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룩쥔장 Mar 15. 2017

그런 남자는 잊어요.

그밤, 7호선 전철역에서 울부짓던 그녀에게

 필리핀 사업에서 쓴잔을 마시고 한달만에 귀국한 지금, 나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7호선 지하철 역사에서 작은 분식집을 남편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새벽 6시에 출근하여 밤 10시에 퇴근하는 생활. 따뜻한 동남아에서 아떼와 꾸야들의 시중을 받고 국제학교에 보낸 아이를 기다리며 창넓은 방에서 한가롭게 글쓰기에 열중하리라 기대했던 내 모습은 지난 한달동안 싸그리 사라졌다. 하루종일 볕도 보지 못하는 지하세계에서 나와 남편은 유배생활을 하듯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대학교에 입학한 큰 아이는 기숙사로 보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작은 아이는 마땅히 데리고 있을 형편이 되지 않아 언니네 주소지를 옮기고 전학을 시키는것도 모자라 아예 아이를 맡겼다.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에 아이를 돌봐줄 여유도, 시간도, 집도 없었기 때문이다. 갈곳 없는 우리는 그렇게 모두 뿔뿔히 흩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밤이 되면 잠이 쏟아지며, 시간이 지나면 머리가 가렵다. 그래서 하루 세끼 밥을 먹고 중간중간 간식도 먹으며, 꼬박꼬박 밤이 되면 잠을 자고 아침저녁으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한다. 당장 죽을것 같아도 그렇게 또 일상이 되고 살아지게 되더라는 말이다.


 여하튼 처음 겪는 지하철 가게 생활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이전에 경험했던 로드샵이나, 마트내 매장들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매일 마주하는 느낌이랄까? 지하철이라는 매개체가 가지는 보편성, 대중성, 서민성 때문이라 할까?

기존에 내가 하던 가게를 찾던 사람들은 자발적 고객이었다. 일차적 선택이 이뤄진 이후에의 만남 같은것?

그런데 이 지하철 상권에서는 지하철을 타기위한 목적의 사람들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 중에 이뤄지는 먹거리에 대한 대안적 선택이기 때문에 이전과는 다른 좀더 다양한 모습들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이전에는 접하지 못했던 부류의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그 모습들이 꼭 좋은 모습들만은 아니었다.


 가게를 시작한지 일주일쯤 지난 어느 평일, 밤 10시쯤이었다.

문닫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지하철로 향하는 계단쪽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울려나왔다. 처음에는 단발성으로 흘려듣던 그 비명소리는 지속해서 들려왔고 구체적으로 "살려주세요"하며 흐느끼는 소리와 섞여 더 심하게 들려왔다. 내가 일하는 매장이 개찰구를 빠져나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인지 들여다볼수 없었던 나는 난간을 잡고 아래를 굽어보며 계단을 올라오는 이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예요?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건가요?"

 젊은 여자의 겁에 질린 비명에 순간 폭력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술취한 사람 아니면 원한에 의한 폭력 또는 묻지마 폭행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곳은 모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지하철이었기에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길가던 사람 누군가는 도와줄 거라 믿었다. 그럼에도 너무 지속적으로 울리는 소리에 내 마음속에서는 구해야 한다는 정의감이 불끈했다.


 난간 밑으로 바라본 계단참에는 여자 몇몇이 소리나는 쪽을 향해 바라보며 서 있었고 아무도 달려가거나 어떤 행동을 취하는 사람은 없었다. 참지 못한 나는 몇번이나 바라보던 행인들을 향해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가고 묻고 있었고 그럼에도 누구도 자신있게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마침 옆 부스에 있던 지하철 공익요원이 그 큰 몸을 천천히 움직여 비상문을 열고 느릿느릿 계단을 내려가는 게 보였다. 잠잠해질 줄 알았던 소리는 그러나 계속해서 울려나왔고 다시 느릿느릿 나타난 공익요원은 무슨 일이냐는 내 질문에도 대답없이 부스 안으로 들어가 천천히 역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는 결국 비상문을 밀고 앞치마를 두른채 계단을 내려가 보았다.


