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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Oct 04. 2018

공항

필리핀 사업, 앙헬레스 그곳은 악마의 도시_4

비행기 창밖으로 어둠에 잠긴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 시계는 어느덧 새벽 2시 30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몹시 피곤한 하루였다. 아니, 몹시 피곤하게 시작되는 하루였다.


그녀는 옆에서 깊이 잠든 딸아이를 깨웠다. 비행기는 필리핀 클락 공항에 도착해있었다.

핸드폰을 켜자 연이어 문자 알람이 이어졌다. 외국여행을 위한 안내사항, 주의해야할 전염병 등에 관한 안내문자였다. 문자들속에 남편으로부터 온 카톡이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으니 착륙하면 문자를 보내고 수속후 나오라는 톡이었다. 단지 몇 시간이었지만 낯선 이국에서 가족이 기다리고 있다는 안도감에 그녀는 적잖이 마음이 놓였다.


한참 곤히 잠들 시간에 잠에서 깨어 수속을 밟는 아이는 몹시 지루하고 피곤해했다. 필리핀이란 나라,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법치국가와는 거리가 먼 곳. 작은 시골공항 정도의 규모밖에 되지 않는 클락 국제공항의 출국심사는 까다로웠다. 무엇보다 이해할수 없는건 찾은 짐을 일일히 검색대에 놓고 공항 사람들이 가방을 열고 종이박스를 들춰가며 뒤적여대는 행동이었다. 냄새나는 장류나 김치, 젓갈류는 종종 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했고 그 외로도 그들 마음대로 통과물품과 비통과 물품이 정해지곤 했다. 이미 앞서 필리핀에 살고 있는 교민들을 통해 들은 바로는 검색하는 사람 마음이라 어떤 사람이 걸리느냐 요행이 걸린 문제라고 했다. 또 가끔은 그들에겐 역시나 현금이 주어지면 통과되지 않는 물품은 없다는 이야기들도 들었다. 어찌됐든 딱히 걸릴게 없는 우리같은 평범한 소시민들도 그런 통과의례에선 이유없이 긴장되거나 짜증이 일기 마련이었다.

 

모두들 잠들 그 새벽 3시를 향해 가는 시간에 검색대 통과를 위한 줄은 길었다. 한국에서 단체로 어학연수를 온 학생들인듯 한편에선 아이들이 줄지어 쭈구리고 앉아 졸고 있었고. 도대체 공부를 하겠다며 온 저 어린 아이들까지 무엇을 수색하겠다고 저리 줄지어 놓은건지 이해할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나라에서 사업을 하고 돈을 벌며 아이를 키워보겠다고 찾아온 나란 여자가 있었다.


복잡한 마음으로 두꺼운 겨울잠바를 양팔 가득 벗어들고 아이손을 잡은채 이민가방을 끌며 검색대를 통과했다. 두리번거리며 기다리고 있을 남편을 찾았다. 저만치서 초조한 얼굴로 손을 흔드는 남자가 보였다.

순간 그녀는 그를 못 알아볼뻔했다. 분명 그녀가 알던 남편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맞는데 실상은 그녀가 알던 남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너무나 야위어 있었다. 뼈가 앙상한채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애써 웃고 있었지만 겁에 질린 눈과 마른 몸을 보며 그녀는 울컥 눈물이 나오는걸 겨우 참았다.

딸아이의 손을 잡고 이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먼길 오느냐 고생했다 말하는 그는 애써 힘을 내려는 말기암환자 같았다. 그녀에게서 짐을 받아 끌고 앞장서며 저쪽에 세워둔 차를 가지고 오겠다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는 아이만 옆에 없었다면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사람이 어떻게 저 지경이 될 수 있을까? 가뜩이나 마른 사람이었다. 신혼초 가장 많이 나간 몸무게가 60kg였다. 그 이전도 그 이후도 다시는 그 몸무게는 없었다. 집안 자체가 워낙 마른 타입들이었다. 성격도 예민했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야윈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야말로 등짝과 뱃가죽이 붙을 지경이었다. 차고지까지 걸어가는게 그리도 힘겨워 보일수가 없었다. 도대체 지난 3개월동안 필리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자신있고 오만하기까지 했던 모습은 어디 가고 저 혼자 힘으로도 서있기조차 힘들어보이는 걸까? 분명 휘청휘청 사람이 걸어가는데도 그녀가 보기에 그것은 산 송장이 걸어가는 모습같았다.

 

왈칵 나오는 울음을 그녀는 애써 참았다. 이제 그 모든 것들은 그녀의 몫이 될 터였다. 그는 이제 그녀가 기대야할 사람이 아니라 지켜줘야 할 사람이었다. 지난 3개월동안 그가 혼자 있었던 그 시간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살아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녀는 알아야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이어진 일들은 그 새벽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혹하고 버거운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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