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시 만난 날

다시, 사랑_10

by 후룩쥔장

"이번주 토요일에 데리고 가."


그녀는 귀를 의심했다. 그는 분명 그녀에게 아이를 보내주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몇 번이나 진심임을 확인하는 그녀에게 그는 그와 아이가 있는 울산으로 오면 딸아이의 짐을 챙겨 역 앞으로 데리고 나가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녀에게 짐을 보내고 그와 아이가 울산으로 내려간지 반 년이 지났다. 그녀가 흑석동 집을 나온지도 어느덧 일년이 다 되어간다. 딸아이가 걱정이 되어 그녀는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울산에 계신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어머니를 통해 그녀는 그가 짐가방 하나만을 달랑 든 채 딸아이 손을 잡고 울산집에 도착한 소식을 들었다.

함께 살던 그 여자는 동행하지 않았다 했다. 그동안 하던 사업들이 모두 잘 안 되었던지 빈털털이로 쫓겨나다시피 내려온 것 같다 했다. 딸아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방에 틀어박혀 폐인처럼 지내고 있으며 서울에서 그 여자가 가끔 전화를 걸어 그를 찾는다 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자의 전화를 받는 그의 목소리에 가시와 짜증이 묻어났고 언성을 높이며 싸운 적도 여러번이었다 했다. 도통 시어머니에게도 말을 하지 않으니 그저 그 분으로서는 어린 손녀를 돌보며 당신 자식의 눈치만 보고 계시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몇 번이나 그 여자가 울산으로 찾아왔다 했다. 딸아이에게 줄 선물과 시어른께 드릴 선물을 한아름 사들고 그녀가 울산을 방문하는 날이면 그들은 딸아이와 함께 외식을 하거나 집에서 식사를 하며 여느 가족처럼 지내었던가 보았다.

어느덧 시어머니도 그 여자를 당신 아들을 떠난 첫번째 며느리에 이어 당신 아들의 두번째 며느리로 받아들인 듯 했다. 함께 살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그들은 그러나 경제적 기반이 잡힐 때까지는 그렇게 서울과 울산을 오가는 생활을 하기로 한 듯했다. 여러모로 혼자 아이를 돌보았던 경험이 별로 없던 그에게 고민이 많을 터였다. 시어머니가 딸아이를 대신 돌보아 주고 있다 하더라도 아버지라면 아이 양육에 있어 생각이 많을 것이었다. 그녀는 간간히 들리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때를 기다렸다. 다행히 회사에서 팀장으로 승진하는 기회도 생겼다. 그녀는 그에게 메일을 보냈다.


오랜만이야. 딸아이와 울산으로 갔다는 소식 어머님을 통해 전해 들었어.

여러모로 당신에게 힘든 시기일 거라 생각해. 지금 상황에서 당신이 딸아이까지 양육한다는 건 아이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은 아닐듯해.

이제는 아이를 내게 보내줬으면 해. 당신은 아직도 나를 믿지 못하겠지만, 그동안 아이를 키웠던 건 나였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을거야. 지난 세월에 내가 아이에게 크게 부족했던 엄마라고 생각지는 않아.

물론 그 밤, 모든 걸 견디지 못하고 결국 집을 나온 건 나였고, 이후로 법원에서도 판사 앞에서 양육권을 포기한 것 또한 나였음을 부인하진 않겠어. 하지만 아이를 포기한 적은 없어. 당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던 난 여전히 아이의 엄마고 아이를 양육할 의무와 권리가 있어.

다행히 상황도 많이 좋아졌어. 회사에서 승진도 했고 친정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으니 주중에는 아이를 돌봐주실 수 있어. 아이를 생각해서 좀더 깊이 고민해보고 좋은 소식 전해주기를 기다릴께.


지난 경매판정 이후로 그녀의 메일에는 무시, 또는 악담으로 가득찬 답장을 보내던 그도 이어지는 그녀의 설득에 고심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결국 그는 그녀에게 아이를 데려가도 좋다는 전화를 한 것이다.

그의 전화를 끊고 난 후, 그녀는 날아갈 듯했다. 자꾸만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려 몇번이나 그녀의 허벅지를 꼬집어도 봤다.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친구들에게 알리고 그녀가 가입한 이혼녀 까페에도 올려 축하인사를 받았다. 그동안 그렇게도 간절히 원해왔던 일, 그녀가 되돌리려 해도 하지 못했던 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본 생살이 찢겨나가는 고통을 딛고 이제 드디어 딸아이가 그녀의 품 안으로 오게 된 것이다. 정녕 이것이 현실이란 말인가? 그녀는 그 기쁨을 그녀의 친정어머니와 나누기 위해 퇴근 후 서둘러 집에 도착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가족들의 얼굴은 그러나 밝지 않았다. 딸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파했던 당신의 딸을 생각하면 좋은 일이었으나, 아직 한창인 그녀가 이혼녀로 아이를 책임지며 살아야 할 삶의 무게를 생각하면 반갑지만은 않았던 까닭이다. 무엇보다 그녀의 언니는 친정엄마의 건강을 걱정하며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그것은 그녀만의 너무나 이기적인 결정이라며.

