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완벽한 비서를 통해 본 헤드헌터의 세계
요즘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에 푹 빠져 있어요.
잠깐 맛만 보고 말지 싶었던 드라마는 그러나 중력처럼 잡아끄는 마성의 힘이라도 있는건지 1편부터 6편까지 쉼없이 몰아보는 새 어느새 창밖의 해는 지고 있었고, 현실세계에선 도저히 있을것 같지 않은 선남선녀의 눈부신 비주얼을 보는 재미와 함께 둘의 알콩달콩한 사랑을 응원하며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가시지 않았는데요. 무엇보다 극중 여주의 직업이 '헤드헌터'였기에 업계의 익숙한 용어와 낯설지 않은 환경과 에피소드들을 떠올리며 십년도 넘은 저의 예전 기억을 소환해 보게 되었습니다.
기자에서 헤드헌터로 스카웃되다.
지금은 식당주인으로 어느덧 10년도 훌쩍 넘었지만, 저의 지난 직업에선 헤드헌터로 일하던 짧지 않은 시간이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이었으니 20년도 더 전의 일이네요. 그때도 '헤드헌터'라는 직업은 흔치 않았지만 한편으론 지금처럼 채용사이트가 막 나오기 시작했던 때라 오히려 채용의 한 분야로서 그 쓰임과 가능성이 좀더 분명했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잠시 주간지 기자로 일하며 우연히 '헤드헌팅' 업계를 취재하게 되었고 당시 유명 헤드헌터들은 거의 만나봤던 것 같습니다. 취재의 목적이었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헤드헌터라는 직업은 제게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당시 인터뷰했던 헤드헌터 중 한 분의 제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짧은 인터뷰 시간내내 꽤나 교감이 되었던 분이었는데 경험없는 제게 헤드헌터로의 자질이 있어 보인다며 스카웃 제의를 하셨고 저는 고민끝에 그렇게 업계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중간에 잠시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던 기간을 제외하면 한 7,8년 정도 헤드헌터로 일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대다수의 헤드헌팅 업체들이 그렇게 조직적이진 않았습니다. 처음에 후보자를 물색하는 '리서쳐'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나름 좀 조직이 큰 경우이고 대부분은 처음부터 '헤드헌터'나 '컨설턴트'라는 이름으로 바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우도 일반회사의 직급처럼 체계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입사와 동시에 주어진 프로젝트 성사에 대한 중압감이 많았습니다. 보험업계나 부동산 중개인처럼 각각의 개별사업자와 다르지 않아 성공수수료에 대한 인센티브를 받는 식으로 보수는 책정되어 있었으니까요.
맨땅에 헤딩하다.
헤드헌터의 자질이 특별히 정해져 있거나 자격증이 있는게 아니라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이걸 어떻게 할까 싶었지만 처음에는 회사에서 고객사도 좀 나눠주고 후보자의 인재풀도 공유해주고 하면서 조금씩 일하는 방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초기 급여조건이 기본급 100만원에 성공 수수료 30%였는데 그것도 3개월의 유예기간이 있었습니다. 3개월동안 성사율이 하나도 없으면 기본급을 삭감하거나 회사를 그만두는 조건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생짜 신입으로선 사실 가혹한 조건이었지만 전 수락했고 뭘 모르는 얘들이 더 무섭다고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가리지 않고 일했습니다.
선배들이 마다하는 작은 신입기업들의 채용의뢰도 기꺼이 받았고 기술직 대리급의 적은 연봉 포지션부터 시작했습니다. 차부장이나 본부장 급의 큰 프로젝트는 사실 신입에게 주어지지도 않았고 주어졌다 할지라도 제가 감당하기 힘들었으니까요. 업계의 성공수수료가 연봉의 15~30% 사이였으니 연봉이 적으면 수수료도 적었지만 그만큼 성공확률을 높이면 길은 보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입사한지 얼마 안 되어 여러 건의 채용을 성사시켰고 이후로도 달마다 기복은 있었지만 꾸준히 성과를 내며 나름 헤드헌터로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채용전문가란 타이틀이 무색하게 업계의 이직이 만연한 곳이라 입사시 선배들은 1년도 안 되어 다른 서치펌으로 이직하거나 창업을 하여 회사를 떠났고 1년만에 저는 팀장 타이틀을 달게 되었습니다.
