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외쿡살이

영국에서 만난 그녀 '요꼬'

그해 여름, 영국 런던의 추억

by 후룩쥔장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여름이 저물고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던 9월의 어느 날이었다.

한국으로 귀국하는 룸메이트의 귀국일자가 채 2주도 남지 않았던 때, 평소 그녀와 친분이 두터웠던 나의 룸메이트는 나를 위해 그녀와의 작별인사 때 나의 동행을 제안했다.


나의 룸메이트가 그녀를 알게 된 계기는 실로 우연이었다. 런던에서 알게 된 그녀의 동갑내기 절친이 영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필요한 전구소켓을 사기 위해 우리나라로 따지면 철물점 같은 곳에 가서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한다. 그때 옆에서 함께 물건을 고르던 일본인 아줌마가 이야기를 걸어왔고, 그렇게 그녀와 그 일본인 아줌마는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이후 임시로 있었던 홈스테이에서 집을 옮겨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던 룸메이트의 친구는 그 일본인 아줌마 친구의 집을 소개받아 9개월여 동안 편안하고 안락하게 생활한 후 귀국날짜가 다 되어 귀국을 하였던 것이고, 잠시의 공백기간을 거쳐 내가 그분의 집에서 지내기로 했던 것이다.

좀 복잡해 보이지만, 두명의 일본인 아줌마를 알게 된 내 룸메이트의 친구 덕분에 나에게까지 인연이 닿았다는 얘기 되시겠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그 날, 나의 룸메이트의 귀국 송별회를 겸한 자리인 차이니스 부페에서 우리 셋은 만남을 가졌다. 평소 룸메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나로서는 지극히도 호기심과 함께 관심의 눈길을 뗄수 없었는데 그때 나와 첫만남을 가졌던, 그리고 이후 호스트 마더였던 그녀의 이름은 ‘요꼬'상.

나이는 오십대 초반 정도로 중간 키에 약간 마른 몸을 한, 검정머리가 유난히도 더 검게 보이는 단발머리의 평범한 우리네 엄마 같은 이였다. 첫 만남에서 당시 이사를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의 나로서는 호스트였던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웬일인지 그날따라 더욱 영어가 귀에 들어오지 않을 뿐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말조차도 횡설수설 두서가 없었다. 못 알아듣겠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음은 그러한 배경에서 오는 절박함 때문이었기도 했겠으나 무엇보다도 그 당시 나의 곁에서 보호자처럼 든든한 버팀목을 해주었던 나의 룸메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그녀, 요꼬상이 말하는 철저한 일본식 영어에 대한 생소함 떄문이었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거의 중간 쉼표가 없이 줄줄이 읊어대는 그녀의 발음은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곳 현지에서 30년 산 사람의 말투같지 않은 철저한 일본식 발음 그대로였다. 예를 들면 ‘at the moment’의 경우 그녀의 발음은 ‘앗더 모오메엔트으’하는 식으로 가장 흔하게 쓰는 "Isn’t it?’의 경우에서도 "이즈으네에?" 모 이런식인 거다.

그러니 가뜩이나 영어로 풀이 죽어 있었던 영국생활의 고비 3개월째 만난 그녀의 발음은 나에게 가혹한 숙제였고 이후 그녀의 집으로 이사한 후에도 그녀의 말을 알아듣기까지는 2주 정도의 수련과정이 필요했던 듯하다. 그것도 완벽하게가 아닌, 적당하게.


첫 만남에서 우리는 그녀가 사준 밥을 거하게 먹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이층버스 이층 맨 앞자리에서 항상 그렇듯 다리 긴 이네들과의 신체구조가 다른 이유로 인해 바닥에 닿지 않는 발을 까딱거리며 도착한 그녀의 집은 버스정류장에 내려서도 족히 7-8분은 걸어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작고 아담한 동네로 나즈막한 집들이 하늘의 구름과 벗삼아 모여있는 참으로 정겨운 동네였다. 그녀의 딸이 처녀때까지 썼던 이층방은 작은 침대와 작은 옷장, 앉은뱅이 책상, 앙증맞은 창문과 벽에 걸린 작은 그림액자들이 안락함을 더해주는 사랑스런 방이었고 그렇게 난 그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전의 집은 룸메이트와 함께 써야 했던 트윈룸이었다면 이곳은 혼자 아무짓(?)이라도 할 수 있는 싱글룸.

무엇보다도 내가 매혹되었던 것은 한적하면서도 정겨운 동네였다. 이곳이라면 조용히 틀어박혀 책을 읽고 사색을 하고 글을 쓰고 그렇게 남은 영국생활을 마감하며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추억의 시간이 가능할 것 같았다. 학교로 가는 버스의 정류장이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고,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에는 단 한대의 버스만이 그것도 8시가 넘어서는 한시간에 두대밖에 없다는, 그마저도 11시가 넘으면 완전히 끊겨버리는 교통상의 불편함이 존재했지만, 그러하기에 고즈넉한 그곳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하고 있던 알바의 시간대를 변경하면서까지 난 그곳에 틀어박히는 생활을 시작했다.


이사하고 2주가 지난 어느날..

