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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Mar 16. 2017

여름

필리핀 사업, 앙헬레스 그곳은 악마의 도시_3

유달리 더운 여름이었다.
60년만의 더위라며 아침부터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은 짜증을 유발했다.



 남편은 필리핀 사업을 위해 출장중이었다. 벌써 세번째였다.

필리핀에 매장을 내기로 결정한 이후로 남편은 분주해졌다. 보이스 톡을 통해 현지에 머무르며 일을 보고 있는 동업자와 매일 통화를 했고 필요한 자금을 송금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얼마 되지 않던, 그렇지만 무언가 다른 새로운 것을 하기에는 꼭 필요했던 종잣돈도 어느날 모두 그녀에게서 인출해갔다. 그 모든 것이 필리핀 사업을 위한 거라 생각했기에 그녀는 별다른 말 없이 요구하는 금액을 송금해주었다. 그들의 전재산이라는 것이 그녀를 주저하게 했지만 한국에서 매장을 열더라도 그 정도는, 아니 그 이상의 자금은 들어갔을 터였다. 예정대로라면 한여름이 끝나기 전인 8월이면 필리핀 매장을 오픈할 것이고 그때까지만 버티면 자금은 돌 터였다. 신용카드 매출이 절반 이상인 한국과는 달리 필리핀은 거의가 현금장사라 했다. 국내 마트 입점시 매출을 고스란히 회사에 입금하고 한달이나 두달후에 수수료를 제한 금액을 정산받는 시스템과는 달리, 필리핀 몰에서는 오픈과 동시에 들어오는 현금은 바로 매출로 손에 쥘수 있다 했다. 그렇다면 자금계획은 좀더 수월할 수 있었다.


 함께 일을 보아주는 남편의 동업자는 그 전해 마트 입점시 알게됐던 사장이었다. 수입 생활용품을 백화점에 납품하던 유통업자였는데 요식업을 접하면서 그 가능성을 보고 함께 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미 몇년전에 필리핀 클락에서 면세점을 크게 오픈했던 경험이 있어 현지 사업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그때 함께 일했던 여직원이 이번 일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했다. 한국에서 가게를 내는 것의 절반 금액에 대형몰에 입점할 수 있고 그 많은 인구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비록 저가상품이라 해도 박리다매로 충분한 매출이 나올것이라 그들은 생각했다. 게다가 남편말로는 현지에서 SM몰에 입점하는 것이 현지에서 오래 산 사람이라 해도 쉽지 않은 일이라 했다. 그런데 그 어려운 걸 현지인인 그 여직원이 단박에 해냈다 했다. 물론 그 배후에는 그 동업자가 있었고 남편의 말대로라면 그들은 '능력자들'이었다.

 

 유통업을 아직 정리하지 않은 상태였던 남편의 동업자는 필리핀 사업에 전념하기 위해 자신의 사업을 남편에게 넘기겠노라 했다고 했다. 고정적인 백화점 납품이 있었기에 남편은 필리핀 매장 오픈전까지는 한국에서 그녀가 그 일을 맡아 충분히 운영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그렇게 빠른 인수인계가 이뤄졌다. 대신 급전이 필요하다는 동업자를 위해 남편은 그들이 가진 현금을 모두 그에게 차용증도 쓰지 않고 빌려줬다.  

 남편이 없는 한국에서 그녀는 그해 여름, 남의 창고를 빌려 매일 생활용품을 백화점 물류센타로 배송했다. 에어컨도 들어오지 않는 창고 2층은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달궈진 천장의 열로 인해 금새 온몸이 땀에 젖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생소한 수입 브랜드의 치약이며 칫솔, 비누등의 재고 숫자를 세고 송장을 출력하여 스티커를 붙이며 박스에 담고 테이핑을 하여 차곡차곡 담긴 무거운 상자를 끙하고 들어올려 1층으로 날랐다. 여름방학이 되어 집에 있는 작은 아이를 옆에 태우고 물류센타까지 운전해 가서 무거운 캐리어를 끌며 상자를 날랐다. 그해 여름은 그렇게 노가다로 인한 땀과 함께 지나갔다. 더불어 그 일을 통해 그들이 얻은 소득은 하나도 없었다.


 매월 정산되는 말일이 되면 동업자는 입금한 금액을 우선 자신의 급한 빚 변제에 써버렸다.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했던 그녀로서는 전해주는 남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고 남편은 그 모든것이 필리핀 매장을 서둘러 열기 위한 필요불가결한 일이라 했다. 대신 필요한 생활비는 남편의 카드에서 나왔다. 한달만, 두달만 버티면 매장이 오픈되니 그때까지만 급전을 쓰면 된다는 남편 말에 그녀는 남편이 건네주는 카드론 금액을 받았다. 며칠후에 입국한 남편은 자금이 필요하다며 주변사람들에게 돈을 빌리러 다니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들어가는 예상치 않은 금액들이 많다했다. 가게만 오픈하면 현금이 도니 바로 상환할수 있다며 고향친구들에게, 시댁에, 친형에게, 그녀의 친정식구들에게까지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분주했다.

그녀는 이해했다. 작은 가게라 해도 언제나 사업을 시작하면 돈이란 건 예산을 초과하기 마련이었다. 하물며 외국이니 변수가 더 많을 터였다. 몇백, 몇천이면 곧 오픈을 할 수 있다하니 그녀는 그가 하는 일에 기운을 북돋으며 동조했다. 그녀의 카드로도 론을 받았다. 그렇게 그들은 채무자가 되어갔고 그가 아끼던 대형신형차를 캐피탈에 잡혔으며 마지막으로 그들이 사는 집을 내 놓았다.

'마지막 그 얼마만 있으면 된다'는 소리에 그들은 그렇게 눈이 멀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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