그녀는 결국 친정식구들이 모인 앞에서 눈물을 쏟고 말았다. 결혼하여 쌍둥이를 키우고 있는 언니 또한 같은 엄마로서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그렇게 말할 순 없다고 소리쳤다. 내색하지 않으려 했을 뿐, 그동안 딸아이를 그리며 흘린 피눈물은 그 누구도 겪어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다며 서럽게 울었다. 그녀의 친정어머니는 왜 그 마음을 모르겠느냐며 일단 정해진 일이니 모두 함께 최선을 다해보자고 우는 그녀를 달랬다.


약속한 당일, 그녀는 새벽부터 집을 나섰다. 울산으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경기도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터미널로 가서 울산행 첫 차에 올랐다. 울산을 향하는 내내 그녀는 설레임으로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고 몇달만에 아이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기쁨에 차 올랐다. 그리고 이제는 이 만남이 몇시간, 혹은 며칠이면 다시 보내야 하는 생이별이 아닌 영원히 지속될 생활의 일부가 된다는 생각에 기쁨으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했던 숱한 마음고생도 그를 향한 저주와 원망들도 봄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저 그녀는 앞으로 그녀의 딸아이와 친구처럼 지내리라, 서로 위안을 삼으면서 그렇게 둘이 알콩달콩 열심히 살리라, 아이만을 위해서 그녀의 남은 인생을 살리라 다짐했다.


역 앞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그들은 다시 만났다. 6개월만이었다. 아이의 옷가지들을 담은 커다란 여행가방 한개와 함께 그와 아이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밝은 표정의 그녀와 달리 오랜만에 보는 그의 얼굴은 까칠하게 야위어 있었다. 6개월만에 보는 딸아이를 꼭 껴안고 그녀는 말했다.

"고마워. 어려운 결정해줘서. 잘 키울께. 보고 싶을 땐 언제든지 연락해. 내가 데리고 나갈께."

우호적으로 건네는 모처럼의 다정한 그녀의 말에 대한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지금은 너가 데려가지만 너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고, 아직 젊은데 계속 혼자 살지도 알수 없는 거고. 그때는 내가 데려 와. 모르는 사람 호적 밑에 둘 수는 없어. 이건 분명히 말하는 거야. 그때는 내가 데려 와."

그녀는 적잖이 기분이 상했지만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다는 기쁨만으로 그 모든 것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들렸다.

"글쎄. 지금 생각으로는 다시 결혼이라는 건 안할거 같은데. 한번 했으면 됐지. 뭐하러. 그건 걱정안해도 될 듯해. 그래도 당신 말처럼 사람 일은 알수 없는 거라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알겠어. 그건 약속할께. 그런데 그런 일은 아마 없을 거야."

터미널에서 그녀는 딸아이의 손을 붙잡고, 또 한손으로는 큰 여행가방을 들고 끙끙거리며 계단을 올라 자리에 앉았다. 분명 무거운 가방을 버스까지 들어줄 수도 있었으련만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터미널 입구에서 아이에게 건강하게 잘 지내라는 인사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서울로 오는 버스 안에서 그녀는 그렇게 사라져간 그의 뒷모습이 아버지로서 못할 짓을 하는 것만 같아 차마 끝까지 아이를 바라볼 자신이 없었던 그의 기울어진 자존심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예전 그가 그녀에게서 딸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그 여자를 옆에 태운채 그녀 앞에 나타났을때, 차마 아이가 차에 오르는 모습까지는 볼 수 없어 애써 뒤돌아 먼저 길을 재촉했던 그녀의 마음처럼.


터미널에서 그녀의 집까지 다시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탔다. 커다란 짐가방을 끌고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그녀가 집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9시가 넘어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아파트 문을 열자마자 딸아이를 환영하는 폭죽과 박수소리가 들렸다. 근처에 사는 그녀의 결혼한 언니들과 형부들까지 합세한 친정식구들의 환영파티였다. 조카들까지 모두 모여 북적이는 분위기에 어색했던 그녀의 딸아이는 금새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고 그녀는 모처럼 환한 얼굴과 가벼운 마음으로 축배의 잔을 높이 들었다.

그 밤, 모두가 돌아가고 딸아이와 단 둘이 누운 그녀는 잠든 아이의 머리를 몇 번이나 쓰다듬고 작은 손을 끌어다 만지며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차오르는 충만함으로 근 몇년동안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녀가 누리는 그 행복 뒤에 슬퍼하고 있을 한 사람이 생각나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보냈다.


집에 잘 도착했어. 가족들 모두 환영해주었고 아이는 지금 잠들었어.

한동안 많이 힘들거야. 그 상실감을 내가 알기 때문에 나도 마음이 아파.

서울에 오게 되면 연락해. 아빠와 자주 보는 아이로 자랐으면 해.

너무 아파하지 말고 건강히 잘 지내.


답장은 없었다. 처음부터 답장을 기대한 건 아니었기에 그녀는 서운하지 않았다.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는 분명 문자를 봤을 것이고, 지금 어딘가에서 감당하기 힘든 상실감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있을 거라는 걸. 그녀가 예전에 그랬듯이.

그리고 그녀는 속죄하고 싶었다. 예전에 그녀가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했던 저주들에 대해. 이제 그에 대한 그 저주는 그만 풀어주시고 마음 아파할 그에게 평안을 내려주시기를, 지금 그녀가 행복한 것처럼 그도 행복해지기를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