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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Oct 28. 2015

발효의 시간들 #1_3

작은 식당 주인의 좌충우돌 창업일기 #4

제주 아일랜드의 대박사건


오픈후 4개월여가 지난 시간.

그동안 일매출 20만원을 넘지 못하는 참담한 결산표를 들고

결국 초보 사장이 할수 있는 결단은

초기 멤버로 있던 그녀를 보낼수밖에 없었던 것.


점심이든 저녁이든 꿋꿋하게 사장 혼자 서빙과 주방, 청소, 계산 모든 것을 담당하는 일인 시스템으로 전향했다는 것.

더불어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아줌마 사장으로서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를 받고 간식과 저녁을 먹이며 노심초사 언니나 아빠가 와서 데려가기를 기다려야 했던 것..


외로운 나와의 싸움...

그 치열한 싸움속에서 참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익숙치 않은 주방에서 초보 주방장이 할수 있는 실수는 다해가며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여러번..


정해진 메뉴와 매뉴얼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서도 끊임없이 드는 의심..

'이게 맞긴 맞는건가?'


손님없는 한가한 오후, 통창 가득 들어오는 봄햇살을 받으며 저 멀리 한라산의 만년설을 감상하면서도

'아..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 식사 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람이 이렇게 안 온다는 건

이건 정말 식당으로서의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건데...'


'잘되는 식당을 봐봐. 한가지 메뉴만으로도 승부를 보고 줄서서 먹는데

지금 내 가게 메뉴는 왜 이렇게 많은지... 이게 원인이 아닐까?'


그럼에도 초보 사장에게 결단은 쉽지 않았죠.

메뉴에 대한 고민은 정말 많았는데 이 또한 나중에 따로 카테고리를 만들어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로 하겠습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니 그래도 아일랜드 쥔장의 마음도 조금은 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3개월이 지나니 조금씩 단골이다 할수 있는 분들도 생기기 시작했구요.

손님이 워낙 많지 않으니 초기 손님은 대부분 기억을 하는 편이어서 반갑게 맞아드리고 이것저것 챙겨드릴수도 있었습니다.

많지는 않았지만 드믄드믄 예약손님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따뜻했던 봄 4월초였던가 봅니다.

초보 주방장을 당황하게 했던 그날의 사건이 일어난 날이 말이죠.

조금씩 바빠진 점심시간을 혼자 감당할 수 없어 점심시간 서빙을 맡아줄 새로운 식구를 맞이한 첫날이었습니다.


항상 그렇듯 혼자서 하는 주방일이 바빠 출근한 H에게 따로 작업내용을 알려줄 틈도 없이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거기 찾아가려고 하는데 위치가 정확히 어디죠?"

"오늘 점심 예약 할수 있나요?"

"여기 어디인데 차를 가져가면 주차가 가능한가요?"


오늘따라 전화가 많다 싶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최근들어 늘기 시작하는 손님이려니 했죠.

점심시간이 되기전 오픈시간인 11시부터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한테이블, 두 테이블, 주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주부 손님들이었는데 삼삼오오 짝을 지어 들어오더군요.

첫 출근인 H에게 홀 일을 맡기고 분주히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오자 손님은 계속 들어왔고 그때까지 그런일이 없던 저로서는 부족한 식기를 급한 대로 설겆이를 해가며 파스타를 말아가며, 돈까스를 튀겨가며 정말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정도로 바쁘게 일해야 했습니다.


늦은 손님까지 겨우 맞추고 난 시간이 3시..

온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고 진이 다 빠졌습닌다.

이미 토핑냉장고에는 다 쓴 재료로 텅 빈 용기만 있었고, 재워놓은 돈까스도 삶아놓은 파스타면도, 밥도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첫 출근이었던 H와 함께 점심을 먹는데 힘이 하나도 없더군요.

다행히도 눈썰미가 좋고 손이 빨랐던 H가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정신이 없는 가운데 제주도에서 알고 지내는 동생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언니, 오늘 바빴지?"

"어. 어떻게 알았어? 나 오늘 너무 힘들었어. "

"아이구. 언니야. 어제 내가 제주맘에서 언니네 가게 누가 올린 글 봤었는데 맛집 코너에 사진이랑 후기를 자세히 올렸더라구. 댓글 엄청 많이 달리길래 아침에 언니한테 말해준단 걸 깜빡 잊고 이제서야 전화한거야. 그 글보고 아무래도 엄마들 많이 갈거 같아서 재료 많이 준비하라고 할려했는데.."


