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_11
그녀의 삶은 다시금 분주해졌다.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받아들이며 어느새 익숙해져 있었던 지난 6개월이 지나고 이제 그녀는 이혼녀이자 한 아이를 책임지는 한부모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회사생활은 더욱 절박하게 다가왔고 근무가 끝나는 퇴근시간이면 칼같이 퇴근을 했다. 그녀가 회사에 있는 동안 그녀의 친정엄마가 아이를 유치원에서 받았고 저녁을 먹였으며 씻겼기 때문에 그녀는 차려놓은 음식을 먹고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준 후 아이를 재우기만 하면 되었다. 대신 주말이 되면 혼자인 아이 혼자 심심할까 보아 그녀의 조카들까지 데리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함께 놀아주었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들은 너무도 충만하고 실질적인 집안 살림은 그녀의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한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경제적 부담감은 생각보다 무겁게 다가왔다. 다른 이의 도움 없이 아이를 가르치고 키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걸, 시간적 여유도 물론이려니와 무엇보다도 경제적 여건이 팍팍한 것이 현실이라는 걸 그녀는 깨달아야 했다.
아이를 데려온 이후로 맞는 첫 명절이었다. 딸만 있는 그녀의 집 명절은 당일 오후나 되어야 시댁을 들렀다 오는 그녀의 언니들로 인해 북적이는 까닭에 그 전까지는 참으로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른 집들에 비해 썰렁하기만 했던 명절, 그녀는 전날 먹은 전이 체해 몸살까지 겹쳐 오는 통에 오전내내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함께 놀아주지 않는 엄마가 야속하고 썰렁한 집안이 심심했었던지 아이는 외할머니가 있는 앞에서 울산 할머니와 아이의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명절이니 서울 큰형님이랑 모두 모여 북적거렸을 테고, 아이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큰형님네 아이들 목소리까지 듣고 나니 울산으로 가고 싶었었던가 보았다. 나중에 자기 아빠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할머니한테 가고 싶다고 했다고 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아이를 돌봐주었던 외할머니로서는 서운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잠에서 깨어 그 소식을 전해들은 그녀로서는 우선 배신감부터 들었다. 그리고 혼돈이 왔다. 정말이라면 가고 싶은거라면, 보내줘야 하는게 아닌가? 아직 어린 아이라는 걸 염두에 두지 못한 채 그녀는 아이가 하고 싶은 걸 못하게 막고 있는 것만 같아 미안하고 당황했다. 아이에게 진심을 묻는 그녀를 보며 아이는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눈치를 보기 시작하더니 눈을 꿈뻑거리며 이내 입을 실룩거렸다. 이어서 쏟아지는 울음을 참느라 힘겨워했다.
"아니야. 엄마 혼내는 거 아니야. 울지 마. 엄마는 그냥 너 마음을 알고 싶은거야. 여기서 살기 싫은거야? 다시 울산으로 가고 싶어?"
그녀는 자꾸만 다그치듯 아이에게 묻고 있었다. 울먹이며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고 싶어. 아빠랑 할머니가 보고 싶어. "
아이의 어깨를 잡았던 그녀의 팔이 힘 없이 내려갔다. 그녀는 혼돈스러웠다.
물론 적응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야겠지만 그것이 아이의 본심이었던가 싶어 그녀는 괴로워졌다.
보고 싶은 마음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이제 아이는 여섯살로 아빠의 전화번호도 친할머니의 집 전화번호도 모두 외우고 있으며 보고싶으면 전화할 수 있는 의지와 자유가 있는 아이인 것이다. 어른도 적응하기까지 힘든 시간인데 그 전에 있는 환경을 어찌 금새 잊을수 있을 것인가? 이곳에 온 이후로 한번도 아빠 찾지 않고, 잘 때도 울지 않고, 꼬박꼬박 말 잘 듣고 견뎌준 딸아이가 오히려 너무 어른스러워 이상했어야 했다.
서럽게 우는 딸아이를 안고 결국은 그녀도 울어버렸고 조용히 말했다.
