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의 날

다시, 사랑_13

by 후룩쥔장

다음 날 출근하여 메일함을 확인한 그녀는 그에게서 온 한 통의 메일을 발견했다.


나도 일요일에는 많이 당황스러웠고 어찌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어린애의 투정이나 응석으로 보기에는 지금 아이의 태도가 너무나 단호하다. 네가 믿을진 모르지만, 나와 그사람은 어제 저녁까지 아이를 설득하고 많은 얘기를 나눴다. 왜 그렇게 거길 가기 싫어하는지에 대한 아이의 대답은 이렇다.

"우리 엄마집에는 놀아주는 사람도 없고, 혼자 텔레비젼 보고 있다가 엄마 오면 자. 가끔 엄마가 잘 때 책읽어 주는 거 빼고는 심심해. 유치원 가기도 싫고 나는 매일 자고 싶어." 그러다 저녁에는 나한테 뜬금없이 "엄마한테 전화해서 내 짐 빨리 보내달라고 해."하더라. 난 순간 내 딸이지만 왜 이렇게 아이가 냉정할 만큼 단호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제는 너와 통화했다고 하면서 "금요일날 엄마가 나하고 아빠하고 같이 와서 짐 가져가라고 했는데 나는 가기 싫으니까 아빠가 가서 갖고 와." 하더라.

가기 싫다는 애를 억지로 구겨넣듯 어른들이 결정했으니까 애는 힘들더라도 그냥 버티게 할 수는 없다. 이렇게 완강하게 못가겠다고 버티는 이상 강제로 보낼 생각은 전혀 없으며 힘들더라도 옆에 항상 있어 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다고 너와 아이를 떼어 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제 우린 너의 어떤 제안도 귀담아 들을 준비가 되었다. 네가 원하진 않겠지만, 그 사람도 너와 만나서 차근차근 얘기해 보고 싶다는 말까지 있었다. 차분히 감정을 가라 앉히고, 서로 냉정하고 객관적인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때 만나서 얘기하는 걸로 하자.


그녀는 메일을 읽고도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그가 전해준 아이의 소식은 그녀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완강한 아이의 태도라니 그녀조차도 믿을수 없는데 그는 오죽할까 싶었다. 그동안 그런 내색을 한번이라도 했으면 이렇게까지 당황스럽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슬펐다. 엄마는 항상 바쁘고 집에는 놀아줄 사람이 없다는 얘기에 슬픔이 밀려왔다. 그녀가 한 최선이었다. 가장으로서 산다는 건 그런 거였으니까.

오랜만에 본 차분한 그의 글이었다. 어떤 과장도 없었으리란 걸 그녀는 의심치 않았다. 그 역시도 아이의 아빠였으니까. 아이를 위해서 결정해야 할 사람은 이제 그녀였다. 그녀는 답장을 썼다.

너무 슬프지만 아이가 그렇게까지 원하는 거라면 그녀 역시 따르겠다고. 보내고 싶지 않지만 전날 아이의 모습을 보고 그녀도 많은 생각을 했다고. 그리고 보낸다면 아이를 전적으로 맡아서 키워줄 사람은 그보다는 그 여자 J이므로 한번 만나고 싶다고 썼다. 며칠 후, 그 여자 J에게서 메일이 왔다.


정말이지 많이도 망설이다 글을 보냅니다. 우선 전에 감정에 휩싸여 했던 모진 말들이 당신을 아프게 했다면 사과합니다. 아이를 보면서 아이의 엄마 입장에서 많이 생각했습니다.

가게에서 아이가 엄마와 통화할 때 "엄마 짐 언제 보내줄꺼야?" 했던 낭랑한 목소리가 너무 슬퍼서 내 아일 떠올리며 많이 울었습니다. 내 아이를 포기하고 돌아섰던 순간들. 난 하루도 잊지 못하고 그 그리움은 기도로써 대신할 뿐. 나 역시 에미이기에 고스란히 느꼈습니다.

예민한 아이라 엄마 이야길 안 하길래 고모는 엄마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어제서부턴 쌍둥이와 할머니, 이모와 간간이 엄마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엄마한테 전화하라고 엄마가 슬퍼한다고 했더니 안 간다면서 눈치를 보는것 같아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어찌됐든 아이가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내 글이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길 바라면서 이만 줄입니다.





장마가 오락가락하는 무더운 날이었다.

그녀는 일산 호수공원에 있다. 이곳에서 그녀는 그녀의 아이와 J를 만나기로 했다. 아이를 보낼 거라면 그녀와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아이가 예전에 그녀와 J사이의 다툼을 기억하고 있는 한, 아이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해결의 시작이라고 생각했기에 어렵게 내린 결론이었다. 아이가 아빠에게 다시 떠난 지 일주일 만이었다.

J의 손을 잡고 아이가 걸어왔다. 일주일만에 본 아이는 걱정과는 달리 엄마인 그녀를 보자 달려와 안겼다. 어색한 인사 속에 J와 그녀는 더위를 피해 이야기할 커피숍을 찾아 10분간을 걸었다. 공원에서 커피숍까지 가는 길에 아이는 그녀와 J의 손을 양쪽으로 꼭 잡았다. 마치 둘 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커피숍에서 그녀와 J는 서로 어색하게 마주보며 앉았고 아이는 가져온 가방에서 그림도구를 꺼내어 탁자위에 펼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J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예전 일은 미안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저도 죄송했어요. 감정이 격했었네요."