 계단 밑에서 내가 처음 본  젊은 여자였다. 신발도 벗어던지고 양말만 신은채 하얀 운동화는 저 멀리 벗겨져 있었다. 이어폰이 가지런히 담긴 전화케이스가 벗겨져 떨어져 있었고 휴대폰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입고 있던 자켓과 가방도 어지러히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헝클허진 앞머리로 얼굴을 가린 여자는 울고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젊은 남자가 씩씩대며 서 있었다. 지하철 공익요원과 역사에서 온 공무원은 곤혹스럽다는 듯 멋쩍게 서 있었다. 상황파악이 되지 않던 나는 그냥 두고 볼수 없어 용기내어 여자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본 가려진 머리사이로 보인 얼굴은 내 딸아이보다 겨우 한두살 많아 보일 정도의 대학생 같았다. 앳딘 모습에 나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학생,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진정해. 도와줄까?"

눈물로 범벅이 되고 충격을 받은 듯한 여자는 두려움에 질린 눈으로 나를 경계하듯 바라봤다.

"내 딸아이 같아서 그래. 진정해. 어디 아파? 아님 누가 괴롭혔어? 나랑 같이 경찰서 갈까?"

아무 대답없던 여자는 마주 서 있던 남자가 다가오려 하자 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가까이 오지 마. 건드리지 마. 왜 또 때리게? 어디 때려봐."

갑자기 여자는 자기의 두 손으로 주먹을 쥐더니 자기 머리를 세게 내리치기 시작했다. 주변사람들 모두 놀라 쳐다보는 가운데 마주선 남자가 달려와 여자의 두 팔을 잡고 안으며 말했다.

"그러지 마. 내가 잘못했어. 그러지 마."

잘생긴 얼굴이었다. 키도 훤칠하니 컸고 날렵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도 여자나이 또래. 많아야 한두살 많을까? 누가 봐도 어울리는 한쌍의 선남선녀였다. 그런 그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순간적 상황에서는 데이트 폭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는 전철에서? 과연 그렇다면 저 앞에 있는 남자친구란 놈은 사이코가 아니겠는가.

그녀를 안으려는 남자를 뿌리치며 여자는 다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서 그를 떼어놔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가가 그녀를 안아주며 다독였다.

"그러지 마. 학생. 그러지 마. 이쁘게 낳아주신 부모님이 알면 얼마나 속상하실까? 그러지 마."

그녀를 안으며 마치 내 딸아이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여전히 흐느끼는 그녀 대신에 그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친구예요? 무슨 일이예요? 일단 둘이 떨어져 있는게 좋을것 같은데. "

마침 역사에서 오신 공무원도 무슨 일인지 물으며 상황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여자는 여전히 흐느끼고 있고 나로서는 더 어떻게 해야할지 알수 없는 상황이기도 해서 나는 진정하라고 매장에서 생수를 받아 종이컵에 담고 다시 내려와 그녀에게 내밀었다.

"학생. 일단 물좀 마시고 좀 진정하자. 그 다음에 차분히 얘기를 해봐. 일단 물좀 마셔."

남자가 종이컵을 받아 그녀에게 주려하자 갑자기 그녀는 종이컵을 거칠게 뿌리치며 다시 소리를 지르고 자학을 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다시 그녀를 제어하며 꼭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께. 그러지 마."

나는 순간 보았다. 남자의 품에 안겨있던 여자의 안도하는 눈빛을.

남자의 잘못했다는 소리에 흔들리는 그녀의 눈빛을.

'결국 이건가? 누구도 벨 수 없는 부부싸움 칼로 물베기 같은거? 나 또 오버한거니?'

순간적인 멋쩍음에 나는 조용히 계단을 올라왔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켠으로는 찝찝함이 남았다. 아무리 남녀의 사랑싸움이라지만 저렇게까지 요란할수가 있나 싶었다. 무엇보다 그 남자의 태도와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에효. 내가 상관할 일이람? 내 코가 석자다."

마감준비를 하고 있던 남편은 매장으로 들어서는 내게 괜찮은 거냐 걱정스레 물었다.

"누구? 나? 나야 뭐 아무일 없지. 그런데 참.. 그러네. 내가 보기엔 데이트 폭력 같은데. 그 흔들리는 눈빛이란... 내가 뭐라 할수도 없고. 참.. 이해도 가지만 저건 아니지 않나? 에효."

