것 같다'는 이유로..

물론 사회에서 대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복되야 했던 팍팍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복학하여 학교를 마치게 되지만, 진정한 자본주의의 대한 고민도 그 태생도 경영학도로서 딱히 타 과 학생들보다 더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의 태생과 흐름, 그리고 그로 인한 수많은 변화들, 무엇보다 현재를 사는 지금의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통렬하게 이해하게 된다.

이전 역사를 통해 본 사피엔스들의 종교전쟁은 거대한 흐름 속에서 보자면, 한낱 지푸라기처럼 어리석은 핑겟거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세계 어느 곳에서는 종교의 차이라는 이름으로 학살이 자행되고 폭력이 합리화되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를 사는 우리에겐 이 자본주의가 종교며 현실이고 목숨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 아무리 그 앞에서 초연해지고 싶어도 초연해질 수 없는 '생활'이란 손아귀의 힘. 그 힘 앞에서 작아지고 자유롭지 못한 우리에게 종교란 '자본주의니즘'이다.


 거대한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짚어 저자는 미래까지 예측한다.

'4부 과학혁명'의 마지막 20장에서는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을 예언한다.

실로 놀라운 주장은 우리 사피엔스라는 동물의 종은 결국 멸망할 것이며 사이보그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것.

허걱할 일이다. 영화를 통해 숱하게 제기돼 왔던 사이보그의 시대라니.. 그것이 영화적 상상력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며 잘난척하는 우리 인간들은 점점 사라질 것이라니...

그런데 그 예측이 지난 사피엔스의 출현부터 100억년이 넘는 시간동안을 훑어오면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흐름이란 것에 반박할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충격을 안고 책을 덮은 이후 내 생활에 이상한 변화가 시작됐다.


이름하여 '사피엔스 패러독스'. (내가 붙인 이름이다.)


 병과도 같은 이 이름의 증상은 몇 가지가 있는데 일단은 매사 의욕이 없어진다는 것.

방대한 거시적 관점에서 인류를 조명해 보고 난 후 내 생활이 마치 개미처럼 작게 느껴진다는 것.

뭐랄까? 아주 먼 우주 어느 한 곳에서 인공위성을 통해 지구를 내려다봤을때 점만도 못한 내 존재에 대해 스스로 무감각해진다는 것.

그리하여 내가 하는 움직임, 내가 하는 생각,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무관심해진다는 것.

그리하여 사는 것 자체가 심드렁해지고 무기력해진다는 것.

가령 사회에서 어이없는 살인이 일어났다는 뉴스에도 

'변종 사피엔스가 한 짓이군. 별것도 없는 동물이 그럴 수도 있지.'

가족과의 일상적 부딪침 속에서도

'사피엔스일 뿐인데 가족이라고 뭐 다르겠어? 다른 동물처럼 각자의 삶을 사는거지.'

목적의식과 목표를 세워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이들의 말에도

'어차피 유한한 사피엔스의 삶에서 뭐시 그리 중한디? 현재를 사는게 중요한거지. 그래봐야 사피엔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거지. 한번 밟히면 그대로 죽어버리는 개미들처럼 자연의 변화속에 멸종해버릴 종일뿐.'


그럼으로써 회의론자가 된다는 것.

'무얼 더 가지려 할까? 어차피 사피엔스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었어. 다만 불을 쓸 줄 알고 생각을 할 줄 알며 도구를 쓸줄 아는, 그럼으로써 다른 종들을 지배할 수 있는 아주 약간의 재능이 있었던 건방진 동물일뿐이었지.

지들끼리 좀더 편하고 안전하자고 만들어놓은 이 사회, 제도에 발이 묶여 무얼 그리 아둥바둥할까? 잘난척 해봐야 우리가 더럽힌 이 자연과 공해속에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어리석인 개미들인데..'

 그러고보니 세상의 이치가 이해되고 석가모니가 이해된다. 한낱 미물일 뿐인 인간이기에 죽어 없어질 몸뚱아리이기에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해야 한다는 걸.. 이렇게 작은 미물임에도 생각이란 걸 하고 번민이란 걸 하기에 그 작은 마음이 온 우주라고 하신 마음을..


 신은 없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일도 없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고 우리는 확률적으로 사고의 위험을 안고 살 뿐이다. 어쩌다 일어난 나쁜일, 나를 쳐지게 했던 나쁜 기분과 느낌. 그 모든건 내가 그런 운명을 타고나서도 내가 재수가 없어서도 아니다. 요행히 나를 비켜간 나쁜 일, 바라지 않았으나 내게 일어난 기분 좋은 일. 그 모든 것 또한 내가 특별히 재수가 좋아서도, 천운을 타고나서도 아니다.

그냥 우린 그렇게 '살고 있을 뿐이다'. 살다보니 그런일, 저런일이 생길 확률이 높아졌을 뿐이다.

그냥 우린 유전자와 환경적으로 잘생기고 못생긴 얼굴을 갖고 있을 뿐이며, 남다른 기술을 가질수도, 남보다 더많은 학구열을 가질수도 있게끔 태어난 것 뿐이다.

그래서 지금 현재를 사는 우리 사피엔스는 가장 쿨한 모습으로 지금 현재를 즐기면 되는거다.





작가의 이전글 미칠듯이 깨어나는 연애세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