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_15
그녀는 영국에 있다.
화사한 봄을 알리는 4월, 그녀는 영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좁은 기내에서 감기로 인한 고열과 몸살에 시달리면서 끝없는 악몽을 꿨다. 그녀가 두고 가야 하는 사람들이 차례로 꿈 속에 나와 자꾸만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녀는 꿈속에서도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몇번을 고민하면서도 가야한다, 가야한다 하면서 잠에서 깼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듯이 느껴지던 비행시간이 끝나고 비행기가 히드로 공항에 착륙했을 때, 그녀는 드디어 한국을 떠나 낯선 이국땅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미리 한국에서 예약한 픽업 서비스를 이용해 임시로 있을 렌트 하우스로 향하는 길, 런던 북동부로 향하는 차 안에서 바라본 런던 시내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회색빛 도시와 낯선 사람들을 보면서 그녀는 갑자기 우울해졌다. 완벽한 이방인으로 이제 정말 혼자가 된 것만 같아서.
다음 날 그녀는 런던 남부에 있는 학교를 찾아가기 위해 튜브를 탔고 안내방송이라곤 독일말인지 영어인지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어 긴장한 채 토끼 눈을 하고 귀를 쫑긋거렸다. 10년전 대학교때 왔던 유럽배낭에서 잠시 머물던 영국과는 달랐다. 그때는 여행의 낭만으로 달아올라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면, 지금은 학업과 생활의 현실적 장소로 좀 더 차분하게 주변을 돌아보았고 무엇보다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로 속이 울렁거렸다.
우려했던 그녀의 영국생활은그러나 일주일 후, 학교 근처로 숙소를 옮기면서 이전까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완벽한 시간을 경험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영국의 가장 좋은 계절 5월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녀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과 금새 친구가 되었고 삼개월 동안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런던시내를 종일 쏘다녔으며 룸메이트와 요리를 하고 숙소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그리고 수중에 가진 돈이 떨어져가는 삼개월 후, 한국인이 운영하는 일식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학교와 일을 병행했다.
바쁜 시간 속에서도 영국에서 그녀는 가장 원초적인 그녀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주어진 자유로운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그녀는 온전히 그녀 자신과 마주하며 그녀의 내면에 귀를 기울였다. 조급하게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여유를 갖게 되었고, 다양한 나라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좀 더 넓은 가슴을 갖게 되었으며 곳곳에 무료로 제공되는 미술과 음악, 문화를 통해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여전히 그녀에게 아픔이었다. 영국에서 그녀는 그저 나이 들어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온 늦깍이 학생이었을 뿐, 애를 두고 온 이혼녀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아이에 대한 걱정이 늘 먹구름처럼 끼어 있었다. 그녀가 아이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J였고 그녀는 가끔씩 J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J에게서 몇 달째 답신이 없었다. 그전까지는 없던 일이라 그녀는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비싼 국제전화로 울산에 전화를 해 보기도 망설여지는 일이었다.
'내 연락을 원치 않는 건가? 그들의 세계에 이제 나란 존재는 그만 나가줬으면 하는 마음을 매정하게 전하지 못해 메일도 읽어보지 않는 건가?'
그녀 멋대로의 추측이 그녀를 더욱 비참하게 할 즈음, 그녀는 J에게서 메일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J의 여동생입니다. 당신에 대한 이야기는 언니를 통해 들어 알고 있었어요.
지금 언니는 답장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태가 아닙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겨 가족 모두가 걱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이 때문에 연락하신 거 알지만 이제는 언니에게 그만 연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녀는 놀랐다. 여동생이 그녀의 메일계정으로 연락을 했다는 것도 놀라운데 '자유롭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중병이 들어 손조차 움직일 수 없다는 건지, 무슨 사고가 난 건지 그녀는 불안한 마음으로 그저 멍하니 메일만 바라봤다. 이기적인 생각일지라도 그녀는 사실 J의 안위보다도 그녀의 딸이 더욱 걱정됐다. 그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영국으로 올 수 있었던 건, J에게 그녀의 딸을 맡길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J의 변화는 곧 그녀 딸의 변화였다. 국제전화 비용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차이나타운에서 산 충전용 전화카드를 들고 공중전화 부스를 찾았다. 그리고 울산집 번호를 눌렀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시어머니였다. 영국이라며 그녀는 조심스럽게 안부를 묻고 J의 소식을 물었다. 시어머니에게서 들은 소식은 그녀를 충격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그 무슨 사업에 관련이 되서 집으로 형사들이 들이닥쳤다드라. 예전에 했던 사업 때문이라는데 나중에 누가 신고를 해서 그것 때문에 경찰조사 받고 지금 교도소에 가 있다카데. 애 울산에 없어. 그래도 갸가 회사 다니면서 애 볼 수 있다고 금방 나올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때까지 애 보면서 기다린다 카드라."
