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혹의 낭만'이라 해두자.
최근 인터넷 포탈에서 제주이민에 대한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글과 사진, 기사들을 많이 봤다.
물론 그전에도 많이 접했던 글들이었으나 최근에는 그 정도가 더 빈번하여 이미 제주이민을 경험해 본 나로서도 혹하는 심정으로 기사를 클릭하게 된다.
나로서는 지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2년동안 제주에 머문 경험이 있다.
연고가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고 굉장한 제주사랑에 빠져서도 아니었다. 제주생활에 대한 부푼 기대를 안고 감행한 것 또한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남편의 사업이 그곳에서 다시 시작되었고 그전 2년 동안을 주말도 아닌 월말부부로 살다보니 세살된 막내에게 너무 못할 짓인것 같아 고민 끝에 이주를 했었다. 친구들과 떨어지기 싫다며, 아니 떨어질수 없다며 울고 불고 입을 꽉 다문채 원망의 눈빛만 쏘아대던 중2 되는 사춘기 큰 딸을 데리고서 말이다.
한겨울 1월의 어느날, 경기도의 이삿짐을 싸서 보내놓고 가방 하나 달랑 든채 인천부두로 가 제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세월호 사건이 나기 2년 전, 우리가 오른 배는 세월호는 아니었지만 그로부터 2년 후 그 배에 타고 있었을 어느 이주민 가족의 일이 남같지 않은 이유다. 기름냄새 자욱하고 파도에 흔들리던 배에서 선잠을 잔 후 다음날 아침 도착한 제주의 하늘은 잔뜩 찌푸려있었다. 악명 높은 제주의 겨울이었다.
따뜻한 남쪽나라를 기대했던 나에게 그 겨울 제주는 혹독했다. 년세로 얻어놓은 제주시 조천읍의 2층 단독주택은 한동안 비어진채 관리가 되지 않아 냉기가 가득했고,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한겨울 추위에 결로현상이 심각했다. 100평은 족히 되었을 앞마당은 잔디가 푸릇했던 계절에 찍힌 인터넷 사진으로 봤던 모습과는 달리 죽은 잔디위에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있었다. 귤나무가 반기고 따뜻한 바람에 이불빨래로 마당을 하얗게 채우리라 생각했던 내 기대와는 달리 좀처럼 하늘은 해를 보여주지 않았다. 중산간의 겨울날씨는 3일에 한번꼴로 눈을 내렸고 한번 내리는 눈은 발목을 넘게 금새 쌓였으며 북쪽 바닷가를 향해 난 주방문을 열면 매서운 바람이 한꺼번에 몰아쳤다. 눈쌓인 아침 문 밖으로 내놓은 쓰레기봉지는 밤새 다녀간 살쾡이의 흔적으로 구멍이 뚫려있었고 순결한 눈 위에 그넘의 발자국이 타박타박 찍혀있었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했던 우리 가족에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건 씻는 문제였다. 아직 막내가 따뜻한 욕실이 필요했던 나이라 전원주택의 욕실은 한기 그 자체였다. 아무리 문을 꽁꽁 닫고 보일러를 세게 틀어 뜨거운 물로 욕조를가득 채워도 금새 욕실에는 한기가 들어찼다. 초기 몇번의 시도 끝에 목욕은 결국 동네 목욕탕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마음을 비웠지만 머리감는 일도 마음의 준비 없이는 힘들 정도였다. 그 모든 것이 1년에 두어달 있는 제주의 혹독한 계절, 겨울에 시작했기 때문이며 아파트 생활과 단독주택의 생활의 차이점에 대비하지 못한 우리의 문제이며,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날씨 차이를 인지하지 못한 무지의 탓이며, 바닷가와 중산간의 현격한 차이를 역시 생각지 못한 남편과 나의 탓임을 부정하진 않겠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다시 제주시내로 두달만에 이사를 했고, 제주시내 한가운데라 할 수 있는 법원근처 신도시 새 아파트에 년세를 주고 다시 아파트 생활을 시작했다. 마냥 뛰어놀 것만 같았던 100여평의 잔디마당에서는 제대로 발도 밟아보지 못한 채 죽어라 1층과 2층 청소를 하고 결로 때문에 창문에 흐르는 물들을 닦아낸 겨울이 지난 후 말이다.
그럴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일단 큰 아이의 학교가 너무 멀었다. 제주의 중학교는 대부분 시내에 몰려있다. 지역이 협소하다 보니 제주시내에 있는 중학교에 거의 다 지원을 할 수 있고 배정은 운에 따른다. 조금 괜찮다고 알려진 학교에 대한 경쟁률이 치열할 수밖에 없고 당락을 결정짓는 건 컴퓨터의 배정 시스템이다.
다행히도 큰아이는 전학생이었다. 신입생 배정이 아닌 전학생이었기에 TO가 있으면 원하는 학교에서 받아줄수가 있었다. 그렇게 들어간 학교는 시내에서도 조금 떨어진 조용하고 한적한 곳으로 시내까지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타야 등하교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보니 노선에 맞춰 집을 구해야했고 그렇게 이사한 새 아파트는 주부인 나에게는 만족스러운 공간이었지만 생각해보면 육지에서의 생활과 크게 다른 것도 없는 생활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2년이란 시간 동안을 제주에서 머물렀다.