"우리 딸, 이제 엄마랑 사는 거야. 적응하기 힘들겠지만 조금만 지나면 다 괜찮아질거야. 아빠가 보러 오면 그때 만나면 돼. 여름방학 되고 추석 되면, 그때는 울산 할머니네 집에도 보내줄게. 좀 더 커서 학교 들어가고 열살 지나면 하고 싶은대로 다 해 줄게. 하지만 지금은 아직 어려. 엄마, 아빠 생각에는 지금은 엄마랑 있는게 나은 거 같아서 그래. 엄마랑 아빠, 너를 사랑하지만 함께 살 수가 없어. 우리 딸에게는 너무 미안하지만 지금은 우리 딸이 엄마, 아빠 둘 중에 한 명만 선택해야 해. 하지만 분명히 엄마, 아빠는 모두 우리 딸을 너무 사랑해. 알았지?"
여섯살짜리 아이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운명처럼 겪어야 하는 일이라면 아이가 좀더 강하고 당당해지길 바랬다. 전부 다 이해할 수는 없었겠지만 아이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아이를 다독이고 함께 시내로 나가 쇼핑을 하고 햄버거를 사 먹였다. 아이스크림도 사고, 그동안 사달라고 했던 별 달린 목걸이도 사 주었다. 밤이 되어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그녀는 흔들렸던 그녀의 마음을 꾸짖었다. 아무리 아이가 원한다해도 다시 보내줄 수는 없었다. 어떻게 다시 만났는데, 다시는 헤어지지 않기로 했는데, 잠시나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그녀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아이가 열살이 되면 그때는 원하는 대로 해주리라 생각했다. 그때쯤이면 아이의 의지를 존중해줘도 좋으리라 생각하면서.
토요일 아침, 아이를 그녀에게 보낸 이후 처음으로 그가 아이와 만나는 날이다. 약속한 그녀의 회사 앞에서 그녀는 아이를 그의 차에 태워주고 헤어졌다.
"저녁까지는 데려다 줘야 해. 기다리면서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께."
아이를 기다리며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밀린 일을 하던 그녀는 문득 예전 일이 생각났다. 그가 아이를 데리고 있던 때, 아이를 보기 위해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4시간이었다. 지금 그에게 그녀가 준 시간은 6시간. 인생은 어쩜 이리도 에누리가 없는 건지 그녀는 예전에 그녀 못지 않게 그 또한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고심하고 있으리라는 걸 알았다.
약속한 시간이 되어 회사 앞으로 온 아이는 아빠와 헤어져 그녀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내내 말이 없었다. 창밖만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우리 딸, 오늘 재밌었어? 아빠랑 뭐했어?"
"언니네 갔었어. 큰엄마가 해준 밥 먹었어. 고모랑도 통화했어. 고모가 보고 싶대."
순간, 그녀는 그녀의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분명 그 여자를 지칭하는 거였고 순진한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경직된 얼굴로 애써 웃었다.
"그랬구나."
"그런데 왜 엄마랑 아빠는 떨어져 살아야 해?"
그녀는 가슴이 철렁했다. 충분히 할수 있는 질문이었음에도 그녀는 미처 준비하지 못한 질문이기도 했다.
"음. 그건. 음. 엄마랑 아빠는 이혼이란 걸 했어. 이제는 서로 사랑하지 않아. 서로 믿지도 못하고. 그래서 서로 떨어져 사는게 좋겠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우리 딸이 필요할 땐 언제든 달려올거야. 엄마도 아빠도."
아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너가 아직 어려서 모든 걸 이해할 순 없겠지만, 이혼한 집도 많아. 그리고 아빠는 그 고모랑 결혼할거야. 정확히 말하면 그 고모는 고모가 아니야. 그냥 고모라고 부른 것 뿐이지."