내 나이 또래의 딸을 둔 그녀가 곧 할머니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틈만 나면 그녀의 손자가 나왔느냐고 묻곤 했다. 그리고 기다리던 그녀의 손자가 세상에 나왔다는 소식을 접한 그날. 나는 축배의 의미로 지난번 취기에 정신 못 차리고 세인즈버리에 들러 사왔던 샤도네이 와이트 와인을 꺼내고 냉장고에 대충 있던 야채로 볶음밥을 만들어 작은파티를 준비했다.

그녀와 나만의 파티. 공사가 채 끝나지 않아 어수선한 주방 한 켠에 의자를 놓고 창 밖으로 보이는 가든의 석양을 배경삼아 그녀와 나는 와인을 따고 건배를 했다.그 동안 적응이 덜 되어 어색했던 관계를 조금씩 회복해 가며 그녀와 그녀의 딸, 몇 년전에 세상을 등진 그녀의 남편, 그리고 지난해에 갑작스럽게 그녀 곁을 떠난 남친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재키. 너의 이상형은 어떤 사람이니?”


“저요? 글쎄.. 예전에 어렸을 때는 누구나처럼 키 크고 잘 생기고 돈 많고. 하하. 모 똑같았던 것 같은데요. 지금은 음.. 모랄까.. 없는 것 같아요."


“에이. 그런게 어딨어? 그래도 생각해 둔 사람이 있을 거 아냐?”


“굳이 말하자면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 그거면 될 것 같은데..”


“음.. 편안함이라.. 아주 중요한 거지. 그래도 외모는 전혀 안봐?”


"글쎄요. 지금은 별로 그건 중요한 것 같지가 않은데요?”


“그럼 머리 벗겨져도 괜찮아? 짧은 다리는?"


“아이고. 대머리는 좀 그러네요. 다리 짧은거야 저도 짧으니까 괜찮지만. 하하. 어쩄든 느낌이 중요하잖아요. 러브 이즈 필링~”


“그렇지. 느낌은 중요하지.”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그래. 뭔데?”


“남자친구 없으세요?”


“음.. 있었지. 작년에 죽었어.”


“이런, 죄송해요. 몰랐네요. 괜한 걸 여쭤봤네요."


“아니야. 작년에 그가 갑자기 죽었을 때 난 정말 충격이었어.

아.물론 이 이야기는 내 딸도 알고있는 이야기야.

세상 살면서 정말 나를 이해해주는 친구가 몇이나 될 것 같니? 한 명이라도 두기 힘들겠지?

그 사람은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으면서 나의 연인이었으며 또 보호자였기도 했지."


“음.. 좋네요. 베스트 프렌드라,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아주 오래전이었지.

그 사람은 나의 첫번째 피앙새였어.

그 사람과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이후 선택한 사람인 남편 역시 그와 똑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지.

마르고 키크고 자상하고. 사람은 결국 항상 같은 스타일에 끌리게 되는 것 같아.

이후 난 남편과 이곳 영국으로 이민을 왔고, 그 사람은 나의 결혼을 믿을수 없어했어.

결국은 자기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면서 이곳 영국까지 왔었던 거지.

그때 나는 만삭의 몸이었고 병원에서 산고로 헤매고 있을 때 두 남자는 병원밖에서 밤새 술을 마시며 그렇게 친구가 되었지. 이후 우리 셋은 정말 잘 지냈어."


“음.. 영화같다.”


“일본이란 사회를 알고 있니?

남의 시선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신경써야 하는 곳.

나나 남편, 그리고 그 사람 역시 우리 모두는 일본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일본인이 아니기도 했어.

남편과 나는 일찍 일본을 떠나와서 영국생활에 익숙해 있었고, 그 사람 역시도 세계를 돌며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기에 사고방식이 달랐지. 우리 셋은 그런 면에서 참 잘 통했던 것 같아.

만약 일본이었으면 우리 셋이 친구로 지낼 수 있었을까?

아마 그건 어려웠을 것 같아."


“음..”


“남편이 죽고 난 후에도 그 사람은 항상 내곁을 지켜줬어.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로서 우리는 많은 것에 공감했고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거든.

그랬던 그가 암으로 죽었다고 했을 때, 난 너무 충격이었어. 내 남편도 암으로 죽었었거든."


“이런, 그랬군요.”


“그 사람이 자신의 병을 알았을 때는 너무 늦었어. 이후로 6개월밖에 살수 없었으니까.

그 사람은 나에게 알리지 않았고 난 알지 못했지.

나중에 그가 나에게 보내려고 써놓은 편지를 메일함에서 발견한 그의 딸이 나에게 그 메일을 보냈었지.

‘이제 나는 얼마 살수 없어. 너와 함께한 시간이 내겐 너무 행복했고 영원히 잊지 못할거야. 아! 이제 갈 때가 된 것 같다. 내 친구여, 부디 행복하길.. 그리고 안녕..'"


난 정말 울고 말았다.

지난날을 회고하며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그녀는 그러나 풍부한 감정의 소유자답게 혹은 많은 추억을 가진 여인답게 심금을 울리고 있었다. 비록 그녀가 하는 이야기가 서로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였음에도 불구하고 난 그 모든걸 이해할수 있었다. 심지어 그 감정 그대로 완벽하게.

그렇게 서로의 와인잔을 기울이며 우리는 인생과 사랑,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마주앉은 창 밖으로 작은 가든에 어둠이 밀려들고 있는 10월의 밤이었다. 그리고 오디오에서는 그녀와 내가 함께 좋아했던 '오스카피터슨'의 연주가 흐르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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