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시간들

다시, 사랑_16

by 후룩쥔장

다시 돌아온 한국은 잠시의 떠남만으로도 낯설게 다가왔다.

그녀는 이미 너무 많이 변했는데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떠나기 전 그대로였다. 모든 것은 그대로였고 사람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잠시 그녀를 delete했다가 다시 insert한듯했다.


떠나기 전 했던 헤드헌팅 일을 다시 시작했다. 당장 수중에는 땡전 한푼 없었던 까닭에 그녀는 친정부모님 집에서 먹고 자며 앞날을 생각해야 했다. 그러나 새로운 생활에 다시 적응하기 위한 교차점에서 완충작용을 할 충분한 준비기간이 없었기 때문일까? 그녀는 한달 만에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또 여행을 떠났다. 이미 여행이란 인생에서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것이고 거창한 준비없이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지난 영국생활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마음이 내키면 전라도, 거제도, 제주도, 동해 어디든 훌쩍 다녀왔다. 어차피 인생 자체가 긴 여행일 뿐이었다. 무언가 축적하려는 삶이 그녀에게는 의미 없다는 걸 그녀는 온 몸으로 받아들였다.


나이 든 이혼한 막내딸을 품고 있기에는 더이상은 무리다 생각하신 듯했다. 더구나 그 막내딸은 틈만 나면 이곳저곳을 방랑자처럼 떠돌아 다녔다. 그녀의 친정엄마는 그녀에게 이제 나가 혼자 살 곳을 찾는 것이 좋겠다 얘기했다. 그렇지 않아도 집을 알아보려던 참이었다. 나이드신 부모님께 마냥 얹혀살 순 없었다. 그녀 나이도 이제 서른셋이었다. 친정부모님댁에서 멀지 않은 대학가 오피스텔을 얻었다. 작지만 빛이 잘 들었고 층고가 높은 복층 구조인 것이 맘에 들었다. 예전부터 그녀는 어둠이 싫었다. 집의 크기는 상관 없더라도 사람은 빛을 보고 살아야 한다 강조했다. 빛마저 없으면 쩍쩍 갈라지고 깨진 그녀 마음의 접착제가 언제 풀려 그녀를 우울의 나락으로 떨어뜨릴지 몰랐다. 이삿짐은 그녀의 친정아빠 차로 했다. 옷가지와 몇가지 물건들이 전부였다. 그녀는 1층에 인터넷으로 구매한 이케아 빨간색 쇼파를 놓고, 계단을 올라간 낮은 2층에는 매트리스를 사다 침구를 올렸다. 아늑한 그녀만의 공간이 탄생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그녀의 친구들은 그녀의 공간에 부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들도 언젠가는 부모님 집을 나와 그녀처럼 독립하겠다 했다. 그리고 먹고 싶은대로 먹고, 하고 싶은대로 하며 살겠다 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 독립된 그녀만의 공간 속에서 가장 힘든 외로움의 시간을 보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그 작은 공간이 그녀에게는 너무도 크게 다가왔다. 작은 그녀의 몸이 움직이는 동선은 그 공간의 칠할도 차지하지 못했다. 회사에서 돌아와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어둠 속에서 불을 켠다. 붙박이장을 열고 입었던 옷을 벗고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후 욕실로 들어간다. 욕실에서 나와 라면물을 끓이고 쇼파에 앉아 작은 TV를 보며 라면을 먹는다. 쇼파에 앉아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고 글을 쓰다 계단을 올라 매트리스에 누워 잠을 청한다. 그녀의 생활은 그것이 다였다. 그리고 그 움직임 속에는 언제나 적막과 고요가 먼지처럼 떠 다녔다. 그녀는 아무도 말할 사람이 없어 언젠가부터 그녀 자신과 대화를 시작했다.

"야, 저거 디게 웃긴다. 개그 프로가 요즘 정말 볼 만하지 않냐?"

"그러니까. 일주일에 한번 이 시간은 놓칠수 없다니까."

"밥 먹자. 잘 먹겠습니다. 아이고 맛있네."

"이게 행복 아니겠니? 왜 이리 꿀맛이냐?"

"이제 잘까? 내일을 위해 잠을 잡시다. 안녕. 잘자."

"그래. 너도 잘자."

혼자 있음에 익숙치 않은 그녀는 다시 또 시작되는 외로움에 온 몸이 녹아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지도 벌써 반년이 지나고 있었다. 그녀는 J에게 안부를 물었다.

J와 주고받은 소식 속에서 그녀는 아이와 아이아빠가 울산에서 계속 살고 있으며 J와도 점점 소원해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여건이 되는 대로 언젠간 합칠거라 했지만 1년 동안 간간히 전해진 소식들은 세 명이 함께하는 가족의 모습은 아니었다. J는 J대로 침잠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바닷가 옆에 얻은 집에서 그녀 자신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는 J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J의 인생과 그녀의 인생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가진 공통의 아픔 속에서 이제는 J도 잠시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그녀 내면의 소리와 조우할 시간임을 충분히 이해했고 응원했다.