팀장이라고 해봐야 공동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팀이 있는 게 아닌 여전히 업무는 각자 알아서 하는 시스템이었지만, 당시 몸담고 있던 회사가 온라인 기반의 채용 시스템을 주력으로 운영하던 곳이어서 다른 업무들도 조금씩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온라인 채용상담에 글을 정기적으로 기고하거나, 채용박람회에 컨설턴트로 참여하거나, 대학 취업상담에 상담사로 나간다거나 시스템 개편회의에 참여한다거나 하는 소소한 일들이 주어졌고 한가지 일에 쉽게 싫증내는 제 성격상 그러한 경험들은 선배들이 떠난 첫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년 일하다 아무래도 이 직업을 계속하려면 영어가 좀더 필요할 것 같아 회사를 그만두고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습니다. 다녀온 후 다른 몇몇 서치펌을 전전했고 그때는 나름 경력이 생겨 좀더 좋은 조건을 내걸고 이직을 했습니다. 성공 수수료를 높혔고 업무 환경도 보다 자유로웠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회의 참석의 의무가 있을 뿐 출퇴근에 대한 제약도 없었고 조직에서 요구하는 업무도 없었습니다. 다만 그만큼 결과에 대한 책임의식이 필요했고 조직의 도움을 기대할 수도 없어 헤드헌터 개개인의 프로의식이 필요했습니다. 짧았지만 저는 그 직장에서 나름 좋은 성과를 내었고 태생적으로 누구의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 자유로운 영혼답게 편하게 일했습니다. 함께 일하는 이들은 그저 사무실을 함께쓰는 존재였을 뿐 서로에 대해 어떤 간섭도, 도움도 없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있는 회의에선 각자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공유하고 적합한 후보자를 추천하거나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하기도 했지만 성사된 적은 거의 없었으며 그저 각자의 프로젝트를 각자의 방식으로 진행하고 책임질 뿐이었습니다. 대표는 그런 이들을 조용히 서포트하고 보수에 대한 배분을 하며 공동의 사무실을 운영하는 역할을 할 뿐이었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의 조용한 행보는 꽤나 안락하고 현명한 처신이었다 생각도 듭니다.
기업교육 분야로 이직하다.
헤드헌터라는 직업이 나쁘진 않았지만 수입의 불확실성과 갈수록 치열해지는 온라인과의 DB싸움, 불투명한 장래와 전문성의 불확신등으로 고민하다 전 기업교육 업계로 과감히 이직했습니다.
채용이 기업인사의 시작이라면 그 채용한 인재를 개발하고 교육하는 분야는 기업에 필요한 인재의 일탈을 막기위한 다음 단계라고 생각됐기 때문입니다. 외부에서 인사를 아웃소싱하는 업무를 해왔지만 아마도 제 내부에서는 적절한 인재란 오히려 기업 내부에서 키우는 것이 옳다는 소신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업 내부에서 인재를 개발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마침 적합한 포지션을 찾고 있던 기업교육 업체가 있어 관련업계 경력자가 아니라는 핸디캡을 뚫고 어렵게 이직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매월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 커리어에 따른 승진체계, 직원들에 투자되는 여러 복지정책등 헤드헌팅 업계에선 받지 못했던 꿈에 그리던 헤택들이 주어졌지만 마냥 행복할 줄 알았던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금새 깨달았습니다.
경직된 조직생활의 적응, 맞지 않는 기업문화, 제 잇속만 차리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척하는 팀원들..
어찌보면 냉정한 정글에서 뛰놀던 야생마로서의 생활이 익숙했던 제겐 정해진 시간에 맞춰 정해진 움직임대로 따라야 하는 온실 속 생활이 갑갑하게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일을 열심히 안건 안하건 주어지는 댓가에는 변함이 없다는 현실이 무력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둡게만 보였던 헤드헌팅의 세계가 생각보다 그리 어둡지만은 않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 불확실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작가가 나름 자료조사를 잘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가지 사례들도 실질적으로 있었던 일들이었고 조직 내부의 소소한 문제들도 잘 녹여낸 것 같더라구요.
극중 한지민의 드라마 초반 모습중 어질러진 모습들_사무실 들어서자마자 구두를 벗어버리고 던져 놓는다거나, 서류들이 어지럽게 쌓여있어 찾을 때마다 온통 뒤집어야 하는_은 제가 아는 분 중에도 몇분이나 같은 모습이 있어 낯설지 않았습니다.
또한 다루는 대상이 물건이나 컨텐츠가 아닌 사람이나 보니 컨트롤이 안된다는 점과 경쟁하듯 자기 진행 프로젝트에 추천하려는 상황 등은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씁쓸하게 다가왔습니다. 보통 프로젝트가 성사되어 후보자가 채용되면 업체에선 인보이스를 발행하고(성공수수료에 대한 계산서) 수수료를 받으면 3개월의 보증기간을 줍니다. 그 3개월 안에 후보자가 퇴사하면 받은 수수료를 돌려주거나 신규인력을 무상으로 채워넣겠다는 조건인데요. 나의 지갑을 두둑하게 해 주었던 그 예쁘던 후보자가 3개월안에 전화를 걸어올 땐 거의 중도퇴사인 경우가 많아 벨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던 기억도 나네요.
보다 구체적인 내용들은 다음에 기회될때 또 글로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