혼돈스러워하는 아이를 보며 그녀는 후회했다. 어차피 알게 될 일이라고 해도 아직은 받아들이기 힘든 나이였다. 그럼에도 고집스럽게 그 여자 얘기를 한 건, 아이와 통화를 시켜준 전 남편에 대한 분노와 그 여자를 그리워하는 듯한 아이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전남편이 건네준 아이의 여름옷을 정리하면서 그녀는 또 한번 부아가 치밀었다. 속옷이며 겉옷, 양말까지 뭐하나 제대로 갖춰져 있는 것이 없었다. 낡고 세탁도 잘 안되어 있어서 쓸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그동안 어떻게 아이를 돌봤는지 전남편에게 화가 났고, 이 지경이 될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그녀 자신의 무관심에 화가 났다. 통장 잔고는 바닥이었고 살 것들은 너무 많았다. 한숨이 나왔다.
"엄마 내일부터 일한다. 마트 청소하는 일인데 밤에 출근해서 아침에 퇴근해. 아침에 집에 와서 얘 유치원 보내고 한숨 자고나면 퇴원할 때 받아줄 수 있을거야."
친정엄마가 전한 소식에 그녀는 저녁밥을 먹다 말고 밥숟가락을 내려놨다.
그동안 너무 평온했다 싶었다. 그녀를 대신해 아이를 돌봐주는 친정엄마에게 그녀가 보태는 돈은 너무 적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생활비에 보태시라며 내놓았지만, 그마저도 지난달과 이번 달은 실적이 없어 한 푼도 보태지 못했다. 그녀가 일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녀는 실적에 따른 수당을 받는 영업직이었기에 수입이 불규칙했다. 열심히 한다해도 영업에는 운도 따라줘야 하는 법, 이래저래 들어가는 돈은 많았고 아이가 온 이후로 식비까지 퇴직을 앞둔 그녀의 친정아버지의 월급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의 어머니는 일을 시작하겠노라 선언하신 것이다. 그것도 야간 일을.
그녀는 이 모든 것이 무능한 그녀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속상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녀의 무능력함이, 다른 집 딸들처럼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그녀 자신이, 예뻐야 할 손녀가 부담으로 얹혀져 있는 지금의 이 현실이 너무 싫고 죄송했다. 꼭 그 일을 하셔야겠느냐는 질문은 김 빠진 풍선처럼 맥이 없었다.
고심하던 그녀는 다음날 출근길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심호흡을 하고 몇 번이나 할 말을 연습하고 난 후에야 겨우 통화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나야. 아침부터 전화해서 미안해. 부탁이 좀 있어서."
"뭔데?"
"양육비를 좀 줄 수 없을까? 얼마라도. 아이 유치원비에 보탰으면 하고."
"내가 너한테 왜 돈을 줘야 하는데? 양육비? 너 잘 번다며?"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녀는 알량한 몇 푼이라도 받아보겠다며 전화한 그녀 자신을 원망했다.
그 동안 단 한번도 그에게 돈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아이를 데리고 오면서도 울산까지의 왕복 교통비까지 자비로 다 해결하면서 데리고 왔다. 뭘 바란다는 자체가 의미없다 생각했다. 다만 이번 경우는 그녀 자신이 아닌 그녀의 엄마가 관련된 일이었다. 야간업무가 얼마나 고될지, 나이드신 분이 그 일을 하시기까지 그녀와 그의 책임이 없다 할 수 없었다. 적어도 그는 그녀에게 왜 그 돈이 필요한지 정도는 물어봐줘야 했다.
"됐다. 내가 오죽하면 전화했을까는 한번쯤이라도 물어봐야 하는거 아니니? 기대한 내가 바보지."
그녀는 전화를 끊고 운전대를 잡은 채 서러움의 눈물을 쏟았다. 최소한 아빠라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정도는 물어봐줬어야 했다.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살리라, 아이에게도 그렇게 알리고 안 보고 살리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또 그건 아니라고 머리를 저었다. 그가 아이를 보여주지 않았을 때, 그녀가 느꼈던 그 서글픔과 아픔을 그 역시 똑같이 느끼게 할 순 없었다. 적어도 그녀는 그 사람만큼 잔인하고 어리석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