"저도 아이를 두고 왔어요. 지금 중학교 3학년이예요. 아이엄마의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잘 키울께요. 보고 싶을땐 언제든지 봐요. 지금 우리 사정도 사실 썩 좋은 건 아니지만 둘다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경제적인 건 걱정 안해도 돼요."

"다행이네요. 그래도 이렇게 보내도 되는건지, 아빠라는 사람은 바쁠텐데, 또 살갑게 아이를 챙기는 스타일도 아니고. 결국은 가게 하시면서 아이 보셔야 할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아이와 영영 이별하는게 아니고 잠시 저에게 맡긴다 생각해요. 엄마와는 항상 연락했으면 해요. 저는 평생 고모로 남고 싶어요"

"그건 아니거 같아요. 이제 아이 맡으시면 앞으로 아이 클때까지 긴 시간인데 남들 시선도 그렇고 혼인신고도 하셔야 하고. 그러면 차츰 호칭도 정리를 해야지요. 낳아준 엄마와 길러준 엄마 이렇게 분리를 해야겠죠. 앞으로 사춘기도 올 거고, 지금은 괜찮지만 그때는 힘드실수도 있는데 걱정이 되네요."

"제 딸이 지금 사춘기예요. 엄마 아빠 때문에 예민해져서 저를 많이도 원망했죠. 어쩌겠어요. 그래도 천륜인데. 신기하게도 예전부터 점을 보면 꼭 '남의 애 키울 팔자'라고 나왔어요. 이리 될려고 그랬나봐요. 그동안 엄마가 예쁘게 잘 키운 거 같아요. 저도 최선을 다해서 키울께요. 아직 젊잖아요. 아이는 제게 맡기고 새 출발해요. "


아이와 헤어지는 길은 만나러 온 길보다 마음이 가벼웠다. 그녀는 헤어지기 전 아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엄마보다 고모랑 있는 게 좋겠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모랑 아빠랑 잘 지내고 글자 공부해서 엄마한테 컴퓨터로 편지 써 줘. 그리고 유치원은 지금은 다니기 싫어도 나중에는 가는 거야. 밥 잘 먹고. 엄마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전화해."

J와 아이를 태운 택시가 멀어질때까지 그녀는 손을 흔들었다.

슬프진 않았다. 마음도 편안했다. 마음을 열어준 J에게도 고마웠다.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오후내내 잔뜩 흐려있던 하늘에서 우두둑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소나기를 피하려 뛰었지만, 그녀는 이내 흠뻑 젖어 천천히 걸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 속에서 그녀의 지난 상처들이 씻겨져 나가는 듯했다.

그녀는 울산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제가 원했던 일은 아니었지만 아이를 보내는 게 나을 같아서 그렇게 결정했어요. 그 여자랑 만나서 얘기하고 가는 길이예요. 그렇게 하는게 좋을것 같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시어머니는 수화기를 붙들고 우셨다. 내가 그동안 너를 정말 친딸처럼 생각하고, 너가 행복하길 바랬는데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당신은 아직도 그녀를 너무 사랑한다고. 그동안 맘고생 많았다고. 그녀의 부모님께 잘 하라고. 당신 자식이기에 잘못되길 바랄 수 없고, 서로 다 잘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그녀에 대해 한번도 야속하거나 미워한 적 없다고. 어디가든 건강하고 좋은 사람 만나 새출발하기만을 진심으로 바란다고.

그녀는 집에 돌아와 새벽까지 다음날 보낼 아이의 짐들을 정리했다. 상자에 물건을 하나씩 담을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욕실화를 담으면서 연필꽂이의 연필을 담으면서 유치원에서 만들어왔던 장난감들을 챙기면서 유치원 선생님과 나눴던 알림장 글을 보면서 함께 놀러가 찍었던 사진을 보면서 울었다. 짐을 다 정리하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몸은 젖은 솜처럼 무거운데 정신은 또렷하기만 했다. 돌연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쿨렁쿨렁 또 눈물이 쏟아졌다. 서러운 눈물이 무너진 둑처럼 하염없이 밀려나왔다.
다음날 아침, 그가 보낸 용달차가 그녀 집으로 왔다. 미리 싸 두었던 짐들을 보내며 그녀는 예전 그녀의 짐을 받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 착불로 왔던 짐들에 분노했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착불로 얘기되었다며 기사에게 짐만 실어보낸다. 에누리 없는 삶.

용달차를 배웅하고 올라오니 침대에 남겨진 커다란 곰돌이 인형이 보였다. 아이가 안고 자던 그 곰돌이 인형은 그녀가 전날 차마 짐가방에 넣을 수 없어 마지막으로 껴안고 있던 것이었다. 남겨진 인형에 얼굴을 묻고 그녀는 뜨겁게 뜨겁게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