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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Nov 21. 2016

다시 또 시작된 여행

필리핀 생활기_1.

정확히 10년이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돌아와 한국에 산 지.

10년전 11월, 남편과 저 그리고 그때 아홉살이었던 큰아이, 이렇게 셋은 이민을 생각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적당히 쌀쌀했던 아침기온이 지금도 느껴지던 그날 아침, 우리는 부산에서 출발하는 미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이른 아침 김해공항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봤었습니다. 미국생활이 생각처럼 되지 않아 10개월만에 비자가 거절되어 다시 한국땅을 밟았고 이후의 삶은 정말 숨 막히게 달리는 경주였습니다.

뒤돌아보니 10년이지, 살다 보니 10년이란 시간은 참 금방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일푼으로 돌아와 아니 오히려 신용불량자의 이름이 되어 돌아와 빈털털이에서 나름 지금은 대출 만땅이지만 집도 있고 차도 두 대에 먹고 싶은 것 그리 고민하지 않고 먹으며 살고는 있지만, 글쎄요. 살림살이 좀 나아졌냐 누군가 묻는다면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용기가 없습니다.


 10년 만에 다시 이민을 갑니다.

그 전에 갔던 영국, 미국 같은 선진국이 아니라 우리나라보다 낙후되었다 여기는 동남아 필리핀입니다. 대학교때 유럽배낭여행을 시작으로 이후 해외여행을 여러번 가면서 제 마음의 고향은 언제나 유럽이었습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그들의 문명과 고풍스런 건축물들, 그리고 성숙된 시민의식등을 접하면서 사실 동남아 여행에서는 항상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미국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건 밖에서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선진국에서 누릴수 있는 안정과 제도 뒤에는 사람 사이에서 전해지는 따뜻함, 인정보다는 객관화된 차가움과 합리화된 견제가 느껴졌습니다. 다시 이민을 생각하면서 가보지 못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를 먼저 생각했었고 정보를 취합하면서 역시나 외국인으로서는 넘기 힘든 이민의 문턱을 실감했습니다. 특히 감내해야 할 문화적 차이와 언어적, 경제적 문제등에서 나이의 무게가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그들 나라의 대안으로 선택하게 된 곳이 동남아였던 것 같습니다.


우선 외국인이 살기에 크게 거부감이 없는 곳, 언어적으로도 부담이 덜한 곳, 무엇보다 밥벌이의 문제에서 가게를 열었을 때 소비할 수 있는 인구가 기반이 되는 곳을 찾다보니 필리핀으로 압축이 되었습니다. 조금은 만만하게 본 것도 없잖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만만히 볼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이후의 경험으로 혹독하게 반성하게 되었습니다.(사업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하겠습니다.)

어쨌든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겨, 이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시도일거라 믿었던 제주에서의 첫 식당을 열던 때가 마흔, 지금은 그보다 다섯살은 더 먹은 지금에 저는 또 다시 도전을 합니다. 저 혼자 결심하기만 되었던 영국 생활과는 다르고,  아직 어렸던 아이를 위한 선택이었다 믿었던 미국생활과는 또 다른, 이제는 결사적으로 외국으로의 이사를 반대하고 나선 큰 아이의 원망을 온몸에 받으며 또한 더이상의 걱정보다는 익숙한 듯 받아들이며 다만, 이제는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시선을 받으며 그렇게 필리핀 이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떠남을 결심하고 준비하는 과정에는 이것이 끝이 아닌, 또 그곳이 영원히 정착할 곳이 아닌, 그저 '조금은 긴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는 관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또 많은 것을 버리고 정리하면서, 소유하지 않으려 했던 지난 날의 결심과 달리 어느새 또 이렇게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었는지 놀라며 반성하고 있습니다. 실상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정말 적은데 말이죠.

또 한번 내려놓는 연습을 합니다. 물건도 버리고 흔적도 버리고 욕심도 버리려 합니다. 내려놓으려 하니 홀가분합니다. 저는 올 겨울, 필리핀에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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