제주의 자연은 아름다웠다. 떡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만큼. 정말 아름다웠다.
지루했던 4월의 고사리장마(4월에 2주정도 이어지는 우기로 이 기간에 고사리가 쑥쑥 자란다하여 제주도민들은 그렇게 부른다.)가 지나고 만발한 왕벚꽃과 함께 진정한 제주의 날씨가 시작되었다. 한껏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도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도남동 체육관을 중심으로 뒤덮이던 왕벚꽃과 제주대 벚꽃길은 사십해동안 봐왔던 벚꽃중에 감히 최고였다. 굵은 나무기둥, 그 풍성한 꽃, 건강함을 마음껏 자랑하던 제주 왕벚꽃은 비리비리한 여의도 벚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성산에 펼쳐진 유채꽃도 아름다웠고 바다는 코발트빛으로 반짝였다. 카메라를 어디에 대고 눌러도 사진 전문가 못지 않은 앵글이 나왔다. 주말마다 아이를 데리고 바닷가를 찾았고 북적이는 인파 따위는 걱정할 필요없이 한적한 곳에서 소박한 물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자연이 주는 선물은 실로 위대했다.
자연은 아름다웠지만 사람은 아름답지 않았다.
사.는.건. 어.디.나. 똑.같.았.다.
현지인들은 무뚝뚝했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기엔 시내란 공간의 어려움이 있었고 또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내 성향의 한계도 있었다. 제주로 이주한 이주민들은 이전 미국에서 만났던 이민자들과 신기하게도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까페를 통해 주고받던 따뜻한 위로와 글들은 오프모임에서 환상들이 많이 깨졌고 이후 여러 경로를 통해 경험한 바로는 어디든 만연한 편파주의가 너무 심했다.
제주 2년차부터 집 근처에서 까페겸 레스토랑을 했는데 그때 가게를 찾아왔던 이주까페 사람들의 대화를 멀리서 듣고 아연했다. 까페글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던 한없이 따뜻했던 이들조차 둘 이상만 모이면 누구누구를 도마위에 올려놓고 험담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좁은 공간, 서로 다른 성향이 가져온 다름에 대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주이민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 '육지에서의 인간관계의 피곤함'이 제주라고 어찌 다를 것인가. 사람이란 함께 모이면 분명 의견차이가 생기기 마련이고 기대가 있으면 실망이 있게 마련이고 거래가 있으면 그로 인한 파장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사람사는 일이니 그것이 육지든 섬이든 어찌 다를까? 어찌보면 오히려 육지라는 공간은 더 많은 사람들과 그로 인해 나와 성향이 맞는 사람을 찾을 확률이 더 큰 반면, 섬이라는 공간은 한정된 사람들 속 그 안에서 같은 성향을 찾기 힘든 수학적 상관관계가 있음을 처음부터 간과한 이들의 책임이겠지....
어디든 사람사는 건 다 똑같듯이 역시나 사는 문제에선 '무얼하여 먹고 살것인가'의 문제도 중요했다.
제주라는 섬은 물론 여타 섬들 중에서 큰 섬임에는 틀림없었지만 섬의 한계는 있었다. 물건과 사람이 들고 나기 위해서는 비행기나 배편밖에 없는 곳, 날씨가 궂으면 발이 묶이고 마는 곳이며 교통비가 비싸다고 혼자 헤엄쳐 육지로 갈수 없는 곳이다. 물가가 비쌀수밖에 없는 이유. 물류비가 붙어 택배에도 항상 도서주민 별도라는 타이틀을 확인해야 하는 곳이다. 작은 인구에 대규모 제조 공장이 없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직업군이 한정되어 있는 곳이다. 관광업 아니면 농수산물 유통, 농사, 아니면 공무원직군이다. 예전부터 제주에서 최고로 치는 직업이 공무원인 이유다. 이방인으로서 이 직군에 편입한다는 것이 처음에 참 쉽지 않다. 그냥 다른 나라라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제주이주'가 아니라 '제주이민'이다. '말이 통하는 외국'이라지만 그마저도 말이 안 통할 때도 많다.
물론 최근에 다음이나 넥슨등 IT 기업들이 제주로 본사나 지사를 오픈하면서 많은 인력들이 이주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보면 거의 핵심인력들은 본사에서 파견하고 제주현지에서 모집하는 인력들은 단순업종으로 임금에서 본사직원들과 엄청난 차이가 난다. 본사를 이전할 때 도에서 받은 혜택은 어마어마함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현지인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미비하다는 것, 제주도민으로서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다면 공무원도 아닌, 본사에서 파견된 직원도 아닌 나머지 이주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최근 5년새에 가장 많이 차지한 것이 '게스트하우스'와 '까페'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도 처음 전원주택을 빌릴땐 게스트하우스 오픈을 염두에 뒀었고 이후 까페겸 레스토랑도 오픈하여 운영해 본 바로는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더 심하게 다가오는 것이 '자금의 압박'이었다. 결국은 돈, 기승전 돈이다.