아....

그랬었구나..

엄마들의 힘. 그 전날 학교 엄마들과 모임이 있다며 예약했던 손님중의 한분이었습니다.

맛있었다며 친절한 글과 사진, 나름 미각의 소유자로

그간 다녀본 식당의 여러개의 후기로 까페에서는 신뢰도가 있는 맘이라 했습니다.

그 후기에는 근래 보기 드물게 수많은 댓글이 순식간에 달렸고, 

걔중에는 지난 3~4개월동안 우리 가게에서 식사했던 손님들의 경험들도 여럿 있어 좋은 댓글에 반응이 더 좋았던가 보았습니다.


그렇게 '아일랜드의 대박사건'은 일어났고 그제서야 저는 이유를 알수 있었죠.

그 전까지 하루 매출 20을 못 넘어본 가게의 그날 점심매출만 30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전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현상이 일시적일수도 있고, 지속적일수도 있겠지만 그 둘다 정상은 아닌것만 같았죠.

매출이 오르는 것은 좋았지만 이렇게까지 몸이 힘들줄은 몰랐는데

앞으로 이 현상이 지속된다면 매일매일 이렇게 죽을만큼 힘들다는 얘긴데 너무도 끔찍했습니다.

하루정도는 집안 대소사처럼 할수 있지만 매일매일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늪에 빠지는 것만 같았고 목이 죄어왔습니다.

몰려드는 손님을 보며 드는 공포...

내 가게를 찾는 손님이 반가운 것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 될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갑자기 극도의 히스테릭 상태가 되더군요.

깨끗이 씻어 말려놓은 그릇을 정리하는데 다 던져 부셔버리고만 싶어졌습니다.

형용할수 없는 눈물이 주책맞게 흘러 멈추질 않고 이곳을, 이 제주도를 벗어나 버리고만 싶었습니다.

이대로 일만하다 늙어 죽을 제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아 여기서 멈추고만 싶었습니다.


깨질듯 거칠게 내려놓는 그릇 소리에 놀라 남편이 주방에 들어와 물었지만 전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데 너무 화가 나고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한 주범이 저 인간이다 싶어 원망의 말만 쏟아냈

죠.

뜬금없는 저의 반응에 남편도 화를 냈고 점점 더 극단으로 차올라

둘다 이 가게를 닫아버리자고까지 얘기가 나왔습니다.

남편은 화가 나서 그랬겠지만 저는 기회는 이때라는 듯 가게를 나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집에 와버렸습니다.


말할 수 없이 참담한데 해결은 해야겠고 에라 모르겠다 그동안 돌봐주지 못했던 작은 아이를 데리고 창넓은 까페에 앉아 커피 마시며 여유를 부렸습니다.

창 너머로 하교하는 큰아이가 보이길래 까페에 앉혀놓고 꼬시기 시작했죠.


"엄마 지금 너무 울적한데 너 학원가지 말고 우리 바다보러 가자.

넌 지금 엄마가 이렇게 우울하다는데 학원이 중요하냐?

우리 바다본지 오래됐잖아. 밤바다 가서 바다도 보고, 너 좋아하는 빨간집 떡볶이도 먹고 어때?"


결국 제 꾐에 빠진 큰 아이와 작은 아이를 데리고 바다로 달렸습니다.

상쾌한 밤바다에 우울한 기분도 날아가더군요.

큰 아이가 좋아하는 빨간집의 매운 떡볶이도 먹고 부른 배를 안고 바닷가 산책도 했습니다.


"너 서울가고 싶다했지? 엄마 이 가게 팔아버릴까봐.

이 가게 팔리면 우리 그 돈 갖고 서울가자."

시작한지 겨우 4개월된 가게는 그날 벌써 미래를 예측하고 있었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도망가버린 가게 사장이자 주방장 없는 가게에 망연자실 앉아있던 남편은 결국,

그날 저녁 통유리창 블라인드를 모두 끝까지 내리고

메모를 현관에 붙여놓은채 어두운 가게안에서 상념에 잠겼다 합니다.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금일 저녁 영업은 쉽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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