그날 밤 그녀는 집 근처 그로써리에서 사온 와인 한 병을 다 마시고 울다가 잠이 들었다. 그로부터 한달 후, 그녀는 J에게서 온 메일을 발견했다. 이번 메일은 분명 J였다.
오랜만이예요. 영국에 갔다는 소식은 들었어요.인생이란 참으로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 같아요. 그곳에서의 일, 길게는 얘기 안 할께요. 전에 했던 대리점이 회사와 분쟁이 생겨 3년 동안이나 재판을 하다가 그꼴을 당했답니다. 정말 변호사도 나도 상상할수 없던 일이 일어난거죠.
잃어버린 것보단 얻은 것이 많았다 싶어요. 오빠의 도움으로 변호사 선임하고 공탁 걸고 그렇게 석방이 됐네요. 벌써 반년이 흘렀군요. 그간의 많은 일들, 앞으로 닥칠 일들, 그 고리들을 하나하나 풀어 나가야죠
그동안 아픔이 많았네요. 가장 큰 건 식구들이 모두 아이아빠를 반대하고 있어요. 그 동기와 원인이야 물론 나로 비롯됨이지만 아버지와 이 사람 편들었다가 크게 싸우기까지 했네요.
잠시 떨어져 있기로 했어요. 이 사람과의 화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고 제 마음은 변함이 없답니다. 아이를 지켜주겠단 약속 당분간 못 지켜서 미안해요. 이왕 영국에 간 거 열심히 해서 더 큰 사람으로 돌아와요. 나도 내 숙제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야죠. J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머나먼 이국 땅에 있었고, 설사 당장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간다해도 변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이미 각자의 삶은 이곳과 저곳에서 이어지고 있었고 그녀로서는 지금의 상황에서 아이의 무사함을 기원한 채 소식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가끔씩 울산으로 전화해 시어머니를 통해 결국 아이와 전남편이 다시 울산으로 간 소식을 전해들었다.
바쁜 영국생활 속에서 딸아이의 생일이 돌아왔다. 그녀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디즈니 매장에 가서 예쁜 날개가 달린 팅커벨 요정옷을 사 국제우편으로 보냈다. 그날 밤, 요정의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그녀의 딸 아이를 그녀는 꿈 속에서 만났다. 가끔 거는 국제전화에 시어머니는 조심스러워 하셨다. 당신 아들의 심기가 불편하여 그녀의 전화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까닭이었다. 그녀는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한숨을 쉬었다.
J는 꾸준하게 소식을 보내왔다. 그녀도 소식을 전했고. 둘은 여전히 친구처럼 메일을 주고 받았다. 여러모로 힘든 일을 겪은 J의 메일은 덤덤했다. 그들은 예전처럼 떨어져 지내지만 적어도 이주에 한번씩은 그가 있는 울산과 그녀가 현재 있는 속초를 오가고 있다고 했다. 각자의 숙소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으며 각자의 생활에 충실하고 있다 했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J의 마음이 좀 더 정리되면 그때쯤엔 다시 합칠 생각도 있다고 했다. 어쨌든 아이는 그 힘든 일들 속에서도 구김살 없이 밝게 잘 커주고 있다 했다. 그녀는 그것이 다행스럽고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아름다웠던 영국의 계절은 11월이 되면서부터 급격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길던 해가 오후 3시만 되면 져서 어둠이 몰려들었다. 백야현상으로 인한 긴긴밤이 시작된 것이다. 더불어 그녀의 기분도 우울해졌다. 학업을 핑게로 아르바이트도 그만둔 채, 한적한 자취방에 틀어박혀 친구들이 불러도 잘 나가지 않았다. 요리하러 주방으로 내려가는 것도 귀찮아 2층 그녀 방에서 시리얼만 먹으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세 달밖에 남지 않았다. 영어는 초기 급격히 향상되는 듯 하다가 어두워진 날씨와 더불어 침체기를 겪고 있었다. 학업을 연장할 돈도 없었고 생각도 없었지만 불안한 딸아이의 주변환경들을 생각하면 내년 1월까지 버티고 있을 자신도 없었다. 지금 다시 돌아가면 그녀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다시 또 시작해야 한다. 떠나올 때 그 정도도 각오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녀는 긴긴밤 더욱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로 런던 시내가 불빛으로 휘청거릴 때, 그녀는 결심했다.
'영국생활은 이 정도면 됐어. 학기가 끝나는 내년 1월까지 기다리는 것도 의미가 없다. 난 여기서 돌아간다. 한국으로.'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를 계획했던 같은 반의 한국인 언니의 아쉬움과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그녀는 크리스마스를 삼일 앞둔 12월 22일, 히드로 공항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