물론 월정리 바닷가 같은데 가보면 한낮에도 몸빼바지 입고 기타 띵까띵까 튕기며 한가롭게 여유를 부리고 있는 히피청춘들이 있었다. 요즘 기사에서 얘기하는 '다운사이징족들'이다. 육지에서의 치열한 경쟁을 던지고 여유를 찾아 먹고자고 입는 것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젊은 청춘들이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그들이 초기 제주이민자들의 환경을 만들었다. 월정리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아름다운 작은 해변을 널리 알린건 그런 그들이 만든 작은 까페였다. 찾는이 없는 한적한 바닷가, 그 고즈넉한 해변가에 허름했던 까페. 바다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가로로 긴 창을 낸 담벼락이 인상적이었던 그곳은 아는 이들만 찾는 아지트같은 곳이었다. 그 까페가 유명해질수록 해변은 붐비기 시작했고 근처에 집들은 까페로 개조되기 시작했고, 아무것도 없던 땅은 금싸라기라도 묻어둔 것처럼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한적하고 고즈넉한 그 분위기에 찾던 아름다운 해변가는 어느새 밀려는 렌트카로 주차장으로 변했으며 초기 그 해변을 알리던 소박했지만 느낌있었던 그 까페는 어느샌가 주변에 새로 지은 모던하고 쾌적하고 눈에 띄는 건축물들에 가려져 표시도 나지 않게 되었다.
월정리 해변뿐만이 아니었다. 해안도로 어디든 숙박시설과 까페, 식당들이 들어섰다. 바다가 없어도 사람이 찾지 않는다는 중산간도 옛말이었다. 어디든 까페와 펜션, 게하가 들어섰고 언제나 공사중이었으며 누가누가 더 크게, 더 럭셔리하게 짓나 내기가 시작되었다. 자본을 등에 업은 대기업 프랜차이즈도 진출 안한 곳이 없었다. 어느샌가 제주는 그냥 동해안이 되기 시작했다.
돈없이 아이디어와 개성, 소박함만으로 미래를 꿈꾸기에 제주는 더이상 그 힘을 잃었다. 가진 돈을 다 털어 인테리어를 하고 SNS를 통해 홍보를 하고 꾸준히 성실하게 가게나 게하를 꾸려간다고 해도 2년도 지나지 않아 바로 옆에 더 많은 자본을 투자한 누군가가 들어와 돈으로 인테리어를 바르고 새로운 메뉴와 아이템을 들고 대대적인 홍보를 시작한다. 그러면 소박하게 시작한 누군가는 투자한 돈도 건지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 '젠트리피케이션'.. 육지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이 현상이 제주에서도 문제가 되기 시작할 것이다. 이미 땅값이나 임대료가 근거없이 너무 올랐다. 섬이라는 한계가 분명 있는데 그럼에도 현재의 부동산 과열 현상은 조만간 누군가는 그 폭탄을 짊어지고 자폭하게 될 것이라 어두운 전망을 해본다.
2년이란 시간이 충분하여 제주생활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말하고 싶은게 아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동안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에 대해 말해보자면 더 많은 지면이 필요하여 이곳에서 다 풀어낼수도 없다. 제주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제주는 지금도 여전히 그리운 아름다운 곳임에도 틀림없다.
다만, 최근의 낭만적 기사들을 보면서 문득 좀더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선 간과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제주한달살기', '저녁이 있는 제주의 삶'들의 이름을 단 기사들을 보면서 어디든 밝은 면이 있다면 어두운 면이 있는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그런 면을 직시하는 것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염치없는 오지랖에서다.
제주에서의 생활은 개인적으로는 나의 성향을 내가 파악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은 경험이기도 했다. 제주히피들(내 개인적 명칭)의 삶을 보면서 참 부러웠다. 현실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자유로워보이는 젊은이들, 그들의 생각과 모습이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와 어우러져 눈부시게 빛나보였다. 그런데 동경한다해서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는 사실 다른 문제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연예인들의 생활을 동경한다해서 다 연예인이 될수는 없지 않은가? 내 성향이 분명 있는데 그곳에 가면 자유가 있다해서 거기에 간들 자유가 내게 날아들어 품에 안기지는 않는단 말이다. 같은 유럽배낭여행을 가도 누구는 이만큼의 깨달음을 얻어오고, 누구는 이만큼의 외국친구들의 연락처를 얻어오고, 누구는 그곳에서 찍은 사진과 사색의 글들로 책을 내어 인세를 두둑하게 챙겨올순 있겠지만 그게 꼭 내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분명 내가 있는 이곳에서 누군가는 더 많은 곳을 돌아보고, 누군가는 가까이 있는 가족들과 후회없는 사랑을 더 많이 하고, 누군가는 사색의 시간으로 삼아 더 열심히 글을 쓰고, 누군가는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들과 더 많은 교류를 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의 섬은 아름답고 그만큼 낭만적이지만 또 그만큼 치명적으로 현실적일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