"너 그러다가 큰일 나. 함부로 끼고 그래. 그러다가 다치면 어떻할라고?"

"아이고 그럼 내 딸같은 애가 살려달라는데 어떻게 그냥 있어? 사람들도 참. 골목길도 아니고 전철역에서 어쩜 그렇게 아무도 안 도와주냐? 정말 옆에서 살인이 나도 모르겠어. 무서운 세상이야."

 

잠시후 경찰 두명이 출동했다. 지하철내에서 이 상황을 지켜본 누군가 신고를 했고 경찰이 온 것이다. 신고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대략 내용을 들은후 경찰들은 역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신고자인 듯한 여자를 붙잡고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봤다. 조선족의 억양을 물씬 풍기며 그녀는 말했다.

"제가 처음부터 다 봤거든요.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남자가 여자 뺨 세게 때리고 발로 차고 누워있는데도 계속 걷어차고 욕했어요. 살려달라고 도망가는데도 따라와서 발로 차고 소리 못 지르게 입막고 그래서 제가 신고했어요."

헐...

순간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배신감을 주체할수가 없었다. 어떻게 여자를 그렇게까지 팰수가 있냐고.

부부도 아니고 데이트하는 연인일진대 사사로운 말싸움은 있을 수 있어도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맞을 만한 이유가 있을수 있냐고. 아주 질이 나쁜 놈이고 한두번이 아닌놈인 거지. 얼굴만 멀쩡하면 뭐하냐고. 저런 놈이 사이코패스 되는거지. 세상에 주변에 사람들이 있는데도 그 정도였단 거는 사람 없는데서는 상습적으로 더한다는거 아니냐고. 분노조절 장애인거지. 아이고..

처음 그 상황에서 여자를 데리고 떼어내지 못한 내가 다 원망스러웠다. 그 놈에게서 격리 시켰어야 했는데..

그런데..

그 여자의 눈빛은 또 뭐란 말인가? 잘못했다는 소리에 안도하는 눈빛이란..

그래. 그럴수 있지. 아직도 믿을 수 없었겠지. 지금 상황이 악몽을 꾸는 것만 같았겠지. 사랑했던 믿었던 남자가 자기한테 한 짓을 믿을 수도, 믿고 싶지도 않았겠지. 아니라고 해주기를 주변에 몰려든 이 낯선 남자들, 앞치마를 둘러맨 낯선 아줌마에게 자기를 맡기지 말고 사랑하는, 사랑했던 남자친구가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와 자기를 보듬어 주고 예전처럼 사랑해주기를 간절히 바랬겠지.

그리고,

잘못했다고 하면 정말 어렵지만 용서해줘야겠지. 아직 사랑하니까. 그건 실수였을테니까. 한번의 실수.

내가 용서하고 아픔을 어루만져주면 다시는 그러지 않을거야. 내가 더 많이 사랑해주면 될거야. 난 아직 그를 사랑하니까.

그렇게 생각했을거 같다.


 어둠은 깊어가고 남편과 나는 매장문을 닫고 나왔다. 다행히 경찰이 여전히 역내에 있는 상황이어서 안도하면서..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자꾸만 그 광경이 아른거리고 눈물로 범벅된 여자의 얼굴과 분노에 찬 남자의 매서운 눈빛이 떠올랐다. 다음날이 되어도 그 다음날이 되어도 자꾸만 생각이 났다. 폭력의 현장은 그렇게 강력했다.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그 친구에게 꼭 말해주고 다.


"그런 남자는 만나지마. 그건 사랑이 아니야. 너 자신을 좀더 소중히 대해줄 줄 아는 남자가 진정한 남자란다.

그때의 악몽은 잊어. 자학하는 너를 보면서 이 아줌마는 너무 마음이 아팠단다. 너무도 예쁘게 키워준 그대의 엄마, 아빠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마음아파 하실까? 세상에 그 말고도 좋은 사람은 많단다. 많이 두렵겠지만 꿈이라 생각하고 기억에서 삭제해버려. 그밤의 그 기억도, 그 남자도.

인생은 길고 순간의 아픔은 치유할수 있단다. 너는 너무도 곱고 어여쁜 존재이므로.."



작가의 이전글 너무 힘들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