하지만 그녀의 딸아이가 있었다. 올해 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입학식에 그녀는 참석하지 못했다. J대신에 이제는 아이를 데리고 있는 아빠인 그에게 간간히 메일을 보내 안부를 물었다. 내키진 않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주변인보다는 핵심 결정권자와 얘기하는 쪽을 택했다. 결정권자는 친아빠인 그였고 다행히 아이는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의 아이는 훌쩍 자라 있었다. 그녀의 기억 속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어 그녀는 사진 속 딸아이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녀를 닮았다기보다는 친가 쪽을 닮아 선이 가늘고 하얀 얼굴이 천상 여자였다. 아이의 사진을 몇번이나 보고 또 보면서 그녀는 안도했다. 너무 예쁘게 잘 자라주고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안도감과 함께 가슴 속에 커다란 상실감을 느꼈다. 아이에게 그녀는 이제 필요없는 존재가 된 지 오래인 것 같았다. 걱정하고 애태웠던 건 그녀만의 일방적인 두려움이었을 뿐, 모두에게 그녀는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너무도 고마운 J와 남편인 그, 시어머니였지만 한편으론 그녀는 걷잡을 수 없는 우울함을 떨칠 수 없었다.


그녀는 지난 4년간 했던 헤드헌팅 일을 그만뒀다. 그녀에게는 조직이 필요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혼자 모든 걸 책임지고 감내해야 하는 일련의 일들이 이제는 버티기 힘들었다. 성사율에 따라 달라지는 불규칙적인 수입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무엇보다 '안정'이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수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준비하겠다며 혼자 있는 시간 동안 그녀는 대인기피증에 가까운 우울증을 겪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 자체가 귀찮았다. 잠은 더이상 오지 않아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에 아침임을 알겠는데 당장 가야할 곳도, 해야할 일도, 하고 싶은 의지도 없었다. 온 몸을 휘감는 무력감. 먹는 일도 무의미했다. TV를 봐도 의미가 없었고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이불에 온 몸을 감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 또 밤이 됐다. 어둠이 몰려들면 그녀는 또 다른 충동에 시달려야 했다.


'이렇게 살 바에야 죽어버리자'는 충동.

눈을 뜨니 이층 난간이 보였다. 저 정도면 끈을 매달아 목을 건 그녀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죽은 모습은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떨군 고개 밑으로 긴 혀가 쑥 나와 있을 테니까. 도로로 난 큰 창문을 열었다. 7층 높이면 떨어져도 실패없이 즉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밑을 바라보니 걸릴만한 건 없었다. 그대로 도로에 떨어진다면 바로 죽음과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7층이란 높이가 조금 어중간하다 생각됐다. 죽지 못하고 반신불수나 식물인간으로 살았을 가능성을 생각하니 차라리 죽지 않음만 못했다. 수면제를 한 움큼 사 먹을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약국에서 한번도 수면제를 사본 적이 없었다. 얘기로는 한 곳에서 많은 수면제를 처방해 주지 않는다 했다. 여러 곳의 약국을 돌며 약사와의 눈길을 회피할 자신이 없었다. 혀를 깨물까도 생각했다. 이것 저것 도구가 필요없으니 그게 가장 간단하다 생각됐다. 당장 혀를 물고 세게 힘을 줬다. 눈물이 찔끔 나는데 죽음으로 가기까지엔 더 많은 힘이 들어가야하는 듯 했다. 어느 강도로 물어야 할지 몰라 그만뒀다. 굶어 죽을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버티다가도 결국은 주방으로 가 라면 물을 끓이고 있었다.


끊임없는 자살충동과 싸우고 있다는 그녀의 소식을 들은 친구가 돌도 안 된 아기를 들쳐업고 그녀의 오피스텔로 찾아왔다. 헝클허진 머리와 퀭한 눈으로 현관문을 여는 그녀를 밀치고 들어와 핸드폰을 들더니, 들고 온 전단지에 나와 있는 중국집으로 전화를 걸어 자장면과 탕수육을 주문했다. 어떻게든 먹어야 한다며 억지로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걱정이 되어 연락도 없이 찾아온 거라 했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열심히 살 생각부터 하라 했다. 그녀가 가고 또 다른 친구가 저녁 무렵 찾아왔다. 귀찮다는 그녀를 데리고 나가 해물찌게를 사 먹이고 소주도 한잔씩 했다. 맥주를 사들고 오피스텔로 돌아온 그들은 촛불을 켜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몇년 전 친구를 암으로 먼저 보내야 했던 이 친구는 또 다시 친구를 잃고 싶지 않다며 그녀를 안고 울었다. 다시는 그런 생각 하지 말라며 어떻게든 살라고 했다. 둘은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이래저래 죽는 것도 귀찮았다. 그쪽도 안해 본 분야이다 보니 연구해야 할 것도 많고 고민해야 할 것도 많았다. 그러느니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 노력과 의지로 차라리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게 빠르겠다 싶었다. 대학 때부터 관심 있었던 인사분야에서 이제는 채용이 아닌 교육으로 눈을 돌렸다. 헤드헌팅으로 일한 지난 시간 동안 그녀가 깨달은 건, 사람을 채용하는 일보다 채용한 인원을 지속적으로 교육시키고 동기부여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이었다. 평소 눈여겨 보고 있던 교육컨설팅사에 지원서를 넣고 소식을 기다렸다. 간절한 기다림 속에 그녀는 경력직으로 합격 소식을 들었다. 그녀의 지난 수많은 입사지원 속에서 가장 격렬하게 